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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KIM Sangjoon


지친 중년의 지하철 기사의 눈에 띈 의문의 인물들과 이세계를 그린 첫 번째 애니메이션 <바퀴 돈다>(2018)로 2019년 인디애니페스트를 찾은 김상준 감독은 바로 다음 해 진하고 거친 선으로 도시의 무례한 사람들을 은유한 <비둘기>(2019)로 다시 찾아왔다. 3년 뒤에는 대단지 아파트에 살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 <메아리>로 돌아와 대상 ‘인디의 별’을 받았다. 2024년, 스무 살을 맞은 영화제의 포스터와 트레일러를 제작하고 상영작 감독이 아닌 심사위원으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참가한 그를 영화제 전에 일주일 전에 미리 만났다.


2024년 10월 인터뷰

다른 각도에서


DISTANCE


호원: <비둘기> 때 받았던 인상하고 <메아리> 때 받았던 작품 스타일이랑 달랐어요.

제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고 저의 특징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보통 애니메이션 작가라고 불리는 분들은 자기 세계가 스타일이라든가 일러스트레이션 기법 같은 게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 있는 상태로 발전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애초에 그림을 못 그린다. 같이 있는 사람하고 으쌰으쌰 해보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해왔어요. 그래서 <비둘기>도 <바퀴 돈다>도 <메아리>도 들쑥날쑥하는 느낌이죠. 저만의 거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옆에 있는 친구들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도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달팽이>라는 것도 또 다른 친구랑 만들고 있어서 그림이 바뀌고 제가 어떤 걸 해야 될지 상황마다 바뀌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특색을 갖고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컴퓨터 그래픽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한국은 미대 들어갈 때 실기 시험을 보는데, 미국은 어때요. 그림을 보나요?

그리긴 하는데 수업이 거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을 직접 그리는 학과들과는 그래도 그림 그리기는 하죠.


앞으로 어떤 걸 하고 싶다는 게 있어서 전공을 선택하신 거 아니에요?

애니메이션을 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졸업 작품을 촬영 영화로 했었거든요. 특수 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거였어요. 지금 하는 작업과는 아예 다른 건데 그 작업을 할 때 작업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제 주변에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버젓이 있길래 그 친구를 꼬시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어요. 뭔가 촬영은 크루가 100명 필요하니까 애니메이션을 모르고 그 친구랑 같이 해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바퀴 돈다>였어요. 회사 다니면서 퇴근하고 4년 동안 만들었던 것 같아요.


촬영 영화는 실사에 컴퓨터 그래픽 VFX를 하기 위해서 만든 건가요?

네, 근데 촬영도 직접 했어요. 


단편 영화처럼 완결된 스토리가 있었나요?

2분가량의 단편 영화였어요. 저희 학교의 졸업 과정이 단편 영화를 만드는 거였어요. 애니메이션 아니면 촬영 영화 이렇게 두 분류로 나눴는데, 저는 합성이 전문 분야다 보니까 촬영 영화를 만들었죠. 


저희 학교 커리큘럼이 애매했어요. 근데 그 덕분에 저는 약간 그 맛을 봐서 회사 다니면서 갈증을 느끼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2분짜리 졸업작품 내용은 뭐예요?

아버지와 아들이 소파에 앉아서 채널을 돌리다가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채널을 보면 소파가 늘어나요. 빌딩 밖으로 아파트 밖으로 튕겨나가기도 하고 서로의 공감대가 깨지다가 나중에 야한 채널로 멈추는 순간 소파가 가까워지면서 남자대 남자로서 서로 으흐흐하면서 끝나는 내용이었어요. <Distance 거리>라는 제목이었고요. 그런 내용으로 VFX 버무려서 만들었던 작업이었어요.


바퀴 돈다 THE WHEEL TURNS (2018)


<바퀴 돈다> 작업에 영입한 분은 원래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인가요?

<메아리> 때도 같이 작업했던 윤충녕이라는 친구고요.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일러스트레이션 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서울인디애니페스트) 포스터나 예고편 작업도 그 친구랑 했고 그 친구 그림이 너무 좋고 뜻이 맞아서 계속 같이 작업 많이 해요.


평소에 각자 지내다가 “뭐 하나 같이 만들어보자” 의기투합을 한 건가요?

