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CHUNG Huibin
- seoulanimator
- 18시간 전
- 21분 분량
정휘빈

느닷없이 동생을 맞이하게 된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창문이 없는 집엔 아이가 없다>(2009)의 감독은 볼살이 통통한 고등학생 넷이다. 생애 첫 영화제에서 상영은 건너뛰고 뒤풀이에서 고기만 먹고 왔다는 고교 2학년 정휘빈 감독은 1 지망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 합격해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유학시절 4년과 이후 3년 동안은 애니메이션 업계 진출을 탐색했다. 2019년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 우수작 <민서와 할아버지>(2020)에는 캐릭터의 양감과 애니메이션 타이밍감이 능숙하게 표현된다. 이어서 <도나 표류기>(2022)로 멘토 없이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엔터티>(2024)는 창의인재로 맺은 인연들의 품앗이 공동체를 통해 만들었다. 거침없는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승부수를 던질 준비 만만이다.
2025년 4월 인터뷰
전형성을 벗어나
데굴데굴 기획회의
중편 기획은 언제부터 들어갔어요?
이제 중편 할 차례가 된 것 같아서 작년 8월쯤부터 기획했던 것 같아요. <엔터티> 배급 시작했던 게 2024년 1월인가 2월이었어요. 그거 끝나고 독립 장편에서 작화하다가 8월 말 9월쯤부터 했으니까 한 7~8개월 두고 준비했네요.
중편은 몇 분인가요?
크레디트 포함하면 24분이에요. 애니메틱스까지 끝내고 제출을 해서 여기서 더 늘어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피드백 과정을 다시 거치면서 크게 걸리는 부분들은 수정하기로 결정한 바람에 적어도 3, 4분은 늘어나지 싶어요.
<엔터티>처럼 SF인가요?
현대 우리나라 배경에 정통한 호러 오컬트물이에요. <엔터티> 기획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트렌디한 SF물들이 한창 피크를 찍던 때였고 3, 4년 지나면서 클래식한 장르로 흐름이 바뀌어 가는 것 같긴 한데요, 특이한 소재의 SF물도 계속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3월에 국내 개봉한 <컴패니언>(2025, 감독: 드루 핸콕)도 그렇구요. 최근에 보고 왔는데 재밌었어요! 제가 이번에 호러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저의 창작적 기반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또 SF를 하면서 느꼈던 기술적, 장르적인 한계를 좀 더 정통한 장르를 통해 극복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원래 호러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셨나요?
평소에도 호러 스릴러 위주로 찾아보고요. 작년에 밴쿠버에서 하는 영화제 갔다 왔거든요. 북미에서 개봉한 공포 영화는 다 체크해 놓고 <서브스턴스>(2024, 감독: 코랄리 파르자), <헤레틱>(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이랑 <스마일 2>(2024, 감독: 파커 핀) 보고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포 영화를 좋아했어요?
시작은 <토요미스테리 극장>(1997.6.14~1999.1.30, SBS)이랑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1996.7.1~1999.1.22, MBC)인데 영화는 안병기 감독님 <가위>(2000)랑 <폰>(2002)을 어릴 때 너무 무서운데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몇 살 때 본 거예요?
한 10살 이랬을 거예요. 엄마 아빠가 비디오 빌려오실 때 봤어요.
<엔터티>는 언제부터 들어간 거예요?
<엔터티>도 2022년 여름 가을쯤에 기획을 시작했어요. <도나 표류기> 끝나고 한 6개월 있다가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 사이에는 다른 일을 했나요?
조예슬 감독님 중편 <찾아라! 데스티니>(2024) 배경 작업하면서 <엔터티>도 준비를 했어요.
여름만 되면 내 작업을 해야겠다는 시기가 도래하나요?
사실 작품이나 제작 지원 준비하는 거에 대해서 시간 감각이 없어요. 창의인재 할 때 멘토 해 주셨던 이용선 감독님이 제작 지원 붙을 거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원래 이상적으로는 다른 감독님 작업 도와주고 내 시간 나면 준비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프로젝트마다 겹쳐서 작업했어요. 지금 기획도 이용선 감독님 장편 일하면서 저녁에는 따로 기획하고 회의하고 이런 식으로 준비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이용선 감독님이 기획 PD로 도와주셔서 낮에는 이용선 감독님 장편에서 작화 열심히 하고 저녁때 또 화상으로 모여서 제가 쓴 시나리오 보면서 같이 피드백해 주시고 고치고 이런 과정을 9월부터 했어요.
호원: 낮에는 이용선 감독님의 데굴데굴 파견처럼 조인트로 하고 밤이 되면은 라이터로 오는 거예요?
<엔터티>까지는 라이터에서 김광희 PD님이랑 했고요. 지금은 데굴데굴에서 중편하고 있어요.
<엔터티> 처음에 뭐가 먼저 떠오른 거예요?
저는 기획할 때 백지상태에서 재밌는 소재 떠올리기부터 시작해요. 제가 평소에 재미있어하거나 흥미 있어하는 부분을 베이스로 떠올려요. 그거 기획할 때까지만 해도 SF 스릴러가 인기가 많았어요. 특히 <블랙미러>(2011~, 채널4, 넷플릭스) 여파가 있었던 시기였어요 제가 <블랙미러>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SF를 기획을 했어요.
근데 맨 처음 회의 시간에는 미스터리 호러에 가까운 소재를 가져갔거든요. 디벨롭하다 보니까 단순히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가져가면 허무하게 끝날 것 같고 재미있어질 것 같지가 않아서 시간 배경도 옮기고 SF로 화끈하게 해 보자 했어요.
기획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예요?
고정 멤버는 이용선 감독님이시고요. <시청률의 여왕>(2020) 만들었던 최지희 감독님 그리고 <울렁울렁>(2021) 조예슬 감독님이 주로 참여하세요.
각자 갖고 있는 것들을 얘기하나요?
보통은 회의에 중심이 된 사람이 갖고 온 내용을 얘기해요. 서로 의견을 보태기도 하고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기 때문에 제가 가져간 이야기를 보고 다 같이 디벨롭해보자 해서 SF콘셉트 들어가게 됐어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해요?
요일이 정해진 건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유동적으로 해요. “이 정도 시간을 주면 다음 단계가 준비가 되겠니” 그래서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스케줄 잡아요.
그 모임은 서로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서 생긴 건가요.
