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ion Note_New-Word Tour
뉴-월드 관광 New-World Tour | 2024 | 9mins 20secs | dir. 이문주 LEE Moonjoo
보고 싶어
2024년 가을 20회를 맞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의 대상 '인디의 별'은 이문주 감독의 <뉴-월드 관광>이었다. 가족과 함께 보낸 1978년의 여름을 되살린 작품은 1995년 <틈>으로 데뷔한 30년 차 감독의 사적인 경험이지만, 옛 도시의 풍경과 온갖 먹거리, 바닷물과 모래, 바람 등 시각과 후각, 촉각을 자극하며 동세대는 물론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향수를 일으킨다. 주관적 기억과 객관적 기록을 비교 재현한 구체적 세계의 진정성과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의 내밀한 추억이 감응한 것이다. 2024년 11월,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최신작의 첫 상영과 첫 수상의 영광을 누린 이문주 감독을 자택에서 만났다.
“생동감을 주는 종류의 사람을 애니메이터라고”
첫 상영을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서 하셨죠?
진짜 지원 마감 커트라인 되기 전에 완성해서 인디애니페스트 내서 월드 프리미어가 됐어요. 두 번째는 서울독립영화제는 새로운 선택 부문이 될 것 같아요. 그 이후에 배급사 넘겼어요.
2021년 SBA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작입니다.
원래는 작년에 완성을 해서 페스티벌을 돌아다닐 거였는데, 1년 정도 더 묵혀뒀다가 추가 작업을 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작업을 했나요?
<어릿광대 매우매우 씨>(2016)를 만들었을때의 시점인 것 같아요. <매우매우 씨>는 제가 원작자가 아니고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서 했기 때문에 기존에 제가 쭉 해왔던 작품의 성격과 세계관 하고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것도 힘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서 발표도 늦어지고 시간이 좀 걸렸는데 <매우매우 씨> GV 자리에서 누군가 이제 앞으로 어떤 걸 해보실 거냐 물어봤을 때 제가 “나이 들어간다는 거에 대해서 만들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더니 옆에 김준기 감독님이 막 웃으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40대 초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요. <40>(2020)을 기획하고 나서 그 생각의 연장선에서 키워드가 과거 또는 나이 든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제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다가 <뉴-월드 관광>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집에 있는 오래된 앨범을 어쩌다 한 번씩 열어서 보면 그때마다 ‘맞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라는 생각을 했고 그 당시에 페이스북에도 어렸을 때 이야기들을 쓰고 그랬었어요. 저한테 재밌었던 에피소드들을 막 쓰고 그랬었는데, 사람들이 재밌다고도 해주기도 하고.
대략 이때쯤 내가 이 나이였고 어머니 아버지가 이 정도의 나이였고 형제들은 다 이랬는데, 현재 시점에 그간에 있었던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우리 가족과 그 당시가 너무 차이가 있다.
가족 내에 더 이상 태어날 아이가 없고 완성된 상태에서 가장 젊었을 부부가, 우리 가족들 전체가 다 같이 갖고 있는 행복한 순간 아닌가. 그리고 그 시절 엄마 아빠는 그 이후 벌어질 상황을 전혀 모르시는 그 시절에 엄마 아빠를 한번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예전에 제가 만든 <너의 근원>(2011)에 이어지는 얘기예요. 그 작품 마지막에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혼자 나와서 박수를 치시시거든요. 그리고 뭐라고 소리는 안 나오게 발음을 해요. 그 작품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때도 이렇게 하면 내 과거의 누군가, 지금 안 계신 분에게 생명을 줄 수가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의 어원이 아니마 이런 거 있죠. 너무 진부해서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레토릭인데, 외국에서 애니메이터라고 했을 때 그림 그리는 애니메이터라고 아는 분들보다는 다른 식으로 아는 분들이 꽤 있어요. 에어로빅하는 사람처럼 생동감을 주는 종류의 사람을 애니메이터라고 하는 경우들이 꽤 있더라고요.