저는 뭔가를 항상 하고 싶거든요. 그 친구랑 같이 뭐라도 하고 싶어서 <바퀴 돈다>를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보통 회사 침체기가 온다는 3년 4년째였던 것 같아요. 퇴근하고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뭐라도 만들고 싶다’ 점점 그랬어요. 지하철 타고 출퇴근을 하니까 ‘내가 지하철 운전자 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지하철 반대편에서 거지 같은 분이 문 열고 들어가는 거를 보고부터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이 나서 그런 스토리가 실행이 됐던 것 같아요.


문 열고 들어간다는 거는 지하철 역사 안의 공간을 말하는 건가요.

네, 한국 지하철이랑 다르게 미국에는 그런 공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는데 저 멀리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을 봤거든요.


윤충녕 씨는 가까운 데 사셨어요?

네 뉴욕에 한인타운이 있는데, 약간 한국 90년대 같아요. 거기에 고려당이라고 빵집이 있었어요. 매주 커피 같은 거 사들고 둘이 만나서 그림 같이 그러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갔어요.


단편은 그전에 종종 보셨나요? 

그때부터 좀 찾아봤던 것 같아요. 인디애니페스트도 찾아보고 한국에서 작업하시는 분들한테 호기롭게 “이런 거 어떻게 만들었냐” 이메일도 보냈어요. 사실 그때 여러분들한테 보냈는데 돌아오는 답들이 되게 차가웠었거든요. 자기네들 비밀을 알려줄 수 없다는 듯한 답장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거 타도하자 해서 타도(Tadoh)였던 것 같아요.


저는 진짜 제가 즐거운 걸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거창한 느낌은 아니고 친구들이랑 그룹 같이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이도 저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아직까지는 그게 저의 아이덴티티인 것 같아요.


주말마다 만나서 <바퀴 돈다> 작업은 얼마 만에 만들어진 거예요?

4~5년 걸렸던 것 같아요.


그 사이에 동력을 잃지 않았던 게 신기하네요.


호원: 일을 저질러 놓으면은 그것 때문에 회사도 다녀야 되는 거고 회사를 다니다 보면 스트레스 받으니까는 이 작업을 또 해야 되고 

미국에 제가 일하던 후반 작업 분야도 갈아서 넣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퇴근을 3~4시에 하고 많이들 그렇게 했었어요. 그렇게 하면 할수록 거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느낌이 많았어요. 그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까 진짜 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들었어요. 정확히 말씀 주신 대로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잠을 적게 자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계획 없이 조금씩 조금씩 했나요 아니면 작업 속도를 보니까 한 4~5년 걸리겠다 계산이 됐나요.

진짜 애니메이션으로 단편을 만드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지 몰랐거든요. 저는 길어봤자 2년 안에 끝낼 줄 알았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점점 늘어지더라고요.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도 그렇게 된 거였어요. 근데 한 번 단편을 해보니까 점점 속도는 빨라지더라고요. <바퀴 돈다> 때는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제일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이 어떤 거였어요?

애니메이션이었던 것 같아요. 


막상 만들어보니까 뭐가 안 나왔어요?

작업들을 보는 눈은 나름 있는데, 이 손으로 그리는 게 제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해도 해도 제 눈에는 이상하고 그래서 더 오래 걸렸어요. 뭔가를 해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나오지가 않았어요. 제가 보는 걸로 만족하는 게 지금도 잘 되지를 않더라고요. 그게 경력자와 비경력자의 차이겠죠.


기획을 했던 시간하고 실제 제작을 했던 시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기획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계속 뒤엎어요. 기획이 반 이상 걸렸던 것 같아요.


호원: 처음 만드는 거 치고는 15분짜리는 너무 원대한…


졸업작품 2분짜리 만들었는데 무슨 배짱이지 (웃음)

몰랐어요. 그렇게 긴 건지는 정말 몰랐어요.


<바퀴 돈다>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어요. 화장실에서 시작해서 지하철까지 빛으로 공간 전환을 계속하잖아요. 카메라 앵글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하고는 좀 달랐거든요. 드론샷 같은 구도가 있잖아요. 이런 각도는 내가 봐온 게 있어야지 나올 것 같은데 평면 캔버스 작업만 하시는 분들은 스토리보드 짤 때부터 잘 안 쓰거든요. 아마 다양한 영상을 많이 보셔서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펼칠 수 있는 거를 제가 못 펼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저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역동적인 연출이 장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호원: ‘도대체 감독이 누구야’ 했더니 ‘뉴욕에서 활동을 하면서 작업하시는 분이 있어’ 해서 ‘프로 출신이구나 <메아리>도 <바퀴 돈다>도 프로니까 저렇게 연출을 했지’라고 착각을 해버릴 정도로 처음 시작하실 때 이미 눈이 높았어요.


