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Studio Yona
6월의 마지막 날, 온라인으로 스튜디오 요나의 박재범, 이윤지 감독을 만났다. 요나는 전라남도 나주와 부산광역시에서 동시에 두 개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박재범 감독은 주로 부산에서 지내지만 이날은 두 사람이 함께 나주에 있었다. 2021년 11월 서울엔애니메이터 인터뷰 당시 제작 중이던 장편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2023년 1월에 개봉했고, 기획 중이던 중편 <짱뚱이네 똥황토>(2024)도 완성했다. 그전에 이윤지 감독이 단독 연출한 단편 <별을 담은 소년>(2022)도 공개했다. 게다가 한창 진행 중인 세 가지 프로젝트도 있다.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2021)을 벗어난 지혜의 행보들, 아기자기하고 단단한 콩들의 모험 <안녕! 지구특콩대>, 순천만 갯벌에 사는 농게 <살아있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스튜디오 요나는 작품 양식과 제작 방식에서 변화를 향한 흥미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2024년 7월 인터뷰
울다가 웃다가
나주와 부산
지금 집은 부산이신 거예요?
재범: 지금은 작업 때문에 잠깐 나주 장모님 댁에서 기거하고 있고 보통은 부산에 있어요. 나주에는 광주에 계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따로 공간을 구했어요.
나주에서 하는 작업과 부산에서 하는 작업이 어떤 게 있나요?
재범: 나주가 공간이 더 넓어서 캐릭터랑 세트 제작을 하고 기획이나 일부 촬영이나 나머지 후반 작업을 부산에서 진행을 했어요. 근데 저희가 지금은 공간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제작 규모로 계속 기획을 하고 있어요. 예전 <엄마의 땅> 할 때처럼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으로 한정해서 하고 있어요.
스튜디오가 양쪽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인가요?
재범: 그런 것도 있고 큰 공간에 모든 인원이 다 모여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제작비나 인력 이런 것들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짱뚱이네 똥황토> 작업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신 건가요?
재범: 네. 완전 딱 나눠서 작업을 했어요. 부산 같은 경우는 공간이 20평 정도 돼요. 그 안에서 촬영할 수 있는 규모로 나머지는 그린 스크린을 놓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제작 요건이었어요.
부산 공간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랑 상관이 없나요?
재범: KAFA랑 전혀 상관없어요. <엄마의 땅> 촬영을 끝냈는데, 거기도 교육 과정이 남아있고 저희가 그 공간을 더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후반 작업도 할 겸 부산에서 공간을 구했어요. 그때부터 기업 입주 형태로 들어가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2개나 운영을 하고 정신이 없으실 것 같아요.
재범: 두 개 운영한다니까 되게 큰 것 같지만 그렇게 큰 규모의 일을 할 수는 없어요. 지금은 작업자분들 맞춤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프로젝트 별로 모이시는 건가요?
재범: 그렇죠. 지금 3년 4년 같이 일하신 분들도 있는데, 작업 프로젝트마다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어요. 정규직 아니면 계약직 형태로도 한 2~3년 해봤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특성상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게 하고 싶습니다.
프로젝트가 여러 군데서 돌아가고 시기들이 맞아야될 텐데, 그게 어려운 거죠.
재범: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제작 예산 자체가 애초에 크지 않아요. 계속해서 규모 있는 제안들도 생기고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는 인원들도 조금 있는데,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교육을 해가면서 해야 되다 보니까 고민이 많습니다.
호원: 지금 요나 정규 스텝은 몇 명이예요?
재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한정으로는 8명이에요.
차기작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요?
재범: 콘진에서 지원 사업받은 국산애니메이션제작 초기 본편 작업이랑 애니메이션 부트캠프 작업 그리고 남도메이션이라고 순천 남도 영화제에서 지원을 받아서 순천 관련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초기 본편 같은 경우에는 아직 공개된 적은 없는데, 저희가 짧게 만들었던 <안녕! 지구특콩대>(2022)라고 예전에 콩들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었어요. 아이들 볼 수 있는 시리즈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콩이요. 완두콩이랑 강남콩 같은?
