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ion Note_How to Get Your Man Pregnant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How to Get Your Man Pregnant | 2023 | 29mins 59secs | dir. NOH Gyeongmu
함께 하자, 무엇이든
2030년 대한민국, 1992년 생 동갑내기 강유진과 최정환은 10년째 인공수정을 시도했고 또다시 실패했다. 바로 그때 부부는 남성임신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알게 된다. 출생률에 사활을 건 의학박사 김삼신과 대를 잇기 위해서라면 어떤 파격도 수용할 태세인 99세 가부장 최남진은 극과 극에서 일치한다.
대사 없는 7분짜리 졸업 작품 한 편이 전부인 초짜 애니메이션 감독 노경무는 등장인물도 많고 대사도 많은 30분짜리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을 만들며 또래 아티스트들을 섭외하고 베테랑 애니메이터, 성우들과 일하고 유명한 음악가들과 협업했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관리엔 이력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같이 하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내가 무슨 또 애니메이션이야”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마지막 수업쯤에 선생님이 장편 과정에서 만들 30분짜리를 기획을 해보라고 했을 때도 “내가 무슨 또 애니메이션이야” 이러면서 이 수업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개발한다면 졸업하고 만화를 그리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이정호 선생님이 “다음 장편 과정 진짜 지원을 많이 해줘. 이런 돈은 다시 나오지 않아” 이런 식으로 계속 바람을 넣으셔서 ‘내가 내 작품 하는데 억대의 돈을 줘’ 어느샌가 '내가 이걸 못 먹으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하기 전에 쓰기 시작했군요.
12월에 워크숍을 하면서 세 번 정도의 수업 동안 시놉시스를 썼어요. 선생님이 세 가지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한 가지밖에 못 썼고 그게 남성 임신이었어요. 저는 쥐어짜야 나오는데 다음에 할 아이템이 무궁무진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쥐어짰길래 이제 까지랑 완전히 다른 얘기가 나왔죠?
30분짜리는 은유적인 걸로 안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옛날부터 내 주변에 있는 이야기로 쓰기 시작했는데, 결혼을 하기 전에 딩크로 살자고 “서로의 부모님한테 당신 자식이 불임이라서 애를 못 갖는다고 거짓말을 치면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이 없다” 약속한 친구가 몇 년 동안 그 얘기를 저한테 했거든요.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아기를 낳기 싫어서 남자친구를 설득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만약에 남자도 임신할 수 있으면 같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의 상황에 남성임신 기술을 넣어보자 이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내러티브가 선명한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기획을 했을 때가 2021년 말인데 배경이 2030년이면 애매하게 가까운 미래예요.
지금이랑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만들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했었어요. 현시대에 사람들이 자기를 대입해 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호원: 장르도 코미디
처음부터 코미디는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난 글이었는데, 남자가 임신한다는 게 블랙 코미디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할아버지 캐릭터가 생각이 나면서 ‘이거는 무조건 코미디야’ 굳힌 것 같아요.
할아버지 캐릭터는 모델이 있나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저희 아버지의 양면이 하나씩 나온 게 아닌가(웃음) 아빠가 “남자가 남자를 직접 낳으면 적통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이 할아버지가 어떤 대사를 할까 아버지가 어떤 대사를 할까 할 때 아버지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어머니는 살아계시지만, 아내를 먼저 보냈다면 자기 비관에 젖어서 자기를 비련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각할 것 같고 할아버지 대사도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면이 극대화되면 이런 말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본가가 기와집인 건 가부장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설정인가요?
실제로 거기에 사는 친족은 없습니다.
호원: 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 만들 때 애니메이션 안에서 말고 레퍼런스로 삼았던 작품이 있었나요?
수신지 작가님의 만화 『며느라기』(2018) 같은 반향을 일으키고 싶었고 영화 중에서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 2020)이 있어요. 이 영화의 톤앤 매너가 딱 이 정도 웃기고 이 정도 위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최하나 감독님을 멘토로 모셔서 애니메틱 보여드리고 시나리오 코멘트도 받았어요.