중간에 나오는 환상 공간 있잖아요. 냉면집 있고 콩국수집 있고. 지하철은 뉴욕 스타일인데, 그 공간은 한글이 가득한 공간이잖아요. 그게 뉴욕의 한인타운의 느낌인 건가요? 아니면 멀리 고향의 느낌인 건지 아니면 어디 먼 이세계인가요.

생각해 보면 그게 저인 것 같아요. 제가 2002년도에 유학을 가긴 했는데 제가 기억하는 한국은 과거의 느낌이고 저는 과거의 한국인인 것 같더라고요. 미국에 사시는 어른들이 한국 나오면 외지 사람 같아 보이는데, 제가 한국을 한 번씩 올 때마다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구나. 제가 기억하는 한국이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고 그게 저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바퀴 돈다>에서도 계속 본인을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안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머리숱이 많이 빠진 중년의 남성이잖아요. 이런 아저씨가 주인공이 된 이유가 뭘까요? 지하철을 운행을 하려면 그 정도 나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가요?

제가 그거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살다가는 이렇게 될 것 같아요!

네, 그 위기감으로 작업이 굴러갔기 때문에. 그리고 지하철 운전자가 결국은 두꺼비가 돼요. 저랑 친한 형이 있는데 회사 일을 오래 하시다 보니까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작업이 좋고 나쁜 게 돈으로만 해결되는 것 같지도 않고 세상이 막 돈 같지는 않았어요. 그분이 두꺼비 같이 생겼었어요. 저한테는 저만의 순수한 걸 지키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지하철 운전자가 갑자기 두꺼비가 되는 것처럼 나도 갑자기 두꺼비가 돼버릴 것 같은 세상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설정들을 놨던 것 같아요.


개구리들이 시험관에 넣어놓고 온도를 높이면 체온이 변해서 못 느끼는 채로 죽는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했어요.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하지만, 중학교 때나 그 이전에 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기억을 어딘가 서랍 속에 넣어놓고 있다가 그 두꺼비 형하고 바늘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엮어서 오프닝을 만들었어요.


호원: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어른의 입장에서 툭 던지면서 그래픽적으로 인상적으로 시작되고 영화적으로 풀어서 지하철까지 가는데 ‘이 감독 프로야’ 그런 생각이 들었죠. 기획 때부터 이 장면은 머릿속에 있었나요?

오프닝만 그대로 처음부터 생각을 했어요. 확실하게 제 일상이 그렇게 단막극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어요. 갑자기 침대에 누워 있고 갑자기 세수하고 있고 이런 느낌이었어요.



이 작품이 시체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어요. 

무슨 킹콩 로고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이건 뭐지 하고 일단 냈어요. 거기서 다행히 불러줘서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 갔거든요. 그 연도에는 엄청 쟁쟁한 것들이 없었는지 다행히도. 그때 영화제가 너무 좋은 거구나. 너무 행복하게 있다가 왔어요.



<바퀴 돈다> 이후에는 바로 다음에 작품이 나왔어요. 러닝 타임은 줄었지만 앞의 작품이 4~5년 걸렸던 거에 비하면 굉장히 빨랐어요. 노하우가 생긴 건가요?

강약 중강약 이런 느낌으로. 그전에 완성도는 떠나서 제가 너무 힘줘서 한 것 같아서 다음번에는 최대한 힘 빼서 하자 해서 일부러 라인 드로잉 느낌으로 색깔도 거의 없이 최대한 힘 빼서 빨리 해치웠던 것 같아요.


<바퀴 돈다> 다 끝나고 난 다음에 들어간 거예요 아니면 하던 중에 아이디어가 생각난 건가요?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프로덕션보다 기획하는 게 더 좋은 것 같거든요. 이걸 끝까지 달리면서도 다음에 달리고 싶은 거를 또 생각해요. <바퀴 돈다> 중반 정도 됐을 때 어느 정도는 속도가 붙었을 때 다음에 뭐 하고 싶다 좀 힘 빼고 해야지 이대로 가면 난 못하겠다. 그때부터 기획을 계속 이렇게 엇갈리면서 하는 것 같아요.


