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ion Note_Pig that Survived Foot-and-Mouth Disease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Pig that Survived Foot-and-Mouth Disease | 2024 | 105mins | dir. 허범욱 HUR Bumwook
무덤에서 태어난 파이터
무채색 행성을 새빨간 피로 물들인 첫 장편 <창백한 얼굴들>(2014) 이후 10년 만에, 허범욱 감독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2024)가 공개되었다. 생매장된 구덩이를 가까스로 탈출한 돼지와 집단 괴롭힘 당하다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가 울창한 숲에서 숨바꼭질하듯 펼쳐진다. 이 놀이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장편을 만드는 데는 9년이 걸렸다. 첫 장편이 상을 받는 바람에 다음을 꿈꿔버렸고 그만둘까 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냈다. 관객의 환호보다 고통을 기대하는 건 도리어 피학적인 성향이 아닐까. 세상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끝까지 가고야 마는, 허범욱 감독을 만났다.
“애니메이션 더 해도 되나 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지금 당장은 그림 그리는 일을 하기 싫어서 카페 알바 하면서 지내고 있고요. 추가로 영화제 출품하고 선정되면 부가적인 일들 처리, 그리고 이제 국내 개봉과 해외 세일즈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니까 배급사들과 미팅하면서 얘기 들어보고 있어요.
배급 지금은 직접 하세요.
영화제는 제가 직접 하고 있는데, 국내 개봉과 해외 세일즈는 또 다른 문제니까 이런 부분은 몇몇 회사들과 논의 중이에요. 아직 확정은 안 했고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창백한 얼굴들> 이후 10년 만의 장편입니다. <창백한 얼굴들> 제작기를 보면 다시 장편 하기 싫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다음 장편을 하게 된 건가요?
제가 2015년도에 홀랜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어요. 처음 받는 상이었거든요. 나 애니메이션 더 해도 되나 보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 2015년도에 해외 영화제 다닐 때 GV를 하면 으레 다음 작품은 뭐 할 거냐고 물어보잖아요. 그래서 이런 소재가 나한테 있다. 이런 걸 하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상 받은 게 역할이 컸고 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에서만 했었으니까 학교 밖에서 단편 하나, 장편 하나를 더 해보고 이 차이가 무엇인지 좀 느껴보고 싶다. 왜 못할까. 그러니까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을 졸업한 뒤에 그 다음 장편을 또 한 사람이 저 말고 아무도 없거든요.물론 현재 제작 중에 있는 사람들은 있는데 완성한 사람은 아직 없어요. 왜 안 될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럴까, 이런 건 경험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도를 했죠.
<창백한 얼굴들>제작기에 언급된 차기작은 개신교와 관련이었는데
그게 <갈라파고스>(2019)예요.
그때 영화제에서 포부를 밝힐 때 <갈라파고스>하고 장편하고 양쪽 다를 얘기하셨어요?
네.
“시나리오는 2015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에 대한 처음 구상은 현재의 모습하고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다른데요. 시작은 똑같은 게 2013년, 2014년도쯤에 구제역 파동이 심했어요. 산채로 땅에 묻는 걸 몰래 찍어서 유튜브에 공개된 걸 보고 나서 그 살처분 현장에서 한 마리의 돼지가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그 설정 하나 있었고 시나리오는 2015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렇게 바뀐 거는 2018년 이후예요.
기획 지원받으면서 바뀐 거예요?
초기 지원받고 나서 다시 쓰면서 바뀌었어요.
호원: 어떤 식으로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동물들만 나왔어요. 다양한 동물들이 다 같이 인간화가 되면서 어떤 계기로 인해서 숨어 살고 인간이 그걸 발견하면서 걔네를 몰살하기 위해 쳐들어온다 이런 거였거든요.
긴 이야기를 가져가기에 동물들만으로는 모자랐던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재미가 크게 없었고 리뷰를 받아 봐도 다들 크게 감흥이 없어서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너무 강하게 받았어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꿔보자.
아카데미에 있을 때 받는 리뷰하고 나와서 받는 리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아카데미 있을 때는 선생님들이 해 주시고 나가서는 동기, 후배, 선배 정도라서 크게 다르진 않은데, 선생님들은 무섭게 혼내는 게 있는데, 지인들은 선생님들만큼 그렇게 혼내지는 않죠. '뭐 이 정도면 괜찮아.' 하지만 보면 표정으로 알잖아요.별로구나 (웃음).
아카데미가 애니메이션과 동기가 한 번에 대여섯 명 되나요?
지금은 4명인데 저때까지는 6명 7명도 됐어요.
영화과 쪽 하고도 교류를 하는 거죠.