“프로파간다라서 안 되는 건가”
처음 글이 화가 나 있었다는 건 가부장제를 깨부숴야겠다는 혁명가적 마음 같은 거였나요?
혁명가적인 마음보다는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다. 오도 가도 못하게 꽉 몰아가서 남성임신을 시켜버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젠더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선명한 의식이 있었나요?
그냥 저는 재밌을 만한 얘기를 찾은 것 같아요. 딩크족 얘기가 재밌다고 생각했고 ‘남자도 임신하면 내 친구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근데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 같아요.
호원: 아내가 일종의 출산 파업처럼 ‘안 할래’ 하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하겠다’였던 게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제가 딩크족부터 시작하다 보니까 아기를 안 갖고 싶은 사람에게 아기를 갖고 싶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정말 안 풀리더라고요. 맘카페에도 들어가 보고 했는데, 임신이 하기 싫다는 사람을 하게끔 주인공을 제가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그러면 하고 싶은 사람으로 바꾸자 해서 탁 트였어요. 시나리오 개발하면서 방향 전환을 잘했던 것 같아요.
“이것은 프로파간다 필름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인가요?
영화제에 출품하고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왜 안 될까? 프로파간다라서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혼자서 했었어요. 아무래도 대사 중심의 드라마니까 선호하지 않는 영화제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프로파간다라는 걸 인정하자.
장편 과정에는 언제 들어간 거예요?
장편과정 지원할 때 트리트먼트와 기획서와 캐릭터 디자인과 콘셉트 아트 정도가 있었는데, 그때의 캐릭터 디자인과 콘셉트 아트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요. 제가 그린 거거든요. 4월에 들어가서 트리트먼트를 더 개발해서 5월쯤에 시나리오를 완성했어요.
<로망은 없다>(감독: 박재옥, 수경, 홍은지, 2017) 박재옥 감독이 프로듀서가 됐는데 장편과정 들어가서 매칭이 된 건가요?
장편 과정 커리큘럼 자체가 처음부터 완성된 시나리오를 뽑는 게 아니고 트리트먼트인 상태를 뽑아서 한 두 달간 크리틱을 하면서 시나리오까지 개발하는 과정이었어요. 크리틱에 오는 심사위원분들 중 한 명이었어요. 이정호 선생님이 여기 있는 분들 중 한 명과 프로듀서를 하면 좋을 것이다 얘기를 했었고 그때 박재옥 감독님이 저한테 해주시는 조언이 되게 괜찮았어서 프로듀서를 모셔야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아카데미 장편 연구 과정은 어디서 진행했나요?
원래는 부산인데 서울에서 만들었어요. 홍대 동교동에 있는 옛날 건물 지하 1층 프로덕션룸에서 만들어서 박재옥 감독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출근해서 “지금 몇 월이니까 몇 월까지 이게 돼야 된다. 지금은 이게 돼 있어야 된다” 가이드를 해주셨고 만약에 제가 안 풀리는 지점이 있으면 거꾸로 제가 “언제 시간이 되세요?” 하고 오시면 의논하고 이런 식으로 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할 말을 뾰족하게 만들 것인가.”
30분짜리 시나리오 워크숍을 할 때는 단편 워크숍보다는 덜 혼란스러웠나요?
훨씬 덜 혼란스러웠어요. <파란 거인> 때는 줄거리 자체가 왔다 갔다 하고 그랬는데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시나리오 개발 과정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할 말을 뾰족하게 만들 것인가를 주로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림을 취미로 삼았었고 그림책이랑 만화책을 만들었었는데, 그림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쪽으로 온 거잖아요. 어릴 때부터 소설 좀 썼다거나
일기를 많이 썼어요. 물론 소싯적에 팬픽 같은 거 써본 적 있습니다.(웃음) 팬픽을 읽는데,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7편 8편 썼는데 친구가 “야 너 그거 썼더라” 그래가지고 부끄러워서 바로 다 삭제했어요.