비둘기 PIGEON (2019)


호원: 라인 드로잉 스타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것은 <비둘기>가 처음이죠.

그때도 라인 드로잉을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또 불러서 같이 해보자 했어요. 그 친구만의 스타일은 아니고 제 그림을 베이스로 해서 그 친구와 중간에서 같이 만났어요. 충녕이랑 작업할 때도 제 그림하고 충녕이 그림하고 중간 정도로 해서 그런 식으로 찾아갔어요.


첫 번째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다음 걸 기획하다니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은 분인 건 확실하네요.


호원: 애니메이션이 맞는 분인 것 같아요. 대게 하다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구나 힘들구나 잘못 발을 들었구나. 좋은 경험이었다. 딱 그렇게 끊는데. (웃음)


힘들지 않았어요? 하면서 이거는 이 스타일은 너무 지치니까 다음에는 좀 가볍게 해 봐야겠다.

뭔가 더 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샘솟았어요?

지치는 느낌은 아니었고 다음에도 더 좋은 걸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는 속도가 나게 색칠하지 말고

네.(웃음) 아직 하나가 완성이 안 됐는데도 계속 내가 생각한 것들이 결과물로 나오는 것에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작업이 쌓인다는 느낌이 자기 자식들 많아지는 것 같고 작업 많이 하시는 분들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나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었어요.



두 번째 작품을 기획을 했을 때 주변에 짜증 나는 일들 투성이었나요?

뉴욕에 좀 지쳤던 것 같아요. 한국에 나왔을 때도 약속을 서울에서 많이 했는데 강남역이 너무 싫었어요 <비둘기>를 강남역에서 떠올렸던 것 같아요. 강남역에서 제가 운전할 때 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짜증 나고 제가 또 횡단보도 건너고 있는데 차들 막 밀고 들어오면 갑자기 또 차들이 짜증 나고 생각해 보면 둘 다 저예요. 그때를 생각해서 만든 것 같아요. 매번 작업할 때 제일 중요한 거는 태도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집중해서 만들다 보니까 저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런 게 아닌가.


작품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내용도 더 즉각적인 일상적인 소품 같은 작업이네요.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피터팬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가지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되게 고민 많아 보여서 어른 되면 나도 고민 많아지겠다.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로 남아 있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추억을 그리면서 <메아리>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비둘기>도 어떻게 보면 과거를 다루는 저의 태도였던 것 같아요.




메아리 ECHO (2022)


<메아리>는 언제부터 시작된 거예요?

<비둘기> 끝나고 거의 몇 주 안에 시나리오나 이런 거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반신욕 하면서 랩탑 같은 거 들고 와서 쓰는데, 반신욕 한 번에 뭔가 홀린 것처럼 시나리오를 써서 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을 냈면서 출발을 했어요.


호원: <비둘기>는 6개월 정도 작업하신 거예요?

6개월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한 4개월 정도.


시나리오를 반식욕 하면서 다 썼다고요. 물 다 식었을 것 같은데

한 1시간 반 걸렸어요.


첫 번째 시나리오 때부터 어린아이와 재개발과 야호맨 같은 요소들이 다 나왔어요?

제 경험담이어서 쉽게 출발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 콘진 지원을 하는 거는 어렵지 않았나요?

어려웠어요. 면접을 가야 되잖아요. 근데 그때 코로나여서 줌으로도 해서 좀 수월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알던 친구를 섭외해서 그 친구가 제작자가 돼주고 첫 번째 면접은 그 친구가 하고 나머지 면접은 줌으로 할 수 있었죠.



어릴 때 살던 동네의 이야기인 거죠.


호원: 삼호아파트. 작품 보면 로케이션 스카우트 담당이 따로 있더라고요.

어렸을 때 같이 동네에 살았던 친구 태권도 했던 상훈이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랑 또 다른 친구들이 실제 살았던 아파트 가서 사진 찍어서 보내주었거든요.


그 아파트는 아직 재개발이 안 됐나요?

지금은 다 무너져서 또 새로운 빌딩이 올라가고 있겠죠.


<메아리>를 기획하던 당시에는 자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네, 근데 거의 헐기 직전이어서 막 금가 있고 이랬어요.


야호맨도 실재했나요?