호원: 액티베이터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푸시하는 사람 있듯이
여러 가지로 그런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때 당시의 마음에 ‘한번 살아나게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있었고 <뉴-월드 관광>도 그거랑 이어지는 심리죠. 작품을 만들 때 ‘다시 한번 살려 내서 내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이런 마음이 가장 강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사진은 대체로 부모님 댁에 있잖아요. 가서 가져오신 거예요?
부모님의 존재가 확실할 때는 당연히 ‘그건 여기에 있어야 돼’라는 소속이 분명하지만 부모님들이 많이 연로하시고 가족 안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잃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렇게 되다 보면 우리가 갖고 있던 가족 물건의 주인이 조금씩 변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앨범도 사진들이 빽빽하게 있다가 누군가 ‘이거는 내가 가져가도 돼’ 이렇게 조금씩 빠져나가고 남아있던 것 중에서 ‘우리가 모여서 같이 이거에 대해서 얘기할 일은 없을 것 같고 각자 추억으로 하자면 내가 이걸 가져가도 되겠다’ 생각을 해서 몇 장을 좀 뽑아왔죠.
“제가 기억하는 거를 검증을 계속했습니다”
호원: 네 자매신의 막내신가요?
네.
호원: 제일 큰 언니하고 몇 살 차이가 나요?
7살.
호원: 평소에 자매끼리 토크가 많아요?
저희 그렇게 살가운 자매는 아니에요.
작품 안에서도 큰 언니들 둘이 놀고 작은 애들 둘이 노는 느낌인데 실제로는 아니에요?
그거는 제가 이야기를 억지로 만든 거예요. 셋째 언니는 ‘내가 이 집 막내였는데’ 갑자기 제가 휙 나온 거니까 조금 더 혼자서 있었던 것 같고 큰 언니는 원체 큰 딸의 그런 게 있으니까 제 기억에는 둘째 언니가 항상 저를 많이 케어해 줬어요.
캐릭터 디자인이 셋째랑 넷째가 거의 비슷해요. 옷도 똑같이 입혔잖아요
옷은 당시 그대로예요. 진짜 둘이 똑같이 옷을 입혔고 똑같이 바가지 머리를 잘라놨어요.
호원: 난 보면서 감독님이 셋째 딸이었구나. 동생이 하나 있구나. 맨 마지막에 엔딩은 막내가 엄마 손을 잡고.
작품의 중간 버스 타고 갈 때까지는 헷갈리셨을 것 같아요.
감독님 때까지도 네 자매가 흔했나요?
아니요. 4명이면 많은 편이었어요.
계획에 없었던 건가요 아니면 한 번 더 도전해 본 거예요?
호원: 귀남이기를 바랐는데 후남이*
그렇죠.
*1992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의 이란성 쌍둥이 남매 중 누나
SBA 제작지원 들어가고 별로 변화가 없었어요 아니면 그거 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제가 예전부터 기획을 하면 거의 그대로 가는 편이에요. 그게 계속 안 고쳐지는 저의 단점이거든요. 사실 저는 좀 고쳐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학교 다닐 때 시험 볼 때 꼭 마지막에 다시 검토하고 나오자라는 마음을 먹어도 결국엔 그러지 않잖아요. 냈을 때는 스토리보드가 좀 더 길었어요. 버스를 탈 때도 엄마 아빠가 힘들게 애들을 케어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애들은 버스 안으로 뛰어서 들어가고 아빠는 짐을 싣고 있고 셋째는 괜히 그거 보고 있는 광경도 있고 몇 가지가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많이 뺐어요.
어느 단계에서 뺐어요?
작화를 하면서부터 뺐죠. 서울에서 빠져나갈 때도 조금 더 옛날 서울 풍경을 더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동대문 종합터미널에서 나올 때 당시에 동대문과 이화동의 분위기가 있어요. 버스 안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도 더 디테일하게 넣으려고 했는데, 그런 것도 팍팍 빼고.