개인 블로그 같은 데 올렸어요?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었는데, 친구가 읽었다고 하길래 바로 다 삭제하고 그다음부터 손도 안 됐어요.
고등학교 때?
중학생 때. 글을 쓰는 거를 좋아했는데,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어요. 근데 어렸을 때도 글을 쓸 때 누군가가 항상 읽는다는 상정을 하고 썼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이거를 보고 이해가 돼야 된다고 상정하고 글을 항상 썼던 것 같아요. 일기도 그렇게 썼던 것 같아요.
모델로 했던 딩크 부부가 있고 아버지가 분리된 아버지, 할아버지 캐릭터가 나왔는데, 제일 중요한 인물 김산신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김삼신은 언제 강림했습니까?
처음에 김삼신은 없었어요. 감초 역할 같은 거 하는 조연 정도로만 있었어요. 장편 과정 서류 내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트리트먼트를 쓰는데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이 사람한테 이름을 줘야 됐을 때 ‘어떤 이름을 줄까 삼신으로 할까’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이름이 삼신이 되니까 그 이름에 걸맞은 캐릭터가 들어와야 되겠고 이왕이면 좀 미치광이로 할까. 그 개발 단계에서 박재옥 감독님이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보라고 추천했는데, 거기에 미치광이들이 많은 거예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저런 느낌이면 되는구나’ 그래서 더 미치광이스러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추구하다 보니까 삼신이 됐어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할 때는 다 혼자 하니까 제 안에 갇혔다면은, 애니메이션이랑 영화 같은 거는 발전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도 합쳐지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확 바뀌는 게 보이니까 굉장히 재밌어요.
시나리오가 완성된 시점부터는 별로 안 바뀌었나요?
둘 다 임신하는 건 똑같지만 엔딩 컷을 뭘로 할까 많이 이랬다 저랬다 했어요.
“내가 하자고 하면 할 것 같았어요.”
아트워크와 캐릭터디자인이 초기와 완전히 다르다고 했는데, 섭외를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시나리오 완성하고 제가 그린 캐릭터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박재옥 감독님이 캐릭터 디자인 없어도 달걀귀신으로라도 스토리보드 그리기 시작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캐릭터 디자이너와 배경 디자이너를 알아보겠다고 하셨는데, 콘티를 다 그릴 때까지 적임자를 못 찾으신 거예요. 답답해서 내가 구해야겠다 하고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누구를 팔로우하고 있는지 봤어요. 그중에 한 분이 캐릭터 디자이너예요. 쏘키(소희) 작가님이 떠오르자마자 이분이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면식도 없었는데, 내가 하자고 하면 할 것 같았어요.
작업에서 나와 통하는 점이 느껴졌나요?
그분이 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4컷 만화를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발상이 너무 신선하고 좋아서 팔로우를 시작했어요. 그 이후 포스타입에 올라온 단편 만화 제목이 “니 산소에 퉤” (웃음) 그것도 가부장제 희화화 하는 만화예요. 거기 나오는 캐릭터들 하나같이 다 못 생기고 매력적인 거예요. 이분이면 진짜 잘해주실 것 같았어요.
배경 디자이너와 지옥과 무릉도원과 작업하신 작가분도 똑같이 DM으로
일상 공간 배경 디자인은 소희 님이 소개해 주신 분이었고 지옥이랑 무릉도원을 해주신 분은 제가 소희 님이 누구를 팔로우하고 있는지 봤어요. 이 사람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면 내가 좋아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모니카 님이 그린 뼈다귀밖에 안 남은 고양이 그림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남자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만나서 작업을 해보니까 처음부터 잘 돌아갔나요?
처음에는 삐걱댔을 텐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작업 내내 감사하면서 했어요.
다 또래였나요?