그렇게 뒤에서 판잣집처럼 짓고 사는 설정은 제가 나중에 넣은 거고요. 약간 미친 사람 같은 분이 새벽에 야호 하는 것만 실제였어요. 저희 아버지랑 실랑이했던 것도 진짜인데 그 뒤에 이야기는 제가 꾸며낸 거예요.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은 들었던 것 같아요. ‘과연 뭐 하는 사람이 아파트 사람들 사는데 새벽에 야호를 외치나’라고. 나이 들어서 이걸 쓸 때 생각해 본 거는 나도 결국 세상에 야호 외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외롭고 그냥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실로 엮듯이 묶어버린 것 같아요.


<바퀴 돈다>에 등장했던 우쿨렐레 치는 노인하고 야호맨하고 비슷해요. 둘 다 삐쩍 마른 아웃사이더잖아요.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동경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하는 거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뭔가 자기 세계가 있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근데 자기는 행복한 거.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형하고 상훈이도 그렇고 다 모델들이 있는 거죠.

네 실제 형이었고 실제 상훈이에요.


상준은 엄마 닮고 형은 아빠 닮고 실제 그런 거예요?

네. (웃음)



호원: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다뤄지는 아파트 공간은 생각보다 크게 잡는 편이에요. <메아리> 속 아파트의 실평수는 정말로 우리가 경험한 작은 공간처럼 보여요. 보통은 아파트에서 거실, 주방 하면은 되게 넓게 잡거든요. 4명의 가족이 살기에는 약간은 복닥 복닥한 공간이 보이는 거예요.

그것보다 컸을 수도 있어요. 저도 명확하지는 않은데요.


호원: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보면은 실제보다는 커 보이거든요. 근데 이 작품에서는 엄마가 주방에 있을 때도 좁아 보였고 베란다를 열고 거실을 쳐다볼 때도 되게 타이트했었어요.

제 의도라면 실내는 좁게 잡고 싶었고 바깥은 크게 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야호맨하고 애들하고의 거리감을 더 주고 싶었어요.


저는 특이한 카메라라고 하면은 정면에서 잡는 것보다는 위에서 보는 거 있잖아요. 아파트 벽에 꽂혀 있는 테니스공과 함께 아래쪽에 주차장이 보이는 이런 샷들은 잘 안 나오거든요. 평소에 우리가 그런 각도를 볼 일이 없잖아요. 그런 샷들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테니스 공이랑 풍경을 같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 머릿속 라이브러리에는 촬영 영화 앵글이 더 많다 보니까 카메라 앵글을 우선적으로 떠올려서 그런 숏들이 구성된 것 같아요.


그렇게 사진을 찍지 못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볼 수 있는 게 좋겠다 원근 맞춰서 그렸나요?

그렇죠. 일본에서 배경 회사를 하시는 삼촌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배경 회사는 애니메이션 배경인가요?

네, 그래서 삼촌이 조언도 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호원: 구도는 3D로 먼저 잡으셨어요 아니면 그냥 2D로 잡으셨어요?

2D로 잡았어요. 충녕이는 회사 작업을 많이 안 한 친구라서 제가 스토리보드 그린 거에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삼촌은 일본에서 대기업 애니메이션 같은 거를 외주로 많이 하시는 분이다 보니까 그런 스케치를 받으면 “이거 파스 다 말도 안 된다” “3D로 만들어야 된다” “스케치업 켜야 된다” 하시는 분이셔서 제가 그런 거를 최대한 누르면서 그래도 그냥 한번 봐달라고 그러면서 진행을 했어요. 


호원: 3D를 안 거쳐서 그 효과가 가능했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실점이나 이런 것이 오프 되는 게 많고요.



비닐하우스의 비닐은 3D죠.  그 움직임이 각별해 보였어요.

저는 합성 전문이지 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닐 느낌이 어려웠었어요. 비닐 막 날리면서 찍어서 합성을 해보고 스톱모션도 해봤는데, 아무것도 잘 붙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공 들였던 것 같아요.


공들인 게 보였어요. 아이들이 베란다 유리창 앞에 있을 때 소파 쪽에서 먼지 피어오르는 것들처럼 눈에 띄는 디테일이 많았어요. 옥상에서 말리는 고추도 그렇고 아파트 한편에서 놀 때 상자에 들어 있는 주차 금지 표시 같은 거는 자료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료는 없었어요. 방금 말씀 주신 강력했던 것들이 기억에서 제 중심점들을 이루는 것 같아요. 저 어렸을 때는 아파트에 껌딱지 같은 거 되게 많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 디테일들이 기억의 전부인 것 같아서 그런 거를 연결시키고 그다음에 스토리를 넣었어요. 공간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 이야기가 있었어요. 