그건 작품 흐름 때문이에요 아니면 작업 분량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작업 분량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흐름 상으로도 뺐어야 됐었어요. 본 내용은 사실 뒤쪽에 더 가까운데 앞이 너무 길어지니까 너무 루즈한 거예요. 그래서 막 들어냈어요.
마감 제출을 한 후에도 조금씩 조금씩 저만 아는 어떤 것들을 조금 줄이거나 뺐어요. 흐름이 안 그래도 상승 곡선을 타고 가는 서사 구조가 아니잖아요. 리듬이 거의 똑같이 가다가 조금 늘어지면서 툭 끊겨야 되는데 앞에 똑같은 애들이 몇 개가 더 껴 있으니까 힘이 빠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지루해지기 전에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편집했죠.
제 기억으로 가장 오래된 서울은 90년대라 이미 아파트 단지 있고 높은 빌딩도 있어요. 작품 속에서 보이는 1978년의 서울은 지방 도시 같은 느낌이예요. 어렸을 때 봤던 모습인가요?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는 가장 높은 빌딩이 삼일빌딩(31빌딩)이었으니까. 요즘에 옛날 풍경 사진 디지털 복원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잖아요. 그런 걸 많이 참조를 했는데, 제가 알던 거랑 다른 느낌은 아니었어요.
삼일빌딩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청계천, 삼일고가.
호원: 동대문터미널에서 출발해서 삼일고가를 타고 서해안으로 빠져나가는 동선이 있거든요.
그게 서해안이었어요? 저는 바다 하면 동해인 줄 알았어요.
그 사진은 서해를 갔던 거예요. 동대문종합터미널이 존재하는 걸 알지만 어린이가 디테일은 모르잖아요. 찾아서 이 각도에서 보고 저 각도에서 보고 하니까 터미널이 나눠져 있더라고요. 한 쪽은 경북 방향하고 동해로 가나 다른 한 쪽이 서해 쪽으로 가는 거예요. 아빠가 표 구했어 하고 손 흔들 때 보면 대천 뒤에 전주 써 있거든요. 그건 몰랐죠.
보통 우리가 동대문 종합터미널이라고 하면 지금 동대문 종합상가를 얘기하는 거고 우리가 서해를 가기 위해서는 이쪽에서 버스표를 샀을 것 같다. 버스도 거기서 탔을 것 같다라는 걸 제가 머리를 써서 한 거죠. 제가 기억하는 거를 검증을 계속했습니다.
도시가 엄청나게 변했겠네요.
예전에는 서울이라는 범위가 더 작았었으니까 이런 동네(은평구)는 다 외곽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가 동대문, 이화동 쪽이었나요?
저희 집은 지금은 광진구고 옛날에는 성동구였던 중곡동이었어요. 저희 큰 집이 여의도였는데 거기서 택시를 타면 삼일고가를 지나서 가는데, 가다 보면 갑자기 청룡열차처럼 훅 떨어지거든요.
호원: 램프가 딱 꺾이면서 아세아극장이 있고.
저는 첫 장면이 옛날 서울역 앞 모습인가 했었어요. 큰 건물이 대우빌딩인가 하고요.
중간에 버스가 쭉 지나가는 장면에서 고가를 쭉 가는 게 있어요. 그 뒤에 갈색 빌딩이 삼일빌딩을 그린 거예요.
호원: 대중교통을 타고 삼일고가를 지나가면 서울을 가장 높은 데서 바라볼 수 있는 거였어요. 그때만 해도 세운상가가 나름대로 새로운 빌딩이고 되게 멋진 풍경이었죠.
“지금 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찾은 게 아닌가”
서울은 앞부분에 잠깐 나오고 바다로 갑니다.
호원: 발바닥이 간질간질거리고 발가락 사이로 뻘이 퍼지는 느낌이 있고 장면에 소리가 있고 냄새가 있고 촉감이 있어요. 기억이 구체적인 감각으로 전달됩니다.