영화연출, 촬영, PD 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계속 연락하면서 서로 돕기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영화 연출과 동기들도 저한테 시나리오 읽어달라고 하고, 같이 얘기하고 그런 게 종종 있죠.
눈치로 진위를 파악해야 하는 동기들 반응에 따라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 변하거나 흔들리지는 않나요?
한 명 정도 별로라고 하면은 그럴 수도 있는데, 모두가 영 별로다라고 얘기하면은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본질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니 그렇게 차근차근 바꿔가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초기 지원을 받고 나서는 어느 정도까지 작업이 되었나요?.
2018년에 제가 받은 초기 지원 금액이 2천 5백만 원이었어요. 초기 캐릭터 설정과 초기 배경 설정, 그리고 스토리보드, 시나리오 정도. 스토리보드는 전체는 아니고 일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초기 지원이란 단어 그대로 초기 설정만 할 수 있었고, 시나리오를 많이 다듬는 과정이었어요.

“애니메이션 이제 안 할 거야”
그러고 나서 다음 해 2019년에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영화 장편제작지원을 받았어요?
냈는데 떨어졌어요. 심사평이 좀 절망적이었요. 상업적이지 않은 건 지원하지 않는다라는 맥락으로 쓰여 있더라고요. 어떻게 시나리오와 설정 몇 개만 보고 돈이 되냐 안 되냐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가의 제작지원 기준이 왜 뛰어난 작품성이 아닌 상업성에 무게를 둘까. 결국 이미 돈을 많이 투여한 본격 상업 작품에 나랏돈을 몇 억 더 주겠다는 의미로 저는 이해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내가 하는 작품은 결국 한국에서는 만들지 못하겠구나. 근본적으로 나는 안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이 단숨에 식었고, 그렇게 모든 마음을 정리했어요. 스스로 애니메이션 감독 은퇴를 했어요.
친한 지인들한테는 나 그만두고 딴 거 할 거다. 애니메이션 이제 안 할 거야라고 다 얘기해 놨었는데, 2020년이 되면서 심사위원 풀이 바뀌었다고 이정호 PD님이 반년 이상을 매달 저를 불러내셔서 술 사주시면서 자꾸 이번에 또 내라고. 이번엔 정말 될 수도 있다고 (웃음) 그때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수님이었거든요. 저는 그냥 동문이었고.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안 내기도 뭐 해서 하나도 안 고치고 냈어요.운이 좋게도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심사에 가보니 이전과 심사위원 분들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그렇게 열심히 PT 하고 질문에 답하고 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이 됐어요. 하지만 문제는 영진위가 매년 2개를 선정하고 각각 7억씩 지원했는데, 공교롭게 제가 뽑혔던 2020년에 독립 작품만 3개를 뽑고 금액을 차등 지원했어요. 이 금액으로 과연 만들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게 있었죠.
호원: 코로나 때여서 역병 때문에 힘들어하는 독립 창작자들한테 조금 더 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웃음)
장편 제작지원 결정되고 난 다음 팀을 꾸리셨나요?
첫 탈락이 2019년도 이니까 그 때 이미 서류를 제출할 때 우리나라에서 꽤 큰 영화특수효과 회사들하고 얘기를 했어요. 7억이면 하겠다고 했는데, 4억 받으니까 안 하겠다고 하면서 붕 떠버렸어요. 거기서 또 이정호 PD님이 크리에이티브섬(Creative SUMM) 조혜승 대표님을 소개해 주시면서 서로 원하는 게 맞아서 하게 됐죠.
호원: 이정호 PD님 하고는 그전부터 교류가 있으셨나요?
아카데미 교수님으로 오시고 나서부터, 그때 제가 동문에 부회장이었고 박재옥 감독님이 회장이었는데, 저희가 회의하려고 만나면서 알게 된 거죠.
호원: 처음에는 이성강 감독님이 갑자기 할래 하더니 장편 할 때마다 아저씨들의 유혹이 (웃음)
스태프가 단출하고 안정적인 회사가 붙어 있으니까 제작 과정은 괴로웠을 것 같진 않아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듦은 적어졌죠. 근데 작품 하는 건 언제나 힘드니까. 첫 장편 할 때는 한 공간에서 같이 모여서 했던 스태프들이 다들 어렸고 학생들이 많았어요. 프로를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어서 가르쳐주면서 했기 때문에 저는 그들이 다 퇴근하고 나서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잠을 거의 못 자 힘들었는데, 이번에 할 때는 다들 프로들이니까 딱 근무 시간에 하는 건 편했고 나머지는 비슷한 것 같아요.