재범: 맞아요. 한 3살 4살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콩 다섯이 한 콩깍지에 살면서 자연에서 식물, 동물 친구들을 알게 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창비에서 <엄마의 땅>을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건전지 아빠>(2021, 감독: 전승배)처럼 동화책의 형태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고 같이 기획을 하고 있어요. 콩들이 다 생긴 게 다르고 특색이 다르거든요. 각자에 대한 이야기랑 콩들이 한 팀이 돼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어요.
건강 트렌드에 잘 맞으니 풀무원 같은 데랑 라이선싱 사업 하면 되겠는데요.
재범: 실제로 이 이야기가 윤지 감독님이 지구의 날 풀무원 29초 영화제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상을 받은 거예요. 거기에 멈춰 있었는데 창비에서 그 작업이 재미있다고 하셔서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호원: 아이들이 식탁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빌런이죠.
재범: 그렇죠.
강낭콩은 진짜 빌런처럼 나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재범: 콩들이 각자 사연이 있어서 모이게 되거든요. 검은콩은 반찬으로써 막 버려지는 걸 보고 도저히 여기서는 못 있겠다 하고 뛰쳐나온다거나…
병아리콩은 해외에서 온 다문화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
재범: 그런 느낌의 스토리도 있어요.
부트캠프 작업은 뭔가요?
재범: 유튜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접할 수 있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지만 차별화된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어요. 요새 트렌드도 그렇고 사람들이 극장보다는 모바일로 많이 넘어가잖아요. 저희도 모바일이나 집에서 보는 환경이 고려돼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빨리 만들 수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나 고민을 빨리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 형식을 생각했던 게 예전에 만들었던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이에요. 그 프로젝트를 시리즈로 확장을 시켜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지혜가 취직도 하고 직장에서 갑질도 당하고…
호원: 지혜는 방 밖을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재범: 그래서 제목을 바꿔야 되나 고민하고 있어요. 방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부터 시작을 할 것 같아요.
지혜의 사무실 생활이라든지 공간을 괄호 안에 넣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재범: 그런 형식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남도메이션도 간략하게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재범: 남도메이션은 순천만이 배경이 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어요. 작업 자유도가 높은 편이어서 재밌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갯벌이 갖고 있는 의미도 크더라고요. 제가 제일 먼저 봤던 생물이 다리 한쪽이 큰 농게였어요. 우리가 순천만 하면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풀숲에서 엄청 많은 소리들이 들렸어요. 새소리도 들리고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왠지 그 안에서 치열한 사투 같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게가 주인공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트워크가 완료되어서 7월부터 바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호원: 갯벌 세트는 어떻게 하시나요?
재범: 이번에 갯벌과 캐릭터 자체를 스펀지로 만들어보려고 해요. 스펀지가 약간 물컹한 느낌도 있고 다양한 형태로 조형하기도 좋아요. 갯벌이 가보면 숨쉬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제가 테스트를 해보니까 스펀지가 느낌이 괜찮더라고요. 처음에는 갯벌이 흙이니까 단순하게 클레이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했는데, 저희가 생각했던 물성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또 갯벌=클레이 하면 너무 1차원적인 느낌이 들어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 재료들이 뭘까 고민을 했어요. 소품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갯벌 안에서 작은 애들이 고군분투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갯벌가서 로케이션 연구도 하셨나요?
재범: 순천만 프로젝트가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더라구요. 직접 가서 보고 느낀 것을 많이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여건이 안 돼서 다큐멘터리와 아이들 대상으로 한 갯벌 관련된 책들을 많이 찾아 봤어요.
몇 분짜리 정도로 생각하세요?
재범: 8분 정도 나올 것 같아요.
호원: 감독님이 8분이라고 하면은 스태프들은 15분 이상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재범: 안 돼요. 늘어나면 안 돼요.
처음 5분에서 이미 53%가 늘어났는데
재범: 저희가 더 늘어나면 안 되는 상황이라 8분 정도로 마무리 짓지 않을까 해요.
8분만 하기에는 아까운 기획 같아요.
호원: 에피소드 1이 8분인 거죠.
시리즈 론칭을 위한 파일럿일지도 모르죠.
재범: 그런 요소들도 있기는 한데, 지금은 딱 요 에피소드에 집중하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요.