애니메이션 작업 관련 스터디를 목적으로 모여서 작품 제작까지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어요. 제가 다른 일을 하다 도움을 요청해도 기꺼이 도와주시는데, 보통은 저희 작품 회의 의도로 모여요.
엔터티 Entity (2024)
<엔터티>의 가닥이 잡힌 거는 언제 정도였어요?
제가 소재 몇 개를 가져가서 피칭을 하는 데까지가 한 한 달이 걸렸던 것 같고 그중에서 제일 재밌다는 거를 뽑아서 SF로 발전시키자 하는 데는 1~2주일 정도 걸렸어요. 시나리오 1페이지까지 작성을 하고 별로라는 피드백 들은 다음 주가 인디애니페스트였어요.
시작할 때부터 “엔터티”라는 제목이 나온 건 아니죠.
시작할 때는 제목이 “세인트 리브레”였어요. <엔터티>에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시가가 있잖아요. 그럴듯한 시가 이름을 하나 짓자 해서 현존하는 시가 브랜드명 찾아서 단어 몇 개를 조합한 거예요. 그 제목이 끝까지 입에 안 붙어서 편집 단계에서 완전 마지막에 “엔터티”로 바꿨어요.
제작 지원 되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나요.
제작 지원 제출까지 이미지랑 스토리보드 썸네일은 다 끝냈고요. 애니메틱스도 5분 정도까지는 준비를 했을 거예요. 통과된 다음에 6월 초중순까지 계속 애니메틱스 작업하는 데 할애했어요.
미리 준비해서 제작 지원받고 많이 바뀌지는 않았겠네요.
저희 팀 모토가 나중에 바뀌는 일이 없게 미리미리 단계별로 꼼꼼하게 짚는 거예요. 안 그래도 애니메이션 작업은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간 낭비는 미연에 방지를 하자는 주의여서 이미 정해진 설정이나 내용이나 디자인 이런 게 나중에 많이 바뀌지 않아요.
우리는 팀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네요.
처음에 이용선 감독님이 팀처럼 같이 작업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을 때 앞으로 뭐 해 먹고 살 지도 모르겠는데 어디 소속되기 싫었어요. 이것도 이용선 감독님이 했던 얘기인데, 작업 몇 편 거치면서 전우애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구속이라면 구속이고 책임감이라면 책임감인데 품앗이 개념처럼 저도 이분들한테 도움을 받았으니까 저도 그분들이 작업할 때 도와주는 식으로 결속력이 생겼어요.
호원: 계속 같이 가는 제작 스태프도 있어요.
배경 팀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친구거든요. 같이 애니메이션 전공했어요. 둘이 각자 하는 일도 있었는데, 마침 <도나 표류기>할 때 시간을 낼 수 있어서 같이 배경 작업하던 게 쭉 가서 지금 준비하는 중편까지도 같이 할 것 같아요. 둘 다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친구들이어서 놓치면 너무 아쉬울 거예요. (웃음)
이번 중편은 새로운 분들이랑도 작업해요. 이용선 감독님 장편에서 같이 작화하셨던 분들이어서 면도 있고 어떤 작업 스타일인지도 알아서 또 다른 품앗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호원: 제일 손이 빠른 팀 같아요.
제가 작업 속도는 빨라요. 다른 분들도 손이 되게 빨라요. 특히 최지희 감독님 같은 경우는 한 번 집중하면 절대 펜을 안 놓는 스타일이거든요.
사전에 스토리 회의를 바짝 해놓고 제작 들어가면 바로 달리나요.
스토리가 한 번 정해지면 그 뒤로는 안 바꾸는 대신에 연출이나 작화 과정에서 스토리를 더 보강할 수 있는 거는 계속 보완을 해요. 스토리보드에 그려놨던 연기가 미흡할 수 있으니까 작화할 때 계속 체크하면서 훅업이 잘 맞는지도 보고 그런 식으로 큰 줄기는 절대 안 바꾸고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요.
그 팀에서는 엄청난 완성도 욕심 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중편은 비주얼도 신경을 써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완성에 욕심을 안 낸다기 보다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 순간에 최선을 뽑아내자 주의에 가깝습니다. 완성도가 절대 떨어지진 않아요…!
제작 속도가 느려질 수 있겠네요.
느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저희가 플랜 C까지 세워놨어요. 어떻게 하면 더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보완한 방법이에요
호원: 그전까지는 파트별로 각자 신 작업하는 식이었어요?
한 명이 캐릭터 하나씩을 맡아요. 메인 캐릭터 한 명을 메인 애니메이터가 맡아서 그 캐릭터만 쭉 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두 캐릭터가 붙는 부분의 합 같은 거는 서로 얘기하면서 맞추고 서로 액팅이나 시선 같은 거 수정 보완도 하는 식으로. 그게 집중도가 높아져서 작업 속도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엔터티> 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처음 해봤어요.
<엔터티>의 가상 세계는 90년대 오락실이 배경이에요.
어떻게든 재미있는 요소를 다 넣으려고 하면서 떠올렸던 콘셉트들이에요. 이야기의 배경이 미래 사회가 됐으니까 여기서 한 번 더 비트는 재미를 줘야 될 거라고 생각해서 과거 배경 메타버스에 사람들이 접속해 있는 콘셉트를 만들자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제일 향수를 느끼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시대적 배경이 언제일까 해서 오렌지 족이 성행하던 90년대로 하자.
"Orange Century"는 오렌지족의 세기였군요.
90년대 가수들 스타일이나 화보도 검색하고 해서 디자인 완성했어요. 근데 제가 오락실 게임을 잘 몰라서 게임은 잘 아시는 다른 팀원 분들 추천받아서 넣었어요.
오렌지 센츄리는 북적북적 사람도 많은데 길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없어요.
대낮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리와 가상세계 오락실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대조적인 분위기를 마련한 거였어요. 초반에는 바깥의 시간 배경을 밤으로 해야 되나 했거든요. 시나리오 상에서 얘기하다가 깨달은 건데 밤에는 당연히 밖에 사람이 없으니까 대비가 약한 거예요. 그래서 낮에 사람이 없는 텅 빈 화려한 도시랑 사람이 북적북적한 레트로한 시대상이 번갈아가면서 보이는 게 콘셉트 설명하기도 훨씬 쉽고 보는 사람들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왜 시가를 중요한 아이템으로 했는지 궁금했거든요.