사전제작 파트는 거의 또래였고요. 본 제작은 원화가분들이 50대, 60대셨거든요.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한 달 지나니까 이분들한테는 애교를 피우면 되는구나. 직접 연기를 해 보인다든지 “선생님 제가 이 부분을 잘 모르겠어서 아이디어를 주실 수 있나요” 그런 태도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직장생활과 과거의 짬이 발휘된 거겠죠.
그런 걸까요. 솔직히 그분들 정도면 출근 안 하고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저를 예뻐해 주셔서 주 3일 이상은 와서 해 주셨어요.
원화가들 섭외는 PD님이 하셨나요?
네. 저는 인맥이 전무해서. 박재옥 감독님도 베테랑이 붙어야 속도가 나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장편 제작을 할 때 원래 주어진 기간이 있을 텐데, 얼마나 늘어났어요?
정식 기간은 1년인데, 저는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어떤 이유로 반년이 더 걸렸나요?
레이아웃이랑 원화를 같은 분이 해 주셨는데, 박재옥 감독님이 예상했던 것보다 한 달 더 걸렸어요. 제가 초심자여서 콘티를 많이 바꿨거든요. 레이아웃 잡고 계신데 "감독님 지금 하고 계신 거 제일 나중에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콘티를 고칠 일이 있어서요" 이런 식으로 콘티를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고쳐서 레이아웃, 원화 단계가 한 달 좀 더 걸렸어요.
나머지 4~5개월에 대한 거는 이미 기한은 넘었고 어디 방영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도 마감을 제한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동화랑 채색은 외주 업체랑 했거든요. 외주 업체에서도 제 거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것 같았어요. 며칠까지 몇 컷을 해주세요 이런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늘어진 것 같아요.
촬영도 촬영 감독님이랑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짬짬이 조금씩 했어요. 그렇게 해서 미술이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씩 오랜 기간 보다 보니까 고칠 때가 계속 보였어요.
“아무리 AI가 해준다고 해도 사람이 다 메워야 되더라고요.”
제가 호기심을 가진 부분이 로토스코핑 멘토 파트였어요. 신기술을 활용하셨잖아요.
이제는 AI가 보편화돼 가지고 신기술도 아니에요. 그 부분에 실제 배우가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프로듀서님한테 여기 로토스코핑으로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배우를 섭외해라 해서 필름 메이커스라는 사이트에 “본인의 외모가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그림으로 그려도 개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골격이 엄청 발달한 사람이나 머리 스타일 특이한 분들은 연락을 주십시오” 올렸는데, 그런 거 관계없이 보내시더라고요. 진짜 몇백 건이 왔어요.
팀원들이랑 같이 보면서 고르고 멘토 부분만 시나리오를 잘라가지고 선 녹음하는 날 배우분들을 불러서 녹음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촬영을 동시에 했었어요. 그때까지도 Ebsynth의 존재를 몰랐거든요. 그렇게 찍어만 놓고 ‘이거를 언제 다 그리고 있지? 예산이 있나? 그냥 베껴 그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친구 불러도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누구 시간 언제 되는지 알아보고 있었는데 <파란 거인> 만들 때 그 동기(강유민 <창가로 나온 사람들>(2021))가 자동으로 그려주는 AI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어요.
Ebsynth를 다운로스 해서 스태프들이랑 같이 공부를 하고 우리가 여기 적용할 스타일을 만들어야 되는구나 해서 송하연 조감독과 한세희 미술감독이 스타일을 만들었어요. 아무리 AI가 해준다고 해도 사람이 다 메꿔야 되더라고요. 구멍 메꿀 분은 내부 여력이 없어서 학생분을 알바처럼 고용해서 1분 가량의 로토스코핑을 완성을 했어요.
호원: 남성임신의 시작점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되는 건데, 능청스럽게 멘토들이 나오니까 김삼신만큼이나 중요한 밸런스를 맞춰주는 신이었어요. 원래도 로토스코핑으로 가겠다고 하신 건가요?
