달시 파켓 리뷰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
2007 | 6mins 49secs | dir. KIM Joon
도시의 친밀감
이 7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은 제목만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종이에 단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김준 감독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사는 느낌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잔뜩 쌓인 똑같은 방들에서 붙어 지내며 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고층 아파트 단지의 수십 명 또는 심지어 수백 명의 사람들을 통해 공간감을 탐구한다. 김준의 그림은 단순한 선임에도 불구하고 야심차다. 그리고 이 추상적인 목표를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표현해낸다.
작품에는 꿈과 현실이 뒤섞여 있다. 첫 장면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 여자가 보인다. 사실적인 음향 효과는 나날의 인상이라는 바 탕을 만든다. 다음은 그녀가 잠자리에 누워 책을 찾는 장면이다. 그리고는 음향효과와 음악이 기이하게 조합된 사운드트랙을 따라 관점이 바뀐다. 우리는 공중을 떠다니는 카메라의 시점에서 창문을 통과해 아파트 단지의 사각형 패턴이 보이는 바깥으로 나갔다 가 또다시 벽들과 다른 집의 출입구들을 지나간다. 창가에 한 두 명씩 서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까지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다. 우리는 거실들과 욕실들, 주방들과 침실들을 반복적이고 다소 달래는 듯한 움직임으로 매끄럽게 이동한다.
문이 삐걱 열리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책을 들고 침대에 누운 여자를 본다. 그 사이는 짧고, 끝이 없는 듯 줄지은 창 너머 잠든 인물들로 바뀌며 서서히 멀어진다. 어느 순간 배경이 벗겨지며 잠든 인물들이 공중에 바로 선 채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배경이 돌아오자 사람들은 창밖을 떠돌며 아파트 건물 사이 공간을 천천히 넘실댄다. 아름다운 이미지다.
특히 서양의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도시의 삶은, 대규모의 사람들이 똑같이 생긴 집에서 무리 지어 살면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인접한 방에서 잠자며 함께 공중을 선회하는 인물들은 주위 환경들로 인해 소모되지 않는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거리낌 없이 자유롭다.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꿈을 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붙어 있다는 것이 도리어 아파트라는 공간을 인간적으로 여겨지게 한다.
마침내 아침이 오고 다시 주인공의 아파트다. 그녀는 일어나서 외투를 입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녀가 목에 목도리를 감을 때, 엘리베이터에 있던 무리 중 한 남자가 위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의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위를 쳐다보고, 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뭔가를 다 같이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모호하고 암시적이지만 낙관적인 기운이 감도는, 수수께끼 같은 엔딩이다.
달시 파켓
Koreanfilm.org 웹사이트 운영자로, 『뉴 코리안 시네마: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저자. 『버라이어티』 통신원을 지냈고 영화잡지 『씨네 21』에 기고한 바 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우디네동아시아영화제 및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1997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