게임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취득을 해서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야 되는데, 현실에서 위험한 퀘스트를 진행하면 보상으로 게임에서 시가가 주어져서 게임 안에서 다른 맵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콘셉트예요. 이야기에서 살인의 계기가 되는 등 중요한 축이 되는 게임 아이템으로 뭐가 좋을지 팀원들과 상의하고 고르던 과정에서 찾은 물건이 시가예요. 회의 중에 누군가 ‘담배’가 어떨까 던졌던 것 같고 그 후에 조금 더 재미 요소를 넣어보자 하고 채택한 아이템이 시가예요. 약간 비현실적이면서도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느낌도 나고, 마피아 보스 하면 떠오르는 무게감 있고 장르적인 이미지도 있고, 폼도 나고… 그렇게 시가를 중요한 아이템으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현생이 게임과 연동되어 있다는 거예요.
억압된 사회니까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위험한 퀘스트를 하고 오라는 게 그 게임 안에 숨겨져 있는 딥웹 같은 어두운 콘셉트예요.
가상 세계 캐릭터랑 현실 세계 캐릭터의 성별 반전은 얘기의 재미를 위한 기획의 결과인가요?
예상치 못하게 비틀 수 있는 부분은 다 비틀자 한 거예요.
호원: 모든 성이 바뀌기도 하지만 사이버 도착증이나 테크노 도착증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더라고요. 사회적으로 허용된 생식을 위한 섹스에는 관심이 없고 19세기 아편굴에 테크노 섹스를 집어넣어서 다른 식의 욕망을 충족하는 세계관이에요.
맞아요.
호원: 민망한 그 아이템이 기능적으로 보면 스마트폰처럼 촬영 기능, 저장 기능, 전송 기능도 있는 한편으로는 생긴 것 때문에 불법이에요.
억압된 사회를 상징하는 지하 이미지에 반항적인 아이템이 뭔가 없을까 생각을 했어요. 보통은 그게 작품에서는 마약 거래로 묘사되는데, 마약은 워낙 클리셰로 많이 사용된 아이템이니까 이것과 비슷한 속성인데 조금 더 흥미롭고 새로운 걸 찾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호원: 사람들이 ‘어마 이 발칙하고 요망한 것’ 하면서 X로 부호화하고 모든 걸 집어넣으니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되게 중요한 포인트로 생각하고 넣은 아이템인데, 그걸 살리는 게 너무 어렵긴 하더라고요. 그 물건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이러니하면서 웃기는 포인트여야 하는데, 영화제를 몇 군데 가보다 보면 그 부분에서 아예 안 웃는 관객들도 있었어요. 어디서는 빵 터지는 분들도 있는데.
국내랑 해외의 차이예요 아니면 국내 영화제들에서도 달라요?
국내랑 해외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장면이 나왔을 때 해외 영화제에서는 시원하게 웃으시는데, 국내 영화제에서는 ‘뭐지?’ 이렇게 반응하시는 분들도 더러 봤어요.
감독님의 또래 그룹에서는 민망하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소재인가요?
성인용품 아이디어는 최지희 감독님이 냈는데, 저는 너무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였어요. 평소에 또래 집단에서는 그런 거에 대한 언급이나 노출이 되게 자연스러워요. B급 코미디에서 많이 쓰이기도 해서 성인용품들을 보는 게 낯설지가 않은데, 제가 그 소재를 갖다가 회의를 했을 때 약간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도 있긴 있었어요. 저는 이 콘셉트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게 아니고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는 요소로 적당히 극 진행을 위한 장치로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호원: 사적 영역에서 감춰진 상태에서는 너그러이 허용이 될 수도 있는 아이템이지만은 뜻밖의 상황에서 노출되는 순간에 서로를 당황시키는
맞아요. 그거를 위기를 벗어나는 용도로 쓰기도 하잖아요.
호원: 작품 속에서 타이밍 조절을 요 아이템 갖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이걸로 위기를 극복해야 된다. 얘가 주인공의 기지를 발휘하게 되려면 이 아이템을 사용해야 한다.
호원: 이 거시기 안에 우리가 집어넣는 모든 의미가 이렇게도 해석이 되고 저렇게도 해석이 되고 하는 식으로
스위스 나이프처럼 다용도로 사용하는
주인공이 판매도 하고 수리도 해주는 거죠.
일단 콘셉트는 수리만 하는 거예요. 수리상이에요.
호원: 빵23은 소위 말해서 전파사 아저씨 같은 거네요. 정식 수리센터에 맡기기에는 사회적으로 허용이 안 되는 거를 야매로 해주는 뒷골목 의사 아저씨 같은
약간 그런 느낌이에요.
우리가 작품에서 보는 거 말고도 캐릭터의 세부적인 배경을 설정을 하셨어요?
얘가 20대 초반에 겉으로 보기엔 백수고 집에서 안 나가고 틀어박혀서 이런 불법적인 일로 벌어먹고 산다 정도의 콘셉트는 있는데, 여기서 캐릭터에 대한 확장을 안 시켰어요.
태생적으로 법률을 위반하는 캐릭터예요.
이런 스릴러 SF 호러에서는 주인공이 보통은 젊은이고, 뜻밖의 역경을 만나서 헤치는 과정이잖아요. 장르적인 콘셉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만든 장치들이 많고 캐릭터도 그중에 하나였어요. <엔터티>는 사건적인 특수성이 강하고 드라마는 덜 부각되는 장르물이라 빈약한 주인공의 설정이 표면적인 모습(딜도, 적당히 디자인된 근미래적 꾸밈새)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속도감 있는 연출이 더 드러날 수 있었던 것 같긴 하구요.

주인공도 중독적인 면이 있고 주민들도 병적인 사람들이에요. 그중에서 악당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살인마는 처음에 나왔던 미스터리 기반의 소재에서부터 있던 콘셉트예요. 어떤 여자애가 인터넷 로드맵으로 동네를 구경하다가 실시간으로 살인이 발생하고 있는 장면을 본다. 주인공이 살인자랑 눈이 마주치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가 된 거라서 처음부터 있던 캐릭터를 계속 디벨롭한 거였어요.
호원: 살인마가 빵23한테 배송 오류 때문에 엉뚱한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데, 뭘 배송을 시키려고 했는지 애초에 천사잃은날개는 빵23이 누군지 알고 어떤 이유로든 죽이려고 한다라는 게 이미 있었나요.
둘이 게임 내에서 친구지만 얘는 위장 친구죠. 자기가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 현실에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거예요.
호원: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시가를 물고 나오는 거는 ‘나 말고 누가 퀘스트를 했구나’가 되는 거구나.