스토리보드 그릴 때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밸런스를 맞춘다든지 심오한 생각은 없었고 뭔가 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연기에 맞추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성우진도 대단한 경력자들을 모셨어요.
요거는 사운드 스튜디오 이사님이 일을 좀 하신 거예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알지 못하고 한국 성우 풀이 전혀 제 머릿속에 없거든요. 박재욱 감독님이 일단 엄상현 성우를 섭외하자고 하셨어요. 연기력이 출중하시고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주인공은 엄상현 성우로 하고 나머지 캐릭터도 박재욱 감독님이 생각하는 성우진 세트를 가지고 녹음 스튜디오에 갔어요. 녹음 디렉팅하시는 이영빈 이사님이 성우 이름은 관계없이 어떤 톤을 원하냐고 계속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상 톤이었으면 좋겠다. 교육 애니메이션 같은 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말씀을 드렸어요. 몇 주 뒤에 샘플을 보내주시더라고요. 목소리가 누군지도 말 안 해주셔서 이 번호가 제일 좋아요 하고 고른 게 지금의 성우진이었어요.
샘플은 어떤 거였죠?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대사의 일부분을 녹음한 거를 보내주셨어요.
녹음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애니메틱은 제가 다 연기했거든요. 뒤풀이 때 정유정 성우님이 그냥 그대로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감독이 원하는 것이 뚜렷하면 성우는 그대로 하면 되는 거라고. 제가 원하는 바를 애니메틱에다 100% 반영한 것도 있지만 워낙 베테랑이셔서 저는 녹음 현장에서 막 박수 치면서 웃었어요.
대사뿐만 아니라 호흡이나 평소에 간과했던 사운드들도 녹음하잖아요. 애니메틱에도 있었나요?
초벌 애니메틱을 들고 가서 녹음을 했고 그 녹음을 기반으로 애니메틱을 고쳤어요. 그분들이 그림에 맞추기보다는 그림을 연기에 맞추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녹음을 어느 단계에서 했나요?
원화 전에 했어요.
지금 제일 중요한 캐릭터의 성우 얘기가 안 나왔어요.
그 부분도 성우 샘플을 받아봤었어요. 이영빈 디렉터님이 섭외도 다 해주시고 말맛도 사는지 디렉팅도 잘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디렉터님이 해주시는 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도교수님은 처음부터 배우로 하라고 했거든요.
제가 섭외해야 되는데, 배우를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하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는데, 끝까지 “김삼신이라도 배우로 해라” 그래서 이정호 선생님이랑 둘이서 누구로 할까 하다가 제가 <나쁜 녀석들>(2014, OCN)에서 인신매매의 최종 보스로 나오는 이용녀 배우 보여드리니까 “괜찮네!” 이렇게 됐어요. 마침 <엄마의 땅>(감독: 박재범, 2022) 샤먼이랑 곰 역할이 이용녀 배우님이셔서 박재범 씨네 <엄마의 땅> 보완 녹음하는 날 찾아가서 이용녀 배우님한테 대본을 드렸어요.
제가 애니메틱에 넣었던 목소리는 진짜 까랑까랑 높고 빠른 말이었는데, 이용녀 배우님은 애니메틱 다 무시하고 자기 속도대로 느리고 낮은 톤으로 하시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애니메틱을 진짜 많이 고쳤는데, 그렇게 했던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녹음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달랐을 때 당황하지 않았어요?
코로나 시대였으니까 그 전날 영상 통화로 미팅을 했어요. 어떤 톤으로 했으면 좋겠냐 그래서 좀 과장되고 만화적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엄청 낮은 목소리 톤을 보여주셔서 놀랍고 또 좋았어요. 리딩을 몇 번 했는데도 그렇게 많은 양을 하지 않으니까 속도에 대한 관념은 없었거든요. 녹음 당일에는 되게 천천히 얘기하시는데, 그게 좋아서 빨리 말해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했어요.
이용녀 배우를 캐릭터의 모델로 삼았었는데, 목소리까지 쓸 생각은 안 했잖아요.