호원: 1억 5천과 4억의 차이. 10년의 물가 상승률이 있으니까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웃음)
“이런 비용으로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장편을 작업하는 데 있어서의 괴로움은 어떤 거예요?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드로 그려내는 순간부터 안 맞는 게 생기기 시작해요. 연출 흐름이 안 붙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하지만 제작비는 정해져 있으니까 엄청나게 현란한 것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럼에도 연출적으로 괜찮으면서 스태프들이 훌륭하게 제작할 수 있게끔 조율해야 해요. 이런 것이 힘들죠. 제작비에 한계가 생기면서 이야기도 공간도 한계가 생기고.
스토리보드가 나온 상태에서 크리에이티브섬이랑 얘기를 하면서 수정을 하는 건 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런 건 아주 아주 적은 부분이고, 대부분 제가 그전에 이미 스스로가 이미 다 검열이 돼가지고 (웃음)
호원: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복잡한 거를 빼거나 기간 대비 효율적으로 뽑거나 일 텐데 이 작업에서는 모션 캡처로 바꾸자.
우리나라에서 2D 경력이 높으신 분들은 너무 비싸졌고 또 독립 작품들 거의 안 하시려고 하고요. 그렇다고 2D 잘하는 회사들이랑 할 수도 없는, 그래서 이런 비용으로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그걸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저도 모션 캡처 생각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조혜승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주셨어요. 모션 캡처 선택은 필연이었어요.
호원: 그 이전에 따로 참고할 만한 작품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다 같이 그냥 실패하면서 한 거죠.
2D로 하고 싶었는데, 비용상 3D로 갔다는 말씀이시죠.
2D처럼 보이게 하는 이유도 그렇게 된 거죠.
제작 지원까지 받을 때가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면 코로나가 시작되잖아요. 작품 처음에 신종 구제역 얘기를 하면서 살처분하는 약을 개발했다 할 때 코로나 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런 영향이 있죠. 막 제작하고 있는데 코로나 터져서 저도 격리당하고 그랬거든요.
공동제작사가 따로 있는 것 말고도 코로나 상황이어서 또 따로 작업해야 되는 상황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거의 정지. 서로 만나서 회의를 못해서 디자인 다듬고 모델링하고 이런 간단히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선 했어요. 그게 좀 정리되고 나서 다시 만나서 했던 거 같아요.
2020년에 지원을 받아서 2024년에 발표를 했잖아요.
원래 영진위에서 2년을 주는데, 1년을 연장할 수 있어요. 1년 연장했고 제출해서 오케이 받았는데, 저희끼리 보기에는 영 마음에 안 들어서 조금 더 다듬자. 칸이나 안시가 해가 넘어가면서 출품작을 받으니까 그때까지는 하자 그렇게 됐죠.
그때는 편집이나 합성을 다듬는 건가요?
그것도 있고요. 가장 중요했던 수정은 배경 완성도를 중심으로 합성 효과 디테일을 높이는 작업이었어요.
호원: 스토리에서 크게 바뀐 거는 없었어요?
없고요. 정확히 그림의 완성도.
호원: 모션캡처라는 이 요망한 테크놀로지
그 수정은 이미 앞에서 다 했어요. 캐릭터 움직임은 다 돼 있고 때깔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좀 쓴 거죠.
눈 내리고 비 내리고 산불도 나고 노란 반딧불 파란 반딧불 효과 자체는 단순했던 것 같아요.
그런 효과를 크게 봤을 땐 딱 둘이서 했어요.
직접 하셨어요?
제가 직접 많이 하고, 추가로 합성-효과 담당 스태프가 한 명 더 있었어요. 그리고 추가로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효과들 같은 경우에는 특정 효과를 잘 구현할 줄 아는 스태프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크리에이티브섬은 감독님 작품을 하면서도 자체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그렇죠.
호원: 작업해 왔던 거에 비해서 스타일이나 기법이 상당히 많이 달라져서 아트웍을 생각했던 걸로 간 건지
배경은 디자인이 크리에이티브 섬에서 그릴 수 있는 정도로 조금 바뀐 것 밖에 없고 캐릭터는 초기 디자인에서 완전히 바뀌었어요. 캐릭터 디자이너가 계셔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로 맞춰서 만들어낸 거예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캐릭터 차트
“나만의 연결을 하고 싶긴 했어요”
호원: 메인 배경 할 때 로케도 갔다 오셨어요?
못 가죠. 일본이기 때문에. (웃음) 일본의 자살숲이에요.
호원: 산에서 바로 바닷가인데 저런 노을이 지려면, 한국의 서해안에서 그런 데가 없는 데
그렇죠. 그러니까 한국 배경으로 하려면 동해안으로
호원: 동해로 가면 저 노을이 새벽노을이 되니까 이야기랑 안 맞는데.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웃음)
자살숲에 실제로 목매단 사람들이 주렁주렁 있었던 거예요. 아니면 좀 과장된 건가요.