호원: 감독님한테는 강렬한 인상처럼 남았던 장면인데, 우리는 분명히 봤던 건데 잊었던 장면이고.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런 거는 안 보여주는데, 이 작품에서 딱 나오니까 '저거 나도 봤는데 나도 저 각도로 봤는데' 이렇게 계속 접합점을 찾으면서 봉인됐던 평범한 기억을 확 꺼내서 너무 좋았어요.


뒤에 있어서 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데, 굳이 움직이는 소품이 하나 있었어요. 형제가 창밖을 내다보는데 뒤에 날개 달린 자전거 소품이 위아래로 움직여요. 원래 집에 있었던 거예요?

네. 제 방에 있었는데 그걸 굳이 움직였던 이유는 그게 굳이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달아주셨던 것 같은데, 거기에 머리도 부딪히고 재밌던 장난감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게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인 것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사실 그거를 제가 넣었다는 게 방금 떠올랐어요.


호원: 한국에서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수입되어서 인기 있었던 아이템 중에 하나죠.


그것도 시대성이 있네요.


호원: 내가 사고 싶었는데 못 샀거든요. (웃음)


실제 자료를 두고 작업을 한 것보다 기억에 의존했던 게 디테일한 요소로 다가온다는 게 신기하네요. 어디 기록을 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때 여기에 뭐가 있었지 이러면서 떠오른 건가요?

네. 그게 약간 저한테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집 안 구조가 어떻게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호원: 추억에 의존하면은 공간이 되게 커 보여요. 그나마 사진을 갖고 와야지. ‘소파하는 사실은 이만했고 베란다 하고 소파를 건너서 TV까지는 이만큼밖에 안 나와’ 되는 건데.

커서 자기가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운동장 가보면 되게 조그매져 있다 이런 얘기는 많이 하는데, 제 집에는 적용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집을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 살았던 집에 자라서 다시 돌아갈 일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가 봐요. 만약에 제가 그 집을 가보면 되게 조그마할 텐데 그 경험 자체가 없어서 그거를 한 번 가본 것처럼 하다 보니까 더 작아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가보지 못한 영역이어서.


야호맨이라는 존재를 철거민인 느낌으로 연결시킨 건 시나리오 상의 개연성 때문인가요?

더 비극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기가 사는 집을 부수고 올라가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은 굉장히 슬프겠다. 나중에 야호를 외치고 싶다는 거는 출발부터 있었는데, 그 중간을 해결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호원: 많은 관객분들이 아파트에 왜 테니스 공이 박혀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고 얘기를 해줬어요. 그 장치를 박아놓고 마지막에 “야호” 하고 우르르 하는데, 진짜 울컥할 정도로 좋은 장면이었어요.

그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어요. 추억이 우수수수 떨어진다는.


호원: 야호 소리와 함께 테니스공이 깨어나는 것도 있지만 아파트가 깨어나는 것처럼, 내가 부르르 떨면서 나의 틈을 탁 열어주니까 그때 비로소 테니스 공이 우르르 하는 거예요. 테니스 공이 막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떨어지는데 엄마의 감정이 되게 궁금했어요.

만들 때 입장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돌아가보자라고 했는데, 저도 지금은 어른이 되어서 결국은 어른의 눈으로 보는 입장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어른들의 입장이다라는 거를 보여주기 위해서 엄마를 넣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의 시선에서 추억이 쏟아지는 건 어떨까. 



호원: 엄마가 표정은 없어. 근데 저 테니스공의 비를 부정하는 감정도 아닌 것 같고 이게 무슨 일이야 신기해하는 감정도 아닌 것 같고.


또 왜 엄마일까. 아빠가 중요한 조연으로 계속 나오다가

항상 아버지는 '하지 마 하지 마' 하는 존재고 저희 어머니는 공감의 대상이어서 들어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들한테도 작업을 보여드렸어요?

사실 야호 외친 게 저희 아버지거든요. 아버지는 제일 먼저 보셨고 저희 어머니는 나중에 보셨어요.


부모님들은 별말씀을 안 하시는군요.

별 감동도 없고 (웃음) 저는 되게 좋았는데. 그냥 걱정하시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거냐고.


일을 그만두셨어요?