현실에서 누군가를 죽이면 퀘스트에 대한 보상으로 시가를 받을 수 있어요. 얘는 게임 친구를 죽여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주소지 배달이 잘못됐으니까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죽이게 된 거예요.
호원: 빵23을 제거를 하라고 의뢰를 한 사람은 누군가 따로 있는 거고 그 사람은 원한이나 필요 때문에
네, 그거는 미지의…
<다이하드> 포스터가 힌트인가요?
<다이하드> 포스터는 그냥 딱 보고 ‘아 저거 90년 대구나’ 하려고 만들었던 거예요. 보는 순간 90년 대구나 이거를 인식을 시키려고 노래도 아예 처음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비슷한 걸 넣은 거였어요. 보이지는 않는데 포스터에 던져서 깨지는 술병도 캡틴큐예요.
호원: 근미래의 장소가 종로, 세운상가 영역이더라고요.
한 번은 쇠락의 시기를 거쳤다가 다시 재터치가 들어간
언제쯤부터 장소를 여기로 하겠다 생각했어요?
콘셉트가 나왔을 때부터 배경은 종로 3가 4가 5가 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종로가 제 활동 반경에 있기도 하고 옛날부터 종로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쇠락의 시기를 한 번 거쳐서 다시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을 했지만 아직 옛날 정취도 많이 남아 있잖아요. 서울의 중심으로서 역사적인 배경이기도 하고 지금도 위로는 주상복합처럼 건설이 돼 있는데 밑에는 통로가 길게 있잖아요. 세월이 지나면서 조성된 누가 인공적으로 창조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거기 이미 영화 세트가 마련이 되어 있으니까 바로 사용하면 시간적인 공간적인 의미가 다 있을 것 같았어요.
종로에서 주로 뭐 하고 놀았어요?
제가 한 10년 전부터 서대문 쪽에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산책하거나 놀러 가는 장소가 그쪽이에요. 광화문에는 주로 독립 영화 보러 많이 가고 종로도 영화 보러 갔었는데, 지금은 영화관이 없어졌어요. 몇 년 전에 <졸업>(1967, 감독: 마이크 니컬스) 재개봉했을 때 마지막으로 거기서 봤거든요. 아무튼 그 동네 자체를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많이 다녔어요.
소셜포인트라는 개념은 <블랙 미러> ‘추락’ 에피소드의 소셜미디어 평점 시스템이랑 비슷해요.
여기에 사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혀야 하는데, 한계를 강화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제일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는 게 소셜포인트라고 생각을 했어요.
현금은 전혀 없고 단순한 디지털 화폐도 아닌 나의 도덕성을 평가한 포인트로 통제되는 거잖아요.
일종의 도덕 점수인데 규율에 잘 맞춰서 행동하지 않으면 너는 이렇게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호원: 화폐 가치뿐만 아니라 제도에 길들여진 가치. 게임에서도 내가 돈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에 축적이 돼야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그 설정이 재밌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열심히 짰던 설정인 것 같아요.
불법 사이트 디자인은 지금이랑 별반 차이가 없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디자인이었어요. 이 정도로만 디자인해 줘 부탁해서 친구가 해준 거예요.
호원: 말 그대로 SF가 유행이었는데, 감독들마다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어요. 감독님은 불법 사이트의 그 감각
좀 더 발칙하게 풀었다고 할 수 있겠죠.
시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웃음)
그런 거에 비하면 감시 로봇은 관의 고루함을 반영한 디자인인가요?
안전깨비가 로봇 바이러스에 감염된 꿈돌이 느낌이잖아요. 그걸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말씀하신 대로 ‘이 정도면 관공서 디자인 같지’ 하고 만든 거기는 해요.
호원: 싱가포르에서 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했었어요. 외국인이 우리 사회를 비판해 그럴 것 같아 가지고
안 그래도 외국에서 상영했을 때 관객분이 “이거 싱가포르나 중국에서 상영하면 어떨 것 같아?” 이런 얘기하셨어요. 실제로 외국인 관객분들은 제가 그런 거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생각하세요. 중국이나 싱가포르 보고 참고한 거냐고 그래서 그건 아닌데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는 특징이 드러나는 게 의무 교육받는 부분인 것 같아요.
호원: 만들면서 늘어나긴 했지만 완성하고 나서 더 채우고 싶었던 부분은 없었어요?
설정이나 내용 전개나 캐릭터의 비하인드에 조금 더 꼼꼼하게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에는 작품 진행의 속도감을 유념해서 작업을 한 거니까 그런 점이 아쉽기는 해요.
시가를 얻는 퀘스트라든지 배송 오류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기획을 할 때 알았지만 넘어간 거예요?
이거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설명이 미흡하지 않나 인식은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 넘어가” (웃음) 제가 연출적으로 좀 더 숙련이 돼 있으면 그런 걸 다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있었을 테지만 만들 때는 그게 저한테 최선이었어요. 일단 흥미도는 유지시키자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도나 표류기 (2022)
<도나 표류기>는 2020년 <민서와 할아버지> 끝나고 난 다음 여름쯤에 시작한 건가요?
<민서와 할아버지>로 워밍업이 된 느낌이라 혼자 뭔가 만들어 보자 하고 여름쯤부터 준비 시작했어요. <민서와 할아버지> 기획하기 전에 엄청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진짜 길게 썼거든요. 이용선 감독님한테 한번 보여드렸는데 재미없다고 하셔서 그다음에는 <도나 표류기> 기획하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엔터티>처럼 기획회의는 안 했다는 거죠.
아직 팀 같은 게 생기기 전이었어요. 끝까지 다 혼자 한 다음에 작화 후반부나 편집할 때 도저히 안 되겠어서 도움 요청했어요.
<도나 표류기>는 어디서부터 가닥을 잡았어요?
그때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크리처가 식물 괴물이에요.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뭐가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섬이 됐고 식물 괴물이 나오게 됐어요.
주인공은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캐릭터예요.
내가 겪어봤던 현실적인 공포에서 착안을 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외적인 부분 하나는 시력이 안 좋다는 설정이었고 내적인 부분은 제가 어릴 때부터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에 취약했거든요. 또래 압박이 많이 느껴지는 상황에 놓여 있는 주인공을 만들자 해서 나오게 됐어요.
비행기 사고에 대한 공포는 없고요.
그런 거는 아니었어요. 주인공이 안경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섬이 떠오른 거고 섬에 고립되려면 극단적인 설정으로 시작을 해야겠다 했던 거예요. 다 쓰고 났더니 『파리 대왕』(1954, 윌리엄 골딩)이랑 설정이 너무 비슷한 거예요. 제가 중학교 때 『파리 대왕』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무의식 중에 반영이 됐을 것 같아요.