심하지는 않은데 실제 사진들을 가져오긴 한 거예요
호원: 저는 그 숲 보면서 영화제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김영수 어린이 유괴를 이어버린 거예요.
이었죠.
호원: <선량한 인간들의 도시>에서는 숲이 되게 다른 의미였는데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랑 연결을 해버리니까 어머 이게 허범욱의 유니버스?
(다 같이 웃음)
<선량한 인간들의 도시>에 나왔던 김영수 어린이는 그냥 실종이었는데, 여기는 유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범인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을 할 수 있게 넣었잖아요. 정말로 나의 유니버스를 만드는 느낌으로 한 건가요?
사실 뭔가 나만의 연결을 하고 싶긴 했어요. 그렇다고 생뚱맞게 하고 싶진 않았고요. 2010년에는 저는 김영수가 되게 평범한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도 평범한 아이가 이렇게 된다는 가정을 했더니 같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연결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알 사람은 알겠지 이러면서 편하게 연결했어요.
첫 번째 작품 빼고는 숲이 되게 중요한 곳이더라고요. 숲이라는 게 복잡하고 괴로운 도시를 피해 은신처 같은 느낌이에요,
맞아요.
호원:그런 풍경을 예쁘게 그릴 줄도 알아.
그러니까요. 허범욱 작품은 괴로워 이러면서 그림을 못 본 느낌이 있어요. 매번 멋진 숲이 등장하고 항상 정화를 해 주는 물가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야 아니면 의도해서 만든 건가요?
지금 얘기 들으니까 저도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 보면 의도는 전혀 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여행 가도 자연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 주변에 뛰놀던 숲이 있다든지 동네 뒷산이 있다든지 그렇지 않나요?
별 건 없었어요. 완전한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럼 정말로 판타지의 공간인 거네요.
그래서 더 자연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한창 그림 배울 때도 제가 자연물 그리는 거 좋아했고 도시 그리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이번 산은 정말로 첩첩산중이어서 강원도의 산같이 보였었거든요. 아무런 자료 없이 그냥 그리지는 않았죠?
자료들은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자살 숲이고 그리고 마지막 바닷가는 제주도의 광치기해변을 참고했어요. 이상한 이끼와 바위들이 기괴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참고했고 또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이 강원도쯤에 있긴 하더라고요. 그런 데를 조금 더 참고해서 흐름을 만들었어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자연물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초기 설정할 때도 같이 했던 스태프 하고 자료를 엄청나게 많이 찾아봤어요. 서로 의견 조율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는 과정이 되게 길었고요. 앙리 루소 그림을 참고한 부분도 있고요. 이런 초기 설정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티브 섬 배경 스태프 여러분들과 조율해서 지금의 스타일을 만들었어요.

“그런 취향들이 더 안 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공공연하게 좋아한다고 밝힌 작품이 <복수는 나의 것>(2002)이나 <지구를 지켜라>(2003) 같은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나는 고통을 주는 거잖아요.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을 연출할 때 재밌어요?
재밌다기보다 그 캐릭터에 빙의를 하는 편이거든요.
죽이는 쪽 아니면 죽는 쪽?
서로. 정말 분노에 차 있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 그거를 안 하면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 들어요. 그래서 그런 거는 가리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호원: 문제는 감독님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찌르고 피를 흘린 다음에 ‘오케이 이제 얘기를 해볼까’ 해서
어릴 때부터 그런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이나 최서해 소설 같은 걸 좋아했어요.
최서해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한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 제가 판단하기로는 그 시대의 장르 문학 소설가에요. 『박돌의 죽음』(1925), 『탈출기』(1925), 『기아와 살육』(1925) 이런 단편 소설들이 있어요. 공포 장르 소설로 저는 읽혔고 그 날 것의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도스토옙스키 좋아한다고 하니 작품의 인물들이 『지하 생활자의 수기』(1864) 광인 같아요.
『죄와 벌』(1867)도 그렇고.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 정말 좋아했거든요. <시계태엽 오렌지>(1972), <샤이닝>(1980) 좋아하고. 그런 취향들이 더 안 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취향은 언제부터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에이리언>(1979) 보는 거 되게 좋아했어요. 되돌아보면 그때는 뭔지 모르고 그런 거 좋아했었거든요. 게임도 <갓 오브 워> 시리즈를 좋아했었고.
호원: 제작기도 소제목들을 다 영화에서 따오고
영화를 되게 좋아했었죠.
비디오 빌려서 보고 DVD 사서 보고
그렇죠. 근데 실사 영화도 그렇지만 애니메이션도 장편을 보고 감독 꿈을 키운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미국이나 일본 작품. 특히 디즈니와 지브리 작품을 보고. 하지만 저는 NFBC(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단편을 먼저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게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랑 섞여서 이런 스타일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해요.