엄청 작은 애들이 있는 공간이니까 광활하게 보여야 될 것 같은데, 스톱모션으로 어떻게 구현하실지 궁금하네요.
재범: 저도 궁금해요. 그동안은 영화적인 연출을 많이 해왔는데, 그 표현들을 계속하다 보니까 뭔가 벽에 부딪히는 느낌도 들고 스태프들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기존에 해왔던 것들에서 벗어나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안 해본 표현들을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안개 속의 고슴도치>(1975, 감독: 유리 놀슈테인)를 레퍼런스로 잡았어요. <안개 속의 고슴도치>는 지금 봐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잘 만들었더라고요. 좀 투박하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호원: 스태프들이 바뀌면서 버린 혹은 미뤄두는 작업은 어떤 거예요?
재범: 축구팀 구성할 때도 감독이 원하는 전술을 할 때가 있고 축구 선수들 성향에 따라 다른 것도 있는데, 저는 좀 반반이에요. 저희가 지금 갖고 있는 8명이 최대한 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엄마의 땅> 할 때처럼 장엄한 표현이나 시네마틱 한 연출이 버리는 쪽에 속하는 것 같고요. 좀 더 트렌디하고 디자인적인 표현들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윤지와 별을 담은 소년
<별을 담은 소년>은 KAFA 1년 과정의 작품이죠?
윤지: 네, KAFA 졸업 작품으로 1년 동안 만들었어요.
기획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윤지: 제가 <스네일 맨> 할 때부터 주말마다 아카데미에 가서 도와주고 거의 합숙생활 하듯이 함께 했거든요. <엄마의 땅>을 회사 그만두고 완전히 붙어서 같이 하다가 그거 끝날 때쯤에 아카데미 입시가 있었어요. (박재범) 감독님이 지원을 꼭 하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거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기로 정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어요. 제가 옛날부터 조선시대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잠이 들려고 하기 전에 문득 ‘별이 된 소년’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올랐어요. 하늘 위를 별처럼 날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때부터 이야기가 술술 적히더라고요. 뭔가 제 내면에 있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한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글을 썼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해님 달님’ 이야기가 나온 건가 했어요.
윤지: 너무 슬픈 제목인 것 같기도 해서 제목은 추후에 바꿨어요.
기획할 때부터 스톱모션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윤지: 스톱모션을 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미술 감독이다 보니까 어떤 장면이 떠올랐을 때 그걸 어떤 식으로 제작할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게 17분 39초거든요. 아카데미의 당시 기준 같은 거예요?
윤지: 기준은 5분 이상일 겁니다. 저도 원래 그렇게 긴 걸 하고자 한 건 아니었는데 닮아가나 봐요. 해야 되는 거는 그냥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기획할 때부터 이 정도 분량이었나요 아니면 작업을 진행하다가 보니까 늘어난 건가요?
윤지: 처음에 기획했을 때는 11분 정도 됐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스토리보드 그릴 때 분량을 거의 맞추거든요. 그렸는데 이 중에서 줄이자면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내가 완성을 못할까 봐 분량을 줄이는 건 안 하고 싶어서 최대한으로 한번 해보자 그래서 했죠.
오랫동안 같이 작업했던 스태프를 믿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윤지: 그렇죠. 저희가 그때가 <엄마의 땅>이 막바지쯤이어서 다들 작업에 대한 물이 제대로 오른 상태였거든요. 정말 어벤저스처럼 막 티키타카 잘 맞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년 안에 17분짜리를 완성하는 게 다들 미친 짓이라고 하긴 했는데,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아카데미의 시설을 이용해서 작업을 다 하셨어요? 아니면 나주에 왔다 갔다 하면서 했나요?
캐릭터 작업은 나주에서도 같이 진행을 해 주셨고 장비들은 다 아카데미에 있는 것들로 해결을 했어요.
호원: 이 작품 보면은 스태프들이 물이 올랐다는 게 느껴지는 게 포커스가 날아갔는데 뒤에 폭포에 물이 계속 흘러가는 거예요.
윤지: 그 부분도 합성은 아닐 거고 포커스를 날린 상태로 애니메이팅을 계속한 거예요.
박재범 감독님이 아카데미에 입학을 강권을 하신 건 이윤지 감독님에게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 심복을 심은 건가요?