주인공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잘 싸우는 캐릭터예요.
캐릭터 설정을 잘못했어요.
호원: 강한 게 아니라 무감각하거나 뚱한 캐릭터
애정은 있지만 잘못 만들어진 캐릭터예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를 쌓을 수 있는 설정을 하나도 안 넣었어요.
호원: 사실은 그게 도나의 매력인 것 같아요. 3 대 1인데, 3의 공격이 1한테 전혀 약발이 안 먹히는 게 생뚱맞아서 재밌었어요.
얘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어서 각성을 하는 골자를 생각했는데, 만들 때는 그렇게까지 주눅도 안 들고 크게 힘들어하지도 않는 캐릭터가 돼버릴지 몰랐어요.

호원: 제목이 맨 나중에 나오잖아요.
이거를 시작처럼 해서 뒤에 더 내용이 있는 걸로 하자 그런 거를 완전 초반에 생각은 했어요. 혹은 이거에 대한 비하인드가 더 있다는 걸 풀어나가자 했는데, 작업하면서 다 까먹었고 정신을 차리니까 제목을 넣을 데가 없는 거예요.
제목은 보통 스토리보드 짤 때 자리를 잡지 않아요?
그렇죠. 열심히는 했지만 너무 얼렁뚱땅 만들어서 생각을 아예 못 했어요.
두 가지 악당이 나오는 구도가 낯설어요. 또래 압박 삼총사가 있고 크리처가 있어요.
호원: 1 대 3의 구조에서 크리처가 나타나면 적대적인 1대 3이 연합을 해서 공통의 적을 치는 방법이 있고 당하던 1이 크리처와 연합을 해서 나를 가해했던 3을 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에 제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어요. 괴물 등장했을 때부터 재미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1차적으로는 비행기 추락 이후로 재미없다. 2차적으로는 괴물 나왔을 때부터 더 재미없다. 저도 동의합니다.
호원: 그건 장르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을까요?
제가 <민서와 할아버지>로 열심히 시나리오 공부해 놓고 막상 제 거 할 때 다 까먹은 거예요. 내가 재밌어하는 거 해야지에 꽂히다 보니까 시나리오 업 앤 다운 구조적인 부분을 하나도 생각을 못했어요. 장르에 대한 크리틱도 맞는 것 같습니다. 크리처라는 설정 하나 덜렁 만들어놓고 거기까지 전개하는 과정에서 장르적으로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된 점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쉬워요.
호원: 그 당시에 꽂혀서 재밌었던 부분은 어떤 건가요?
제 성향을 반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넣은 것도 좋았고 소외당하는 여자 아이를 내가 저시력과 극한의 상황으로 빗대어서 표현을 한다 콘셉트가 의미 있다고 느꼈어요. 근데 작화하면 할수록 그렇게 재밌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인공과 크리처의 연결고리를 찾자면 도나는 눈이 나쁘고 괴물의 눈은 하나지만 치명적인 능력을 갖고 있어요.
이거 너무 재미있는 콘셉트다 하고 눈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었어요.
눈을 보면 변한다는 거는 메두사 같아요.
메두사에서 착안한 것도 맞아요. 눈을 보면 나무로 변해서 죽는다는 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거예요. 저 혼자 생각했던 설정은 원래 그 섬에 살던 여자였는데,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여체는 조금 남은 크리처로 변했다.
나무로 변해버린 다프네 같네요.
다프네에서 따왔어요.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서 기존의 이야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렸을 때 <올림푸스 가디언>(2002, SBS)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봤던 세대인가요?
정확히 그 세대예요.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거 보면서 그날 밤에 잠 못 자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올림푸스 가디언>은 애니메이션으로 봤어요?
저는 만화책으로
크리처가 여성인 것과 식물인 것 어느 게 먼저였어요?
괴물의 모티브는 무조건 여자고 여자 나체를 표현하는 거는 완전 초기에 했던 생각이에요. 그게 더 전복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을 했어요. 독립영화관에 <도나 표류기> 틀었었는데 PD님이 귀신 아랫도리에 나오는 부분은 모자이크가 될 거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이미 모자이크 되어 있는 느낌인데
그림은 그렇게 외설은 아닌데, 틀려면은 제한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디자인한 의도는 뭐였어요?
크리처 디자인은 인간 본연의 맨몸이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면서도 나체가 다가오면 좀 그런가 이런 생각에 나무껍질이나 풀로 완화를 한 거였어요.
풀을 안 달았으면 모자이크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괜히 달아가지고. (웃음) 배경 하는 친구가 그거 보고 “뭐야 팬티야?” 이랬거든요. 결국에 그게 털 같아서 KBS에서 가린 것 같아요.
수학여행은 어디로 가던 길이었나요?
저는 일본 같은 데 생각하고 만든 거였어요. 섬 같은 거에 불시착이니까 어디든 되는데, 어쨌거나 해외로 여행 간다 이런 설정이었어요.
한국판 『오디세이』로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거기도 그리스랑 터키 사이에 괴물 나오는 섬 있는 거니까.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너무 재밌게 읽었나. 생각할수록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네요.
호원: 캐릭터를 봤을 때는 귀엽고 재미있고 명랑하게 가겠다 했는데, 그 스타일에서 호러나 미스터리를 다루는 게 한계가 있었을 것 같아요.
<도나 표류기>는 제가 기존에 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 거였어요. 이런 내용과 귀여운 디자인이 만나면 여기서 오는 아이러니가 있겠지 했는데, 좋은 시너지는 내지 못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장르와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어요.
메인 캐릭터 도나는 예전에 『씨네21』에 연재되던 「정훈이 만화」(1995-2020) 캐릭터랑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저 많이 봤어요.
다른 한 가지는 카툰네트워크 느낌이 보였어요.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미국 카툰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반영이 된 것 같아요. 도나 같이 귀엽고 덩치가 있는 캐릭터여도 어떤 그림체냐에 따라서 장르별로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제가 그때 그런 딱딱하고 단순한 실루엣의 캐릭터 디자인을 좋아했습니다. <엔터티>에서 그거를 벗어나느라고 엄청 힘들었어요.
도나는 무슨 소프트웨어로 작업했어요?