그때 봤던 NFBC 작품 중에서 제목 기억나는 거 있어요?
그중에 취향이 들어갔었네.
너무 좋았어요.
호원: 그리고 <평범한 식사>(2009)로 이어는 거죠.
맞아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 그것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거예요. 또 그 시절에 좋은 작품 너무 많잖아요.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는 작품을 그때 한 번에 다 봤으니까 그 기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애니메이션이 되게 재밌는 거구나.
물론 학교 다닐 때 지브리 다 보죠. 그때는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전성기였으니까. 근데 그때는 이거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들었었는데 NFBC 작품 보고 나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좋은 영화가 뭔지도 알게 되고 결합된 것 같아요.
영화로 안 가고 애니메이션으로 간 거는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여럿이서 하는 거는 성격이 안 맞아서 혼자 하고 싶어서였나요?
진짜 어릴 때는 사람을 너무 싫어했어요. 한국영화아카데미 다닐 때도 그랬어요. 그때 동기들이 지금 저의 모습을 보면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게 맞아요. 지금은 괜찮은데 영화를 다 같이 모여서 하는 게 그때는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걸 선택했을 수도 있고.

호원: 구제역 돼지하고 군인 이야기 두 개가 같이 가야 되는데, 원래 기획했던 것 때문에 제목이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로 남아 있는 거죠.
저는 결국에는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인도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 돌아온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안 바꿔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밀고 갔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처럼 돼지가 정말 이렇게 노란 눈이었나요.
그렇진 않고요.
광기의 표현인 건가요.
네네. 디자인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어떻게 했나요?
디자이너 분하고 저하고 성향이 비슷해요. 또 한 살 차이 밖에 안나고 같은 학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그 당시 각자의 부모님이 일하신 동네도 같고요. 좋아했던 거 비슷하고. 정말 이야기가 잘 통하는. 그렇게 몇 번 얘기하고 "좋아요! 그려봅시다!"
디자이너 분은 크리에이티브섬 소속이에요?
아니요. 제가 따로 소개받았어요.
호원: 애니메이션 쪽으로 디자인하시던 분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쪽에서 하시던 분인가요.
특이하게도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이세요. 한강 작가님이 교수로 재직하던 그 시절에! 하지만 이후 그림으로 방향을 정하시고 출판과 광고 디자인 위주로 하시다가 제 후배 작품에 참여하게 되시면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일을 하게 되신 거죠.
후배 누구요?
김정변지 감독인데 그때 아카데미에서 중편을 했어요. 두 사람이 되게 친한 사이었어요. 비슷한 취향의 사람이 있다고 소개받아서 얘기를 해 보니까 정말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 캐릭터 디자인을 제외하면 큰 고생은 안 했어요. 주인공 디자인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니까요.
실제로 제작 들어가서 캐릭터를 수정할 때 캐릭터 디자이너도 같이 관여를 하신 거예요?
그렇죠. 모델링할 때 조금 안 맞는 것들은 같이 논의해서 약간 바꾸고 거의 비슷합니다.
인간형이 된 돼지 팔다리가 호리호리하고 길잖아요. 짐승형이 된 인간도 길긴 긴데 덩치가 커요. 짐승이 되면 강해지고 인간이 되면 연약해지는 느낌으로 설정을 한 건가요?
돼지가 인간이 됐을 때 뚱뚱하게 표현되잖아요. 우리 서로가 그거는 아니다, 뚱뚱하면 멋없는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붉은 돼지>(1992,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도 있고 흔한 건 하지 말자. 얘가 신경질적이면서 자기만 아는 성격이 있는데, 그거를 잘 표현하려면 돼지지만 호리호리한 느낌이 나야 되지 않을까.
호원: 감독님 작품 캐릭터 디자인에서 당연히 눈이야 중요하지만 유독 손이 독특했어요. 초기 작품부터 과도하게 크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고 에곤 쉴레 그림처럼.
잘 아시네요.
호원: NFBC 작품에서도 라이언 라킨이 <워킹>(1968)이나 <스트리트 뮤직>(1972) 할 때도 손이 기괴하게 뒤틀리는 게 여기 뭔가 꽂힌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싶은데
제가 그림 배울 때 에곤 쉴레에 빠져 있었어요. 그리고 만화 『핑퐁』, 『철콘 근크리트』, 『GOGO 몬스터』 마츠모토 타이요 그림도 좋아하고. 그 영향인 것 같아요.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처음에 봤던 돼지는 어려 보이는데 인간이 되는 걸 보면 굉장히 거친 성인 남자예요. 인간과 돼지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인간은 죽고 싶어 하고 짐승은 살고 싶어 하고 인간이 된 짐승은 또 죽고 싶어 하고. 감독님은 이걸 통해서 인간 관객의 희망을 죽여버리고 싶은 건가.