<파란 거인>은 목소리가 없잖아요. 대사가 이렇게 많은 거를 처음 해보니까 캐릭터를 만들 때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생각해야 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정호 선생님이 끝까지 한 번 더 찔러봐 주셨고 또 저희 원화가님 중에서 한 분이 제가 캐릭터 모델이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이 사람 이용녀 배우 닮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목소리도 이용녀 배우로 해보자 생각하게 됐어요.
러닝 타임이 딱 29분 59초잖아요. 녹음이 애니메틱보다 늘어났으면 뭔가 줄여서 시간을 맞췄겠어요.
40분 정도 됐었는데 많이 줄였어요.
어디서 그렇게 줄였나요?
삼신의 전사를 많이 덜어내고 전체적으로 딱히 없어도 될 것 같은 컷은 다 빼고. 이 영화가 호흡이 되게 밭잖아요. 30분 넘으면 안 틀어준다 해서 확 압축시켰습니다.
“나한테 엄청 도약이 있었다”
음악 작업은 언제 들어갔죠?
스토리보드 할 때 박재욱 감독님이 예산을 짜야 되니까 어떤 음악 감독으로 할 건지를 정해야 된다.
음악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파란 거인> 때도 레퍼런스 없이 녹음 스튜디오에서 소개해 주는 작곡가님이 만나서 서로 맞춰서 했고, 따로 원하는 작곡가가 없었어요. 머릿속에도 뮤지션 풀이 없는데, 박재옥 감독님이 어떤 음악 감독이랑 하고 싶냐 물어서 장영규 감독님이 떠올랐어요.
그때는 ‘내가 이 사람이랑 꼭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유명한 사람들은 다 떠올려보잖아요. 그중에 한 명이었거든요. 감독님이 작업하는 영화 음악들이 화제가 되기도 하고 특히 최동훈 감독님 작품에서는 위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유머러스한 느낌으로 음악이 들어가는데, 제가 그런 음악을 좋아했어요. 또 그때 한창 이날치도 난리여서 저는 이분이랑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는데, 박재옥 감독님이 그분한테 컨택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학교에 전화해서 최동훈 감독님 작품에 참여한 음악 감독님이랑 작업하고 싶다고 최동훈 감독님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하니까 교학처 부장님이 바로 음악 감독님 연락처를 저한테 줬어요. 연락처를 받고 3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했어요. 나중에 소속사 대표님이 “네가 세 번이나 전화했기 때문에 한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세 번째도 수락 안 했으면 네 번째, 다섯 번째도 할 생각이었나요?
안 했을 것 같아요. “제가 시나리오 읽어보셨어요?” 문자를 할 때마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못 읽어봤어요” 이렇게만 답을 받았거든요. 거절의 완곡한 표시인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고 안 되는가 보다 생각하다가 No라도 들어야겠다 그래서 전화를 마지막으로 했을 때 하겠다고 하셔서 ‘봉 잡았다!’ 그렇게 성사가 됐고 그 이후로 “여기까지 됐어요” “언제쯤 음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간간히 메시지만 드렸어요.
음악 작업은 한 두 달 세 달 후반에 사운드와 동시에 됐었고 대면으로 4번 만났어요. 처음에 장영규 감독님이랑 1대 1로 만났을 때 자기가 시간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해도 되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제가 <보건교사 안은영>(2020, NETFLIX)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애니메틱에도 그 음악을 넣었었거든요. 다음에 갔더니 <보건교사 안은영> 같이 작업했던 정중엽 작곡가님을 데려오셨더라고요.
애니메이션 하는 1년 6개월 동안 초기 시나리오 쓰고 스토리보드 그릴 때 너무 행복했고요. 원화 동화 때 너무너무 고통스러웠고 성우 녹음했을 때 반짝 행복했어요. 너무 지겹다가 음악 하는데 다시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런 분들이랑 또 작업 못하겠지’ 기분이 너무 방방 떠서 잠도 잘 안 오던 시기였어요.