거의 <바퀴 돈다> 끝나면서 일 그만뒀어요. 그래서 <비둘기>도 빨리 할 수 있었고요. 돈 떨어지면 프리랜서로 CG 쪽 일을 하고요. 그 중간중간에 애니메이션 하고 있어요.


호원: 한국 문화 담론에서 아파트라는 게 한 세대를 물갈이하면서 비로소 포커스가 맞춰지는 아이템이구나 싶었는데 그게 절묘하게 애니메이션들이랑도 탁탁 탁탁 맞아 돌아가더라고요.

저는 옛날 아파트에 대한 그 노스탤지어가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완벽하게 구분이 되는 것 같고요. 요즘 아파트는 현관에서부터 누르고 들어가는 게 약간 철컹철컹하는 것 같고 예전에는 문이 많았어도 다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다 들어갈 수 없는 문들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한국이고 그런 노스탤지어가 제가 그리는 아파트였던 것 같아요.


호원: 음악 너무 좋았어요.

저도 김해원 음악 감독님 하고는 처음 작업해 봤는데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감독:엄태화) 작업하신 분이에요.


아파트 연작이네요.

그러네요. 저는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크레디트 보고 그분한테 연락을 했어요. 저의 어린 시절 얘기부터 나름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서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 찾아가서 같이 밥 먹고 이런 거 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셨어요.


호원: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 영상 나오고 편집 들어가서 음악 작업 들어가 들어간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고 이런 거 만들고 싶고


반신욕 하면서 시나리오 쓴 다음에

네. (웃음)


호원: 그 노래의 음색이 작품이랑 잘 맞기도 하고 리듬이 마지막 테니스 공이 떨어지는 운율이랑 맞아서 이거는 음악이 있고 애니메이션을 넣거나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보고 음악을 딱 맞춰서 넣거나 둘 중에 하나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음악 감독님은 그냥 작업을 하신 건가요?

네, 음악 감독님이 너무 뛰어나신 거죠.


음악 감독님에게 제공했던 자료는 어떤 게 있었어요?

애니메틱을 보내드리고 애니메이션이 조금조금씩 나오고 있을 때 음악 스케치를 주셨어요. 음악이 들었는데 너무 좋았죠.


어떻게 해달라는 피드백 줄 것도 없이 주는 대로 다 좋았어요?

피드백은 그 안에서는 조금 있었어요. 엔딩곡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그거는 손댈 수 없이 좋았어요.


처음부터 이제 가사 있는 곡을 요청을 하셨어요?

네.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작사도 직접 작곡가님이 해주시고 가사도 너무 잘 붙고 좋았죠.


작업의 리듬


새로운 작업이 <달팽이>라고요

얼마 전에 숏폼 형식으로 공포물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어서 <달팽이> 살짝 멈추고 그거 1분짜리로 만들어볼까 하고 있어요.


어떤 느낌으로 나올까요? 

2D 흑백 애니메이션인데, 세로로 약간 기괴한 이야기. 징그러운 소리 많이 들어가는 느낌으로 해보고 싶어요.


소리는 사운드 라이버리에서?

저랑 계속 같이 작업을 해 주신 음향 감독님한테 가서 프러포즈를 한번 해보려고요.


1분이면 이야기가 되지는 못하겠는데요. 아니면 연결성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아저씨가 소름이 엄청 많이 돋는 아저씨예요.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자꾸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이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이 퇴근하고 나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거죠.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은 물속에 집이 있었던 거예요. 이런 식으로 끝나는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에피소드처럼 쭉 수 백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다면 언제쯤 런칭이 될 것 같아요?

써놓은 거는 10개 정도 있는데요. 어느 정도의 주기로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한 달 안에 한 개 이상 끝내는 걸 목표로 해보려고요.


호원: 애니메이팅이나 그런 거는 감독님이 하시는 거예요?

제가 아마 다 해야겠죠. 그래서 캐릭터가 복잡하지 않게 눈 코 입 그냥 점 같은 느낌으로 쭉쭉쭉쭉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SNS를 통해서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보고 싶은 건가요?

공포물이나 괴기스러운 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거를 오랜 시간 동안 하면 제 실력이 탄로 날 것 같아서 약간 실험 형식으로 저를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바퀴 돈다> 무겁고 힘들었으니까 <비둘기> 짧게 했다가 <메아리> 대작했으니까 좀 짧게 호흡 조절하는 것 같네요.