(웃음)
호원: 그러니까 관객하고 싸우자 하면서 만든 작품인 게 보이기도 하고
관객 생각을 아주 안한건 아닌데, 비율로 보면 안한 편에 가까워요. 이게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에 그동안 제가 한 경험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만들면서 9년이 지나다 보니까 관객을 생각 안 하게 되고 힘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내가 그 뒤에 뭘 더 하겠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그래도 그동안 보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있으니 완전히 관객을 잊고 도망가진 않았어요. 스스로 여러 검열들을 하게 되는 흐름이 분명 있어요. 더 최악의 극단으로 가는 건 자제하고 영화적으로 훌륭해 보여야 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그렇게 하면 작업을 하는 감독님으로서는 희열이 느껴지나요?
희열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스스로가 정리되는 느낌인데, 내가 일단 만족해야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내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관객들 만족시키려고 바꾸면 스스로가 만족을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아서 망하든 말든 내가 만족하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다 하자. 평가는 내가 할 수 없는 거니까 만들 때는 내가 원하는 거 끝까지 가야 된다라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돼지가 처음에는 피해자니까 동정을 하게 되는데 그다음부터 폭주를 하니까 얘한테 이입해서 함께 갈 수는 없어.
호원: 나 이 작품 너무 재밌어.
(다같이 웃음)
호원: 15분까지 몰입해서 보게 돼요. 그러면서 두 개가 서로 다가와서 만나는 지점이 있겠지 하는데, 그 순간에 얘기가 엇갈려 버리기도 하고 비슷한 공간에서 서로 맴도니까 모두가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돼지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돼지가 되면서 서로의 모습이 같아지겠지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데, 그것도 안 해. 감독이 관객을 가지고 노는 거죠. (웃음)
저는 처음에 보고 되게 힘들었거든요.
힘들죠.
관객이 힘들 때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지루하고 졸린 것보다 차라리 괴로운게 낫지 않나요?
다시 보기 힘들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보니까는 좀 더 편하더라고요.
호원: 돼지가 인간에 대한 썰을 푸는데, 돼지의 지능으로서의 한계가 있잖아요. 얘네들은 되게 진지한데 옆에서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제가 돼지에 빙의하면 그럴 것 같더라고요.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기가 본 것들.
호원: 저 수준에서는 진지해. 그러니까 얘네들은 다 진지해. 서로가 인간을 추구를 하는데 수준이 이러니까 완성형이 안 나오는 거야. 그 얘기를 풀어나가는 거 보면 ‘제법 치는데?’
(웃음)
"인간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창백한 얼굴들>에 나오는 두목이랑 뚱보랑 민재처럼 여기서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잘생긴 상사하고 뚱보 이인자랑 정석이, 같은 구도예요.
클리셰를 쓴 거예요. 제 기억으로도 그랬었고 괴롭히는 사람은 되게 험악하고 윗사람은 여유롭거나 잘생길 수도 있고. 여기서 보기에 짧은 시간 안에 다 파악이 돼야 되니까 더 꼬고 싶지는 않았고 누구나 봐도 한 번에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을 시작하면서 보여줘야 되니까.
멧돼지 무리도 클리세로 쉽게 이해할 수도 있는데, 장로가 있고 덩치가 있고 외부자가 들어오면서 권력관계가 세 번 바뀌는 양상이 세상에 믿을 놈 없다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보입니다.
인간이 다 그런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긍정적으로 가면 다르겠지만 이거는 부정적인 영화 흐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상황 자체를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통해서 보여줘야 되는데, 한국 멧돼지 디자인으로만 하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세계에 있는 각종 멧돼지들을 가져왔어요. 특히 디자인적으로 우락부락한 돼지들이 있더라고요. 원래 한국에 그런 멧돼지 안 살거든요. 캐릭터에 맞게 배치를 하고 인간 군상을 동물 사회 안에서 보여주는 방식을 조금 편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전작과 10년의 차이가 있잖아요. 세월이 지나도 인간은 안 변한다.
안 변해요.
호원: 저는 많이 변했다고 봐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같은 경우는 감독이 자기하고 계속 싸우는 거예요. 돼지에서 인간으로 가는 쪽 하고 인간에서 돼지로 가는 쪽 이 두 개를 잘못 놓으면 대칭이 돼 버려요. 너무 전형적인 카테고리를 짜버리면 얘기가 되게 뻔해. 자기 혼자서 계속 밸런스를 깨뜨리기도 하고 유형에서 벗어나려고도 하다 보니까 문득 전날 쓴 시나리오를 찍찍 지우면서 여기서 조금 더 허물어뜨려야 돼! 교란을 줘야 돼! 관객하고 놀기 위해서 감독이 자기를 괴롭혔겠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창백한 얼굴들>은요?