<파란 거인> 만들 때와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을 만들 때는 1년 6개월 차이인데, 너무 다른 판단력과 스케일이라 이게 같은 사람인가 싶어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하면서 나한테 엄청 도약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른 사람이랑 일하는 게 재밌다고 느낀 게 거의 처음이었어요. 돌이켜 봤을 때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이랑 일하잖아요. 그때는 다른 사람이랑 일하는 게 즐겁다고 생각한 적은 없거든요. 영화 만들면서는 내가 감독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귀담아들어주고 내가 말하는 것을 구현시키기 위해서 다들 노력해 주잖아요. 그래서 거의 내가 원하는 사람만 데려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쫌쫌따리 하면서도 무조건 나 혼자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하려고 해요.
브런치에서 제작 과정을 기록하셨어요. 이런 여유는 어떻게 내신 거죠?
스크리너는 다 만들어 놓고 합성에서 효과를 더 올리는 작업을 몇 달 동안 계속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영화제를 기다리면서 견디는 시간이 고통스럽더라고요. 나는 내 거 되게 재밌고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몇 개월 동안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까 할 일도 없고. 내가 지난 과정 즐겼으니까 기록을 남겨보자라는 생각으로 ‘내가 그때 어떻게 했었지?’ 거꾸로 돌아가서 일기를 쓰는 느낌으로 썼던 거예요.
“애니메이션이랑 같이 동반 마케팅하겠다”
원래 만화로 만들 생각이긴 했었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간 건 언제예요?
캐릭터디자이너님한테 “우리 언젠가는 이걸 만화로 합시다” 얘기하고 2021년 겨울 때쯤 거의 후반 제작이 되었고 202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 만화 지원을 따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샘플 30페이지에 대한 원고비를 줄 테니까 소희 작가님에게 샘플 만화를 그려달라고 했어요.
별도의 제작비니까 또다시 투자를 하신 거네요.
네. 원래 10페이지만 그려도 되는데, “최 씨가 최 씨를 낳으면 적통 중에 적통 아니가” 그 대사를 심사위원들한테 보여줘야 뽑힐 거라 생각했어요. 작가님이랑 저랑 계약서를 쓰고 원고를 준비해서 기획서를 휘황찬란하게 썼어요. 애니메이션이랑 같이 동반 마케팅하겠다. 2022년 다양성 만화 돈을 타면서 작가님이랑 반반 해서 원고 120페이지를 만들었고 그다음 해에는 출판 돈을 따서 작년에 종이책으로 낸 거죠.
7번 정도 연재하셨는데, 회마다 분량이
출판 만화니까 에피소드를 염두에 두고 한 건 아닌데 처음부터 작가님이랑 웹에도 같이 올리자고 했어요. 작가님이 출판물로 먼저 그리고 웹으로 다시 연출하는 게 편하다 해가서 처음부터 칸만화로 그리고 떼면서 이쯤에서 끊어야겠다 이런 식으로 구성을 하게 됐어요.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에 없는 이야기들 나와요. 주인공 부부의 연애시절과 김삼신 박사의 학창 시절은 감독님이 기획하신 거예요.
김삼신의 학창 시절은 애니메틱에서 잘린 부분이고요. 두 사람의 연애 시절은 쏘키 작가님이 온전히 만들어낸 거예요. 저한테 되게 부족했던 로맨스 부분을 작가님이 채워주셔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쏘키 작가님이 두 사람이 자기 속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지점 이전에 뭔가 깔아놔야 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이 두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한 거라는 거를 정확하게 깔고 화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거는 작가님만의 연출인 거죠. 콘티도 다 작가님이 하셨어요. 저는 편집자의 느낌으로 책을 작업하게 됐어요.
출판도 직접 하셨잖아요.
맞아요. 엄청 큰 출판사들 문을 두드렸거든요. 두 군데서 까이고 난 다음에 그냥 내가 차려서 내가 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러면 유통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유통 대리를 달고 이제 50% 떼주고 있습니다.