재범: 아니요. 제가 그렇게 계산적이지는 못하고요.(웃음) 전 윤지가 되게 가능성이 있는 친구로 보였어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연출적인 재능도 많아서 꼭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그때가 아니면은 못할 것 같았어요.
호원: 미술 감독으로서 역할을 하다가 감독이 됐을 때 미술감독 티가 나는 것들이 있었나요?
윤지: 일단 제작해야 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거. 글을 빨리 써야 되는데 ‘이거 다 어떻게 만들지’ 이런 부분부터 생각을 하는 게 있었어요.
재범: 감독이 되면 안 좋은 소리도 많이 해야 되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울던 때도 많았는데, 다 이겨내고 잘하더라고요. 저는 (이윤지 감독이) 되게 좋은 연출자라고 생각해요. 순천만 프로젝트도 그렇고 <안녕! 지구특콩대>도 그렇고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도 그렇고 다 윤지의 기획력이 다 들어가 있는 프로젝트거든요. 저는 너무 시리어스한 생각들만 하는 스타일이고 윤지 감독님은 되게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강점인 것 같아요.
이윤지 감독님의 공식적인 데뷔작은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인가요?
윤지: 네.
원래 학부 때는 어떤 걸 하셨나요?
윤지: 저는 3D 애니메이션 전공이었어요.
스톱 모션 스튜디오는 어떻게 가시게 된 거예요?
윤지: 특성화고에서 3D 애니메이션을 처음 배웠거든요. 3D를 좋아했다기보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길로 가고 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이렇게 꼼지락거리거나 기본적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었어요. 대학교 졸업 작품을 만들고 졸업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을 지점토로 크게 같이 전시를 해놨었거든요. 스톱모션 회사가 그때 광주에 처음 들어왔는데 거기 계신 감독님이 졸업 작품 전시회를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발을 들이게 됐죠.
대학 때까지 쭉 계속 광주에서 작업을 하셨어요?
윤지: 네, 전 다른 지역을 원래부터 가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회사 생활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고 그냥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제 걸 봐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어떤 곳인지 한번 가보기나 하자고 갔는데, 일반적인 느낌이 아닌 거예요. 되게 시커먼 곳에서 조명 틀어 놓고,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중앙애니메이션이 광주에 스톱모션 스튜디오를 하면서 지역 인재로 스카우트된 케이스군요.
윤지: 네, 거기에서 박재범 감독님을 입사 동기로 만났어요. 제가 스톱모션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거든요. 계속 이걸 하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을 했었는데, 박재범 감독님을 만나고 같이 <빅피쉬>(2017)를 하면서 난 이걸 계속해야 되겠다 딱 정했던 것 같아요.
그전에 스톱모션 작업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윤지: 거기서 다 배웠어요. 애니메이팅 자체도 재밌어하는 편이어서 애니메이터로 시작했는데, 스톱모션이라는 거 자체가 다른 회사들처럼 한 가지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을 병행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만드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쪽에 일손이 부족하면 도와주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빅피쉬> 할 때는 제작도 많이 하고 그렇게 병행하게 됐어요.
어떤 면에서 스톱모션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지: 뭔가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걸 제작할 때 스토리도 그렇고 저희가 마음이 되게 힘들었었는데, 그걸 제작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컸어요. 항상 일 끝나고 밤을 새우고 작업을 하는데도 이걸 제작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이래서 애니메이션을 하는구나. (박재범) 감독님이 왜 스톱모션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지 동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구체적으로 애니메이팅이나 연출을 해야겠다 보다 그냥 이 일을 계속해야 되겠다. 어떤 식으로라도 도와줘야 되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스톱모션 커플의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은 중앙애니메이션 나오고 제작한 거죠.
윤지: 네. 저는 <스네일맨> 할 때도 회사에서 남아서 작업을 했었고 <엄마의 땅>부터는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 했습니다.
재범: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 할 때가 <엄마의 땅> 하다가 중간에 제작이 멈춘 때가 있었어요.
윤지: 코로나가 터졌을 때여서.
호원: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 전에 혹시 따로 생각했던 프로젝트는 있었나요?