호원: <창백한 얼굴들>은 아직 20대 말 30대 초여서 젊은이의 혈기도 있고 그때 느끼는 겉멋도 있는 거예요. 그때 그걸 만들어야 10년 후에 그다음 얘기가 나오는데, 똑같으면 얘기가 뻔했을 거예요.
<창백한 얼굴들>에서는 확실히 이 작품을 통해서 자기가 20대 말에 풀고 싶은 썰이나 가오를 잡고 시니컬하게 훗 하면서 돌아서는 거지.
(다 같이 웃음)
인간 세계의 권력 구도에 대한 시선은 변하지 않았잖아요.
호원: 그렇죠. 작품을 보면 이 감독은 그것 때문에 힘들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데, 그러면서 자기를 또 괴롭히는구나. 근데 그래야지 그다음 단계로 좀 더 단단해져서 가는구나. 그러니까 이 감독은 마음 편하게 평화롭게 살고자 했으면 애니메이션을 안 했어야 되는 거고.
맞아요. (웃음)
호원: 그러기에는 계속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거야. 애니메이션으로 푸는 게 그냥 이렇게 해서 행복해졌습니다라고 하면은 성에 안 차는 거지 만들면서 자기도 괴로워지고 근데 괴로워지는 게 마냥 싫지만은 않아.
마냥 싫지만은 않죠.
호원: 되게 독특한 캐릭터의 감독인 거예요.
고통을 일부 즐기긴 하는데
호원: 얼핏 보면은 연상호에서 시작하나 했는데 어느 순간에 김기덕과 라스 폰 트리에가 있네.
한때는 좋아했었죠.
호원: 확실히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장편을 한 번 했고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면서 장편을 한 거잖아요. 이게 단지 10년 주기가 아니라 굵직하게 30에서 40으로 넘어가는 마디예요.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는구나.
호원: 절묘한 시기에 재미난 감독을 만나서 희한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쪽에 이렇게 치고 들어가는 파이터형 캐릭터가 별로 없어서 좋았어요.
이젠 없지 않나요? 못 본 것 같아요.
호원: 고통이 뭔지, 피가 뭔지, 쑤시는 게 뭔지를 건드려주는 감독들도 있어요. 이게 영화면은 또 다른 코드가 돼요. 근데 애니메이션은 한 번 더 걸러서 그림을 그리거나 더 진하게 표현을 해야 되기 때문에 왜 굳이 그렇게 그렸어 자기가 거기에 대한 할 얘기가 있어야 되는 거지. 그랬을 때 허 감독님은 진짜 할 얘기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 얘기를 보면 ‘한번 싸울텨?’ 그런 게 있어요.
“그럴 거면 모션 캡처를 뭐 하러 하냐는 거죠”
작업할 때 여러 가지 기법을 섞어 쓰는 것도 좋아하시죠.
좋아해요. 다 NFBC에서 온 거. 이런 기법들을 한단 말이야 이러면서 (웃음)
호원: 칼아츠 실험 출신들도 그렇죠. 조득수 선생님도 그렇고.
그렇죠. 공교롭게 제가 아카데미 다닐 때 정규 과정 교수님이 두 분이 다 칼아츠 실험 애니메이션 전공이셨어요.
서혜승 선생님, 조득수 선생님
저도 NFBC 좋아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기법들에 대한 재미를 엄청나게 느꼈고 그런 걸 적절히 쓰면 좋더라고요.
호원: 중간에 툭 들어가는 기법이 과감했어요. 보통은 이거 넣어도 되나 쭈뼛쭈뼛하는데, 여지없이 때려 넣기도 하고 <선량한 인간들의 도시> 같은 경우는 추상적으로 넘어가니 너무 예쁜 거예요. 모든 작품에서 그렇게 툭툭 한 개 이상의 실험적인 게 들어가기도 하면서 작품들이 볼륨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섞어 쓰는 게 저는 좋거든요. 특정 감정을 더 극대화 할 수 있는 저만의 연출 방법이기도 해요.
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매번 다른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3D를 했는데, 직접적인 작업은 공동제작사에서 했겠지만 기법에 대한 연구를 했나요?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았어요. 근데 그 이상까지 제가 하면은 연출을 못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믿고 같이 확인했어요. 기본적인 액팅은 거의 모션 캡처로 하면서 배우님하고 협의를 통해서 현장에서 하는 거라서 영화 찍는 듯이 했어요.
최소한의 스태프와 함께
그렇죠. 초창기여서 다듬는 게 오래 걸리긴 하는데, 거기서 가져온 액팅은 명확하니까. 그거는 이렇게 다듬자 정도만 얘기해도 다들 알아듣고 하니.