마지막에 뭘 따먹는 거죠?
석화, 바위굴
그런 굴이 관광객이 잡을 수 있을 만큼 널려 있나요?
옛날에는 바닷가 가서 많이 따먹었어요.
호원: 서해는 천천히 깊어지기 때문에 애들 있는 가족들은 서해에서 바다 체험을 하고 어느 정도 큰 다음에 동해나 남해를 갔어요. 70년대 후반 내 또래의 아이들의 첫 번째 바다는 서해였어요.
서해가 동해보다 가기 편해서는 아닌가요?
길이 안 좋았으니까.
호원: 대관령 미시령 넘어가야 되고 5~6시간 걸리고 물이 차갑다 수심이 가파르다는 것도 있고 서해는 가면 물은 좀 지저분하겠지만 애들이 뻘에서 놀 수 있고
조개구이에 한잔 할 수도 있고
그런 건 없었어요.
그럼 그때는 자연에서 채취하는 재미로?
제 기억에는 민박집에서 굴 캐는 걸 빌려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외부인들이 채집을 해도 됐나 봐요.
그거는 판매용 굴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을 테고 굴이라는 게 옛날에는 정말 싼 거니까.
후각을 사로잡는 라면 장면이나 굴 장면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건가요?
실제 경험이고 굴을 캐는 사진이 있어요. 그날 거기 가서 라면을 먹었는지 기억 안 나지만 아버지가 가끔 놀러 가거나 등산을 가거나 하면 그 코펠 가져가서 라면 끓여주셨거든요. 민박집 같은 데서도 쉽게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것 같고 저희 때야 해수욕장 주변에 식당이 있지도 않고 민박집에 있는 거니까 거기서 보통은 해 먹잖아요. 엄마들도 반찬을 바리바리 싸 오고. 그것도 향수인 거죠. 지금 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찾은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잠재적으로는 지금은 없는 풍경을 찾으려고 한 게 아닌가.
코펠이 커봤자인데, 입은 여섯이고 저걸 누구 코에 붙여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빠가 다 나눠주고 자기가 먹을 건 얼마 없으니까 애들 먹는 거 쳐다보는 장면은 상상이에요. 과거의 이야기니까 조금 더 과거스러운 장면들을 넣자. 나한테 인상 깊었던 것을 넣으면 다른 사람들도 알지 않을까. 나는 처음 바다를 간 아이인 거예요. 아이가 바다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엄마 손 잡고 해수욕장 물속에 들어가면 튜브에 몸이 들어있는데 점점 발이 떠오르고 여기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바닷물의 짠맛 이런 것들을 넣은 거죠. 어머니 뒤에서 파도가 막 들어오는 장면도 조금은 의도적이에요.
마지막 바람도
그건 정말 완전히 제가 만든 거죠. 사진을 보면 아빠 머리가 막 날리는 상황이니 당연히 바람 많이 불었을 테고요.
“이건 꿈이 아니거든요”
이미지는 수채화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수작업을 하셨어요?
프로크리에이트로 했어요.
언제부터 쓰셨어요?
이번 작품이 처음이에요. <뉴-월드 관광> 기획하면서 아트워크 만들면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왜 이 소프트웨어를 선택하셨어요?
<괜찮아? 미쉘,>(2012)도 그랬고 <40> 만들 때까지만 해도 종이에다 작화를 하고 라인 클립업까지 한 상태에서 스캔받아서 컴퓨터에서 채색을 하던지 아니면 채색한 것을 갖고 와서 텍스처를 넣는다든지 이런 식이었거든요.