툰붐 하모니라고 플래시처럼 벡터 기반 작업 프로그램이에요. 라인 스타일은 달랐는데, <민서와 할아버지>랑 <도나 표류기>까지 같은 툴이었고 <엔터티>부터 티비페인트로 작업했어요.
호원: <도나 표류기>는 <민서와 할아버지> 7분에서 14분으로 갑자기 두 배가 길어졌어요.
혼자 하다 보니까 시행착오가 심했어요. 스케줄 안배를 그때는 잘 못했어요. 애니메틱도 너무 오래 만들었고 배경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캐릭터 4명 작화를 3~4개월 안에 혼자 다 했는데, 작화 퀄리티나 연출도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건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후회도 많이 했는데, 마감해야 되니까 힘들다는 생각을 계속할 시간도 없었어요.
호원: 그 이후에도 작품이 길어지는 거 보면 내가 충분히 얘기를 할 수 있는 분량은 10분 이상이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대중적인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품들은 15분은 돼야지 하고 싶은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엔터티>도 17분으로 부족했잖아요.
<도나 표류기>를 혼자 해보니까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웃음) 그룹 작업 시스템을 긍정하게 됐습니다.
민서와 할아버지 (2020)
칼아츠 졸업하고 바로 국내로 들어왔나요?
2016년에 오고 한 3년 방황을 했어요. 학교 졸업한다고 바로 프로페셔널하게 준비가 된 건 아니잖아요. 어디 가면 그때 저와 함께 일했던 분들을 만날까 봐 쫄릴 정도로 미숙한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각 잡고 상업적인 시스템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스킬을 키우거나 해야 되는 시기였는데, 2019년 창의인재 동반 사업 공고를 봐서 그때부터 독립 작가로 가게 됐어요.
그 3년 동안은 상업적인 작업을 하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 작가가 하고 싶었어요. 시리즈물이나 장편 이런 일 하고 싶었어요.
<민서와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기획안을 내고 들어간 거예요?
백지부터 시작했어요. 창의인재 기간 중간에 그 다른 팀 멘티, 멘토분들이랑 같이 그룹 멘토링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스토리가 없었어요. 얼레벌레 그때 있었던 거 가져가서 발표했고 그 뒤로 스토리 구상 다시 하기 시작해서 시나리오 썼어요.
호원: 창의인재 중간에 7분짜리 스토리 작업했으면 되게 짧은 시간 동안에 작업을 한 건데
엄청 빨리 만들었어요. 화상 미팅 그룹 만들어 놓고 친구들한테 화면 띄우게 해서 도와달라고 해서 배경이나 채색은 친구들이 도와주었어요.
화면을 띄우게 해서?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작업하는 친구 화면이 안 움직이고 있으면 “너 지금 출석 안 하고 뭐 하니” 이런 식으로 감시하면서
2019년부터 화상 채팅을 많이 쓰셨어요?
이용선 감독님이랑 중반 이후부터 미팅도 구글 미트나 유선 상으로 했어요.
급하게 손을 벌렸던 친구들은 학교 때 친구들인가요?
다 고등학교 친구들이었어요. 그때 작화, 채색 도와준 두 명이 지금도 배경 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내용이 나온 건 언제쯤이었나요?
그룹 멘토링 끝나고 7월쯤에 시나리오 나왔던 것 같아요.
항상 기획은 여름부터
어쩌다 보니 사이클이 그렇게 됐는데 여름에 하기 시작해서 한 달 안에 시나리오 마무리하고 작화 들어갔을 거예요.
호원: <민서와 할아버지>는 스트럭처가 잘 잡혀있어서 언젠가는 해야지 하고 아껴놓은 작업 같았어요.
위기에 몰리니까 개인적인 경험에서 떠올리게 되잖아요. <민서와 할아버지> 자체는 픽션이지만 아이디어는 저희 할아버지한테서 착안을 한 거니까 애정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는 있었어요.
창의인재 지원할 때 생각해 놓은 이야기도 있었죠?
제가 그때 다큐멘터리에서 본 풍장에 꽂혀서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풍장을 하는 내용을 구상해서 면접 때 발표했어요. 이용선 감독님이 하이 콘셉트 좋아하셔서 저를 뽑으셨다고 했거든요.
하이 콘셉트는 뭐예요?
일상드라마물이 로우 콘셉트이면 일상 상황을 벗어나는 특수한 설정 상에 놓인 <백 투더 퓨처>(1985, 감독: 로버트 저매키스) 같은 거예요. 흥행을 목적으로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기 좋은 영화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서 결과적으로는 장르적인 소재의 영화들이 하이 콘셉트으로 구분되는 것 같구요.
근데 들어가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창의인재 멘토링 과정을 이용선 감독님이나 저나 시나리오 공부를 다시 하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 스트럭처부터 다시 배워야 되니까 일상드라마물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기초도 없는데, 하이 콘셉트 장르를 할 수 없으니까 다시 시작해 보자 한 게 <민서와 할아버지> 같은 드라마물이 된 거예요.
호원: 이 작품은 가장 기본적인 두 캐릭터를 가지고 현재의 기억과 과거의 사실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구조적으로 단순한 거에서 시작해서 왔다 갔다 호흡 조절하면서 입체적으로 가요.
앞에서는 일상적으로 흘러가다가 점점 더 큰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을 되게 신경 썼던 기억이 나네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봐주시는 환경이었나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시골집에 어른들은 부엌에 계시고 거실에 신문지 펴놓고 상 깔아놓는 거 있잖아요. 제가 세 살인가 그랬는데 초고추장을 가지고 놀다가 그릇에 묻혀서 할아버지가 “누가 그랬어! 이런 거예요. 어리니까 저는 대답 안 하면 할아버지가 모르겠지 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저를 혼낸다고 생각해서 너무 무서웠거든요. 한 20년 후에 엄마한테 그때 할아버지가 이것 때문에 혼냈다고 했는데 엄마는 할아버지는 혼낸 게 아니고 네가 모른 척하고 있는 게 황당하니까 놀린 거다 얘기했던 일이 있어요. 저는 이게 되게 인상 깊은 기억이어서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라 했을 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칼아츠 3학년 때 만든 <슈 리페어 Shoe Repair> 할머니는 신발 수선을 하고 민서 할아버지는 옷수선집 하셨어요. 그 전통이 <엔터티>의 성인용품 수리까지 이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다들 손재주가 있네요. 생각을 못 해봤어요.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런 가내수공업을 하신 건 아니고요?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런 설정이 반복되는 건 작업 스타일이 가내수공업적인 성격이어서 일까요?