메이저 출판사 가도 40% 떼이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1쇄의 대부분을 텀블벅으로 팔았어요. 텀블벅 수수료가 10%대거든요. 나머지 소량만 재고 처리하는 느낌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근데 잘 안 팔리더라고요. 오히려 포스 타입에 올려놓은 웹툰이 더 수익이 잘 나요. ‘종이책을 팔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웹툰을 보지?’ 그것도 다 보면 만오천 원이 들어요. ‘지금 책을 만육천 원에 팔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만오천 원을 내고 무형의 것을 사지?’ 속으로 생각했거든요. 물론 저희는 전자책으로 수익을 내는 게 훨씬 좋긴 한데, 그래도 제가 옛날 사람이다 보니까 ‘종이책은 있어야 작가지!’ 이런 생각이 아직 있어요.
영화가 4월부터 상영 물꼬를 틀고 상을 컬렉팅 하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잖아요. 만화책은 11월쯤 나오고. 지금 시너지가 나고 있나요?
작년에 시너지가 좋았어요. 정동진영화제 관객 반응이 엄청 좋아서 트위터에서 많이 회자되었거든요. 텀블벅이 그 물살을 타고 성공한 거라 생각해요.
9월 인디애니페스트 때는 명언 스티커를 나눠주셨고 12월 애니어워드 할 때는 남성임신센터 창립기념 수건도 만드셨고요. 굿즈는 책 출판을 하시면서 프로모션을 위해서 만드셨나요?
스티커는 텀블벅을 위해서 만든 거고 수건은 애니메이션 만들 때 행복회로를 돌려서 “돈 남으면 뭐 하죠?” “돈 남으면 굿즈를 만들어보죠” “굿즈 뭐 만들지?” 행복한 상상 하다가 “아 임신 수건 만들면 재밌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돈 안 남았는데 만든 거예요?
(조그맣게) 예. 내가 갖고 싶어서.
“내 거 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첫 상영은 가셨어요?
전주에서 갔었는데 그때는 <파란 거인>을 들고 갔을 때랑 굉장히 다른 마음이었어요. <파란 거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간 것도 있지만 그때 내가 <안임신>을 만들고 있으니까 차기작이 있잖아요. 굉장히 당당했어요. 작년에 갔을 때는 내가 다음 작품이 없다는 거가 괴로웠던 것 같아요. 작품의 대중에 대한 반응도 걱정되고 그리고 그때는 스태프들 왕창 다 데리고 갔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호스트가 된 느낌이다 보니까 더 정신이 없었고 ‘<안임신>이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한 일주일 안 되게 있었는데 첫 상영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제 작품 한 거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작업을 계속하고는 싶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건가요?
작년에는 다른 사람의 기획에 맞춘 장편 시나리오를 썼었거든요. 장편 시나리오도 처음 써보고 그거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고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동시에 ‘내 거 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작년 한 해를 고통스러워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주민 여성이 주인공인 장편 시놉시스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는 가차 없이 까였어요. 네 이야기는 너무 피상적이고 특별함이 없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관련 이슈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있는데, 내가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나고 제일 어이가 없는지, 그 부분을 파고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친구가 시댁의 고양이를 시고양이라고 부르는 걸 알고 웃기다며 무슨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캐릭터 같다며 농담 따먹다가, 진짜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만화 지원을 받아서 올해 만화 작화를 먼저 하고, 여력이 된다면 숏폼 애니로도 제작해보고 싶어요.
웹툰융합센터 입주할 때 나름 사업 계획서도 쓰고 면접도 보고 입주했어요. 집이랑 가까운 게 최고 장점이고요. 월세가 아직 부담이긴 하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작업하고 일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시고양이 만화를 완성하고, 장편 시놉시스를 탄탄히 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인터뷰 2024년 4월 10일 @ 부천 웹툰융합센터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