모션 캡처를 하면 기본 모델링에 움직임을 연결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모델링 된 캐릭터에 모션 캡처 데이터를 넣어요. 인형에 영혼을 넣는거죠.
호원: 원리상 그런데, 크리틱 들어갔을 때 다른 케이스는 그렇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하다고
철저하고 섬세하게 동선을 짜고 명확한 연출을 하면 문제는 없어요. 고치지 못한다면 그렇게 해야죠.
고칠 수 없다는 거는 움직임 데이터를 가져와서 넣기 때문에 따로 움직임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할 수 있는데, 그럴 거면 모션 캡처를 뭐 하러 하냐는 거죠. 이미 명확한 연출이 정해져 있고 스토리보드랑 애니메틱 릴까지 완벽하게 있는데, 연출대로 가면 문제가 없잖아요.
그 선택은 애니메이션을 일일이 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배우 연기로
그런면이 있긴 하죠. 하지만 장점도 있어요. 카메라를 마음껏 돌려볼 수 있다는 게 좋긴 하더라고요. 데이터 가지고 와서 제가 원했던 스토리보드랑 애니메틱 릴에 붙여보면 그 샷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2D 같은 경우는 다시 그려야 되는데 이거는 배경을 아직 안그렸다면 카메라만 돌려서 여러 확인을 해볼 수 있어요. 액팅을 유지하면서 구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연출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 부분에 자유로움이 있긴 했어요.
배경은 2D로 했어요?
배경은 2D예요. 그래서 캐릭터도 최대한 2D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했죠.
호원: 모션 캡처를 글로만 배운 입장에서 센서 포인터들이 늘수록 비용이 더 비싸죠?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장비의 종류에 따라 센서가 들어가는 숫자가 다르니까요. 저희는 기초적인 장비로 했어요. 정말 최소로 필요한 센서만 정확히 딱 있었어요.
“진짜 흔한 애니메이션처럼 하지 말자”
호원: 남도형이라는 성우가 주요 인물을 다 해버리니까 감독님이 이 작품에서 모든 캐릭터는 하나의 인물이기도 하고 우리가 다 거기에 대입되기도 한다라는 말이 실제로 배우가 그렇게 했어.
의도한 거죠.
호원: 서독제 GV에도 같이 오신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배우님이 매력적이었어요. 배우라는 직업도 그렇고 이 작품에서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풍부해서 설득력이 쑥쑥.
서로 재밌게 했어요.
액션만 연기하신 분은 목소리 연기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하고 싶다는 뉘앙스를 살짝 내비치시긴 했는데요. 하지만 저는 줄곧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에서 배우분들 캐스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제 취향에 맞는 목소리 연기 작품을 거의 못 본 것도 한몫하기도 해요. 제가 판단하기로는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전문 성우분들과 거의 대부분 작업을 함께 해요. 그 대신 성우분들께 하나의 주문을 하죠 진짜 흔한 애니메이션처럼 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하자 억지로 목소리를 만들지 말자. 실력 있는 프로 성우분들이 진짜 연기처럼 해 주시고 그게 싫으면 아예 처음부터 안 한다고 하시니까 크게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이게 편하더라고요. 다 너무 오랫동안 다양한 역할들을 해보셨기 때문에 몇 마디 하면 바로바로 나오거든요. 그게 저한테도 도움이 되고.
호원: 이번에 할 때는 배우가 먼저 액팅을 하면서 대사도 같이 치고 그다음에 성우 더빙으로
조금 달라요. 기술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됐었기 때문에 일단 액팅을 했어요. 물론 실제 연기할 때는 몸에도 감정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대사는 해야 하죠. 하지만 일단 배제한 채 액팅 연기를 하고, 차후에 따로 얼굴만 다시 한번 땄어요. 대신 최종 성우 녹음한 것을 바탕에 깔고, 그거에 따라 입모양과 표정 연기를 하는 거죠.
얼굴 연기할 때는 센서 같은 게 더 들어갔나요?
핸드폰으로 하는 거예요. 아이폰 라이다(LiDAR) 센서로 되거든요. 이게 정말 초창기 기술이라 막 엄청나게 디테일하게 들어가지는 않는데, 애니메이션 쓸 정도의 표정은 들어가니까. 너무 자연스러우면 징그러울 것 같아서 이렇게 적당히 들어가도 괜찮다 싶었어요.
아이폰으로 딴 움직이는 데이터를 3D 모델링에 적용하는 거예요? 머리만 뽑아가지고 하는 거네요.
머리가 아니고 (손가락으로 얼굴 외곽을 동그랗게 따라 그으며) 얼굴만.
2025년 3월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2025년 1월 15일 @ 망원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