집에 갇혀서 맨날 그림 그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메인 캐릭터들도 집에 갇혀서 뭔가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그해 창의인재 중에서 세 편만 인사동에서 전시를 따로 했어요.
상영회 날 우수 멘티 뽑았거든요. 저랑 김경배 감독님이랑 <너무너무 싸아한 빌라>(2019) 이유경 감독님이랑 전시까지 하게 된 거예요.
호원: 이용선 감독한테도 필요한 젊은 감독이 매칭이 된 거고 휘빈 감독한테도 자기의 작업 비슷한 장편까지 먼저 한 사람이 붙으니까 역대 창의인재 중에서 제일 잘 만난 합 같았어요.
저도 잘 만났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우스갯소리로 이용선 감독님 덕분에, 창의인재 덕분에 다시 태어났다는 말도 했었는데요. 저한테 너무 중요한 순간이라고 지금도 생각을 해요.
<민서와 할아버지>를 끝내고 나서 방황이 끝났나요?
<찾아라! 데스티니> 배경 하면서도 작업이 재미있는 거랑 별개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계속하는 게 맞나? 생각했어요. <엔터티>를 하고 나면 모든 게 만족스러울 거라는 생각을 처음에 했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거예요. 계속 작품 하는 걸로 진로를 정해야겠다 마음먹고 심기일전해서 준비하는 게 지금 중편이에요. 그러니까 <엔터티> 중반부터 방황이 끝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호원: 칼아츠 캐릭터애니메이션 졸업을 하고 한국에서 독립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나요?
지금은 한두 명씩 생기는 것 같은데 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어요. 제가 참고할 만한 모델도 없었고 아무래도 캐릭터애니메이션과는 졸업하면 상업적 회사 들어가는 수순이기는 해서 독립 작가 하는 경우 진짜 진짜 없어요. 제 동기 중에서도 독립 작업하는 건 저밖에 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팀 꾸리기가 어려워서 혼자 지속해 나가기 너무 어려운 거여서 안 하는 것 같거든요. 좋은 작업 메이트를 만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호원: 칼아츠에서 <포대기>를 만들고 졸업한 다음에 프랙티컬 트레이닝하면서 인턴십 같은 거는 안 했어요?
인턴십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유학생 신분으로 일을 하려면 워크 비자 퍼밋을 받아야 되잖아요. 인턴십 파이널리스트에 올라갔다는 연락이 왔을 때 “저 아직 워크 퍼밋이 없어요” 이래서 바로 떨어졌어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청Chung이 몇 명 있었거든요. 임시 워크 퍼밋이 다른 집으로 가서 제가 그걸 못 받은 거예요. 떨어지고 난 다음에 그 집에 사시는 분이 “아가씨 메일이 나한테 잘못 온 것 같다”고 갖다 주셨어요.
호원: 배송 오류 때문에 <엔터티>에서도 사달이 나는데 (웃음)
너무 좋은 회사 인턴십 파이널 리스트에 올랐다 보니까 실제로 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자신감만 생겨가지고 그 뒤로 너무 상향 지원만 하다가 친구가 아는 감독님의 감독님의 감독님 회사에서 스토리보드 할 사람 구한다고 해서 두세 달인가 일했고 결국 비자가 안 나와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칼아츠 캐릭터애니메이션과를 갔을 때는 미국 인더스트리에 진출해 보겠다는 마음이었죠.
저는 애니메이션 대기업에 들어가서 유능한 부품이 되는 게 이상적인 애니메이션 진로라고 생각을 했어요.
<포대기>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잖아요.
나도 작가주의적으로 나를 좀 표현해 볼까 하고 만들었던 작품이에요. 거기 나오는 할머니 캐릭터도 저희 할머니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할머니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병원에 가게 된다는 에피소드도 실제로 저희 할머니가 겪으셨던 거예요. 유학하는 친구들이 한 번씩 거쳐가는 건데, 꼭 자기 얘기로 만들고 싶어 하거든요. 내 문화권이랑 내 언어랑 이런 거 표현하고 싶어 하는데, 저도 그때 그래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굳이 시골 우리나라 시골을 배경으로
감동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할머니와 포대기
호원: 자기는 치트키, 승부수라고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보면은 결국 저 친구도 꺼냈구나.
결국엔 남들이 다 하는 건데, 내가 기획할 때는 엄청 특별해 보이잖아요.
호원: 이 작품에서 유독 제 귀에 꽂힌 거는 도나스예요.
저희 할머니가 그때 도나스에 꽂혀 계셔서 할머니 뵈러 갈때 도넛을 많이 사갔어요. 할머니가 크리스피크림 진짜 좋아하셨거든요. 실제로 저희 할머니도 심각한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음식 하나로 기분이 풀리는 분이셔서 저도 이거를 만들었을 때 그걸 위트 있게 사용하고 싶었어요.
저는 집에 들어갈 때 담장에 놓여 있는 동자승 둘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것도 실제로 있던 거예요.
호원: 집 공간 자체가 자기가 살았거나 실제로 로케이션을 가서 꼼꼼히 본 공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앵글들이 많아요.
실제로 시골에 사시는 이모 집이에요. 그 집 옆에 스님이 사시거든요. 동자승이 올라가 있어요.
포대기는 모델이 있어요?
아니요. 그건 없어요.
호원: 이 작품에서 제일 피상적인 게 포대기야.
정확하십니다.
호원: 도나스가 제일 구체적이고 (웃음)
딱 대학교 4학년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이거 하나 아이템 가져와서 감동적으로 써먹어야지.
호원: 2015년에 포대기를 갖고 칼아츠에서 만들었으면 외국애들은 잘 이해를 못 했을 텐데
잘 몰랐을 텐데, 그때 포대기 원어 그대로 썼잖아요. 이것도 뭐 나의 특색이다 생각을 하고 (웃음)
4학년 작업을 할 때는 3학년 때보다는 즐겁게 했나요?
딱 기획까지만 재밌게 하고 지지부진하게 작업했어요. 학교에서 이야기 피드백받는 워크숍 수업이 있는데, 초반에는 피드백이 긍정적으로 왔는데 뒤로 갈수록 저도 그렇고 봐주시는 선생님도 텐션이 떨어졌어요. 제가 얼른 메인 프로덕션에 들어가야 되는데, 스토리보드 붙잡고 있으니까 그때쯤부터 좀 힘들게 만들어서 완성할 때까지도 울며 겨자 먹기로 했어요.