아직은 손으로 작화를 하는 게 디지털 선에서 나오는 느낌 하고는 다르다고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저는 원래 디지털로 시작을 했어요. 1995년부터 디지털로 그리면서 작업을 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작업을 했는데 아무리 디테일하다고 그래도 디지털로 작화를 했을 때 나오지 않는 느낌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섬세함이나 부드러움이나 이런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디지털 어니언스킨으로 작화 체크하는 거하고 종이를 넘겨서 보는 작화 체크 방법하고 느끼는 게 또 달라요. 그러면 뭘 고쳐야 되냐라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에 작업하는 메카닉으로 연결이 되거든요. 그리고 디지털에서는 손쉽게 카피를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2000년대부터 손 작화로 돌아온 거예요.
다시 디지털로 오게 된 거는 힘든 거죠. 그리고 스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고요. 스캔하면 라인이 깎여나가거나 공정이 복잡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번에 프로크리에이트를 보니까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어떤 느낌이 나오는 거예요. 채색 방법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복잡한 공정으로 만들었지만, 라인을 잃지 않으면서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뽑아낼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된 거예요.
채색은 어떻게 작업하셨길래 복잡하게 됐습니까?
개별 캐릭터마다 라인 색깔을 조금씩 다르게 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 애들하고 엄마 아빠가 다르고 엄마 칼라 아빠 칼라가 다르고.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머리카락 색깔 이런 것들 다 차이를 두면서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관객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디테일과는 상관없는 선택인가요?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 혼자 작업할 때는 그러는데 일을 드릴 때 너무 복잡한 거예요. 저는 하면서 숙련이 됐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이분들은 색을 다 다르게 하라고 설명을 드려야 되고 별로 얻는 거는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약간은 더 예뻤겠지만.
호원: 최첨단 툴을 가장 원시적으로 (웃음)
매우 원시적으로 썼어.
툴이 발달을 하면서 전 세계 어디서나 완성도는 높지만 비슷한 룩이 나오는 경향이 있잖아요. 사람이 고생을 해야 다른 룩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다음 작업은 캐릭터 수를 줄이든가.
캐릭터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러게 웬일입니까. (웃음)
호원: 이 작품은 빼느라고 힘든 작품이지 뭘 채워 넣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못 넣었거나 빼서 아쉬웠던 게 있어요?
버스를 탈 때 과정 스토리보드를 정말 디테일하게 열심히 짰거든요. 그거를 못 넣은 게 좀 아쉽긴 해요. 아빠가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지는 이유가 사실 아빠가 짐들을 다 처리하고 아빠 옆에서 신이 난 셋째도 케어했기 때문이예요. 첫째 둘째는 조금 컸으니까 자기네들끼리 막 뛰어다니고 엄마는 막내 데리고 와서 앉히는 과정이 보이지 않았죠.
그리고 이건 제 능력 밖이었는데, 아이들이 과자 먹을 때 조금 더 재미있게 표현을 할 수 없었을까 좀 평이하게 나와서 아쉬웠어요.
호원: 작년에 작업하실 때 인디애니페스트 심사하면서 <메아리>(2023, 김상준)도 봤던 시점인가요?
그때는 때려치웠을 때고요. 작업은 작년 말부터 했나 올해 새해되면서 했나 그랬어요.
호원: 김상준 감독이 노스탤지어를 다뤘기도 해서 나름대로 감독님 입장에서는
<메아리>에서 너무 좋았던 거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아파트가 살풍경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80년대 90년대 정도의 아파트 풍경을 이렇게 잘 담은 게 있나 싶을 정도로 확 온 것도 있고 감독이 자신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굉장히 세련되게 넣었다는 거. 왜 앞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응집되는지 부드럽게 착 넣어주신 부분에 감동을 했던 것 같아요.
음악도 너무 좋았어요. 저랑은 그 부분에서 갈린 텐데 조금 아쉬운 건 마지막에 노래가 나오는 거.
가사 있어서? 그거는 취향이죠.
맞아요. 노래가 나빴던 건 아니야.
직접적으로 표현하시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시네요.
관객들한테 그렇게까지 내 감정으로 다 넣어주고 싶지 않아요. (웃음)
2024년 12월 15일 이문주 스페셜과 포커스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2024년 11월 6일 @ 은평구 신사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