호원: 너무 멋진 케이스인 것 같아요. 이번엔 힘들었는데 이렇게 하면은 조금 가볍지 않을까 장르를 갖고 놀면서 찾아가는 게 더 오래 잘하는 사람일 수가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달팽이


그렇다면 <달팽이>는 또 무거운 대작인가요?

<달팽이>는 10분 이내 작업이에요. 배경까지 다 그려놨고 애니메이션도 거의 다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스토리보드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력을 살짝 잃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다시 시작하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시간을 두고 해야겠다 그래서 좀 천천히 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메아리>는 작업할 때 가장 인원이 많았을 때 몇 명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은 4명이서 했고요. 배경이 6명 정도 됐던 것 같아요.


<달팽이>도 그 정도까지 됐었어요?

<달팽이>는 일러스트레이션, 아트 디렉션 하는 친구랑 저 둘이서 한 거여서 애니메이션은 저 혼자 다 하고요. 배경은 그 친구가 조금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가 제가 스토리나 이런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뒤엎었어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빨리 달려간 건가요?

항상 좀 그런 식인 것 같아요. <바퀴 돈다> 때나 <메아리> 때는 적어도 같이 가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진행해 놓은 거는 뒤집어엎지 않고 나머지만 뒤집어엎었는데 저 혼자 하니까 제가 뿌린 똥을 제가 다 뒤집어쓰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어요.


호원: 작업하는 손이 빠르세요?

애니메이션은 엄청 느리고요. 채색이나 합성이나 그 외의 작업은 좀 빠른 편이에요.


호원: 애니메이션 전공부터 시작을 했다면 작업 과제에 치여가지고 작업한 거 버리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근데 저 바깥에서 일을 해본 사람들은 칼 같아요. 애니메이션만 한 사람들은 ‘내 살을 어떻게 잘라내’ 이런 게 있는데, 프로젝트를 다른 식으로 해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작업의 즉흥성이 나타나는 걸까요?

오히려 자꾸 뒤엎고 그러다 보니까 즉흥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하시는 분들은 쫙 뽑아낸 느낌으로 갈 수도 있는데, 저는 체를 한 번 더 치고 하다 보니까 너무 체 안에서 계속 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달팽이>는 어떤 얘기였어요?

형이 대출을 많이 받아서 집을 샀는데, 금리도 올라가고 그래서 자기 집에 어깨가 눌려서 죽으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가방에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사는 혼자 사는 남자이야기를 했어요. 이 사람이 이 가방을 처음 계약을 하고 계약한 집에서 천장을 봤는데 조명 안에 나방 같은 게 날아다니는 걸 보게 돼요. 이 사람이 직장에서도 잘리면서 결국 자기도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나방처럼 그렇게 갇혀서 사는 사람이구나 하는 엔딩으로 끝나요. 현대인들이 자기 집에 눌려서 터져 죽는 거를 담은 내용이에요.


뭐가 마음에 안 차서 작업을 멈추게 되었나요?

이게 지금 제가 가고 있는 방향이고요. 그전에는 더 비극으로 가기 위해서 이 남자가 차에 치이고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거를 짧은 시간 안에 다 소화하려고 하다 보니까 정신없고 생각할 시간도 없는 코미디처럼 돼버리더라고요. 너무 압축돼서 이게 뭔 맛이지 쓰기만 했는데 지금은 물 붓고 차근하게 소금 맛으로 간다라는 느낌이에요.


호원: 작품 분량은 늘어나는 거예요. 줄어드는 거예요.

분량은 비슷한데 사건을 줄이고 템포를 줄였어요.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나 다른 쪽도 해보고 싶으세요?

지금은 제 머릿속에서는 기어 자체가 애니메이션인 것 같아요. 실사 영화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저는 협업하는 거 되게 좋은 것 같아요.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는 같이 작업하는 거 좋아해요. 기회만 된다면 애니메이션도 많은 분들이랑 같이 작업하고 싶어요.


지금은 단편과 더 가벼운 작업들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앞으로 혹시 더 긴 작업도 할 생각인가요?

장편은 제 역량이 안 되는 것 같고요. 중편은 해보고 싶어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에 중편까지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만드는 거를 어떤 분들이 보고 어떻게 좋아하시고 이런 데 혜안은 없어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거, 제가 하고 싶은 거 안에서만 다 쏟아내는 게 목표여서 중편 정도는 제가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 2024년 9월 19일 @ 서소문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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