호원: 결코 놓지 못했던 게 있었어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시나리오에 구멍이 있어도 완성을 해야 되니까 계속 진행을 시키시는데 적어놓은 게 미진하니까 스토리보드도 약하게 나왔거든요. 연출로 보강을 해야 되는데, 계속 비슷한 앵글 비슷한 장면만 그려가는 거예요. 소재나 콘셉트에 대한 거는 크게 참견을 안 하셨는데, 연출할 때 처졌던 부분에서는 제가 핵심을 놓치고 피드백을 들으니까 그때도 이해가 안 됐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정확히 어느 부분이 부족했던 건지 기억이 안 나요.
언어적인 문제였나요?
기술적인 문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못하고 있으니까 후배였던 친구가 “걸어갈 때도 이유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해줬거든요. 근데 그때도 이해를 못 하고 ‘걸어가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집에 가는 거지’ 그랬어요. 그때 그 친구는 정답을 알고 있었는데, 저는 몰랐어요. 생각해 보면 기술도 기술이고, 연출에 대한 감각을 기초부터 탄탄히 잡았어야 했는데, 감각에 의존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그때는 감각도 기초에서 기반한다는 걸 몰랐어요.
창문이 없는 집엔 아이가 없다 (2009)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갔잖아요.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나 커서 뭐 하지 이런 생각하잖아요. 3학년 때까지는 화가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내심 그게 장래희망으로는 진부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화가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세상이 열렸던 느낌이었어요.
<창문이 없는 집엔 아이가 없다>를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봤어요. 4명이 같이 작업했잖아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들었어요.
호원: 4명 중에서 정휘빈의 지분이 어떤 거예요?
스토리와 콘셉트. 시나리오 제가 했던 거였어요. 그때 학교에서 각자 이야기를 만들어 와서 선생님 앞에서 발표를 하고 이야기가 선택된 애를 주축으로 팀원을 꾸렸거든요. 제 이야기를 보고 친구들이 같이 하면 좋겠다 해서 하게 됐어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짜게 됐는지 기억나요?
제가 공포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무서운 걸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교육용 동화 같은 걸로 출산 장면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어떤 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런 교육용 자료에서도 출산 장면을 무섭게 묘사했던 기억이 나요. 피가 표현됐거나 하는 장면 한두 개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고, 그걸 모티브로 공포우화 같은 걸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호원: 이거를 만들기 위해서 출산실을 직접 가볼리는 없었겠죠.
네, 고등학생들이니까 적당히 상상력을 발휘했어요. 아이 시점으로 만든 거다 보니까 그 상황을 엄청 공포스럽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출했어요.
창문이 없는 집에 아이가 없는 건 황새가 날라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릴 때 동화책이나 어린이용 만화를 통해서 접하는 이야기들 중에 아기를 황새가 물어다 준다는 류의 출산 속설들이 있잖아요. 그런 류의 우화를 혼자 비틀어서 생각해 보다가 ‘그럼 황새가 아기를 물어왔는데, 아기를 전달해 줄 창문이 집에 없으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얘기를 들어봤고 나중에야 서양에서는 황새가 날라준다고 하는 걸 알았거든요.
호원: 삼신할머니가 뭐 해준다든가
제가 어릴 때 영미권 동화를 많이 본 것 같아요.
호원: 이 작품은 연출이 과감했었어요. 도약을 하기도 하고 확 전환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세계의 명작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나요?
애니고에 들어가면 1학년 때 NFBC로 브레인워시를 한 번 싹 하고 1학기 끝내거든요.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저나 친구들 머릿속에 모두 예술적인 거, 몰핑은 무조건 들어가고 막 심오해 보이는 거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2학기 시작해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기간 동안 다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대부분 떠올리거든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공포와 블랙 코미디 기획을 보였기 때문에 선정된 건가요?
“저 공포 영화 할래요” 하고 가져간 거니까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런 장르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고 골라주신 것 같아요.
아기는 쭈그렁 원숭이같이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아기를 공포스럽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저희끼리 “최대한 무섭게 해야지. 무조건 그로테스크하게 해!”
호원: 주인공 아이 입장에서는 갓난아기는 에일리언 같은 거야. 자기 엄마 몸에서 훅 튀어나오고
맞아요. 맞아요. 완전 체스트 버스터 같은 느낌.
호원: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칼아츠로 간 거예요?
한국 대학 진학은 생각도 안 했고 미국의 대학교 여러 개 넣으려고 했는데, 그 해에 칼아츠가 유독 결과 발표를 빨리 했어요. 여기 됐으니까 다른 학교 넣을 필요 없이 갔어요.
흐름에 따라서 살았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어요.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목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고 싶다” 였죠.
저도 말로는 “나도 팀 버튼처럼 돼야지” 하는데, 말만 그렇게 하지 저는 적당히 살고 싶었거든요. 근데 적당히 하려면 엄청 열심히 해야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때는 픽사, 디즈니 들어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더 안 됐던 것 같아요. 남들 하는 것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진짜로 잘하고 싶은 게 뭔지 잘하고 싶은 걸 잘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일찍이 알았어야 했는데, 그 부분을 잘 몰랐어요.
호원: 애니메이션 전공 학생으로서 재밌다와 징글징글하다가 있었을 거잖아요.
내가 잘 못할 때. 내가 분명히 표현하고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성취가 잘 안 될 때가 진짜로 괴로운 것 같고요. 그런 괴로움에 비하면 작업하느라 손 아프고 어깨 아픈 건 힘든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작업하는 거 자체에서 재미를 찾는 것 같아요.
이미지는 이야기에 비해서는 집착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미지는 제가 계속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은 해요. 제가 이미지적으로 완성도가 없다는 게 콤플렉스거든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미지가 제일 직관적인데, 나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없으니까.
완성도가 없는 건 아니고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요. 내 스타일을 만들고 싶나요?
앞으로 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찾는 것 또한 제 작품적인 목표 중 하나예요.
호원: 제가 찾은 정휘빈 감독의 특징은 캐릭터의 코예요. 살짝 들린 코를 위주로 그려요.
제가 전형성에서 벗어난 귀여움을 그리는 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할 때 코 때문에 진짜 많이 혼나거든요. 너무 안 예쁘게 그린다고. 근데 저는 그 코가 안 예쁜 코인지 몰랐어요. 제가 보기에는 너무 귀여운데, 제가 진지하게 장르물을 할수록 그 코가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이번 중편은 코가 다를 거예요.
인터뷰 2025년 3월 12일 @ 합정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