윤지: 작업을 하면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박재범 감독님이 새 작품을 들어갈 때도 항상 같이 얘기를 하기 때문에 제가 따로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이윤지 감독님의지 구의 날 풀무원 프로젝트는 언제쯤이에요?
재범: <엄마의 땅> 작업을 하다가 아카데미를 나온 전과 후로 많이 크게 나뉘어요. 나오자마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뭘 해 먹고살아야 되나 갑자기 다른 데 툭 던져진 기분이었는데, 그때 또 윤지 감독님이 그냥 뭐라도 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으로 콩들이 나오는 작업을 기획을 했어요. 제가 거기에 ‘지구특콩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후다다닥 만들었어요. 재밌게 작업한 거는 늘 좋은 결과들을 가지고 오더라고요. 그때 또다시 한번 느꼈죠. 윤지가 이런 기획을 잘하는구나.
<짱뚱이네 똥황토> 제작 시기가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과 겹쳐져 있지 않을까 싶어요.
네, 맞아요.
생활과 작업을 어떻게 조정했나요?
윤지: 배 나오기 전에 좀 열심히 하고 배 나온 채로 애니메이팅 한 거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재범: 지금 돌이켜 보면 저희가 결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그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땅> 다 끝나고 뭐 하고 마무리되는 시기였거든요.
윤지: 결혼 전날에도 회사를 나갔어요.
호원: 스튜디오 요나가 무서운 곳이군요.
재범: 저희 야근도 없고 그런 강압적인 것도 없는데 일정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냥 우리가 결혼을 하면 이때 하는 게 제일 좋겠다. 만약에 아이가 생겨도 이때 생기면 좋지 않을까 그런 얘기들을 했는데, 그게 말한 대로 다 이루어질 줄은 몰랐어요.
아이가 나오고 난 다음에는 혼란스러운 일은 없었나요?
재범: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가 진짜 혼란스러웠죠. 모든 스케줄이나 삶이 다 아이한테 맞춰질 수밖에 없다 보니까 저희가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바뀌고 윤지는 아예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니까 저는 오른팔이 잘린 것 같은 상황이 되는 거죠. 뭔가를 제작할 때 어려움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어요.
이윤지 감독님은 작업에서 강제로 떨어지게 됐는데, 작업을 하고 싶었나요, 이 참에 쉬고 싶었나요?
윤지: 저는 출산하기 전부터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스케줄을 짜라” 몇 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시켰던 것 같아요. 거의 회사에 있었던 게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저는 아이한테 몰두를 했는데, (박재범) 감독님이 서운하셨을 수도 있어요. 작업 얘기를 많이 저한테 와서 하는데 제가 잘 안 들어주고 그랬거든요. (웃음) “아 나 없다고 생각하라니까요” 이런 느낌.
육아도 진짜 만만치 않게 큰 일인데
재범: 육아를 되게 즐긴다 해야 되나 뭔가 행복해해서 도저히 방해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육아를 안 하는 건 아닙니다.
윤지: 저는 제가 필드에서 나와서 작업을 하지 않고 육아만 하는 게 한 1년은 갈 줄 알았거든요.
재범: 급한 일들이 많고 윤지 감독이 없을 때 도저히 극복이 안 되는 부분도 많아서 지금은 또
윤지: 복귀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호원: 확실히 아이랑 같이 있고 키우다 보면은 또래 엄마들, 부모들도 만나고 길게 보면 작품할 때 좋은 경험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재범: 맞아요.
호원: 무엇보다도 육아 특훈을 거치고 나면은 ‘애니메이션이 생각보다 쉬웠네’ (웃음) 되게 강해지는 것 같아요.
윤지: 제가 지금 그래요.
스튜디오 요나의 선하고 슬픈 세계
호원: 이윤지 감독님은 스톱모션 배경으로 조선 시대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평소 그 시대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셨던 거예요?
윤지: 대학교 때 조선시대 배경으로 글을 써놨어요. 제가 사극도 좋아하는 편이고 정치라든가 이런 데 관심이 많았어요. 언젠가 이걸 꼭 만들 거야라고 했는데 스토리는 완전 다르지만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호원: 작년에 작은 지역 도서관 상영회에 참여하신 분들이랑 <별을 담은 소년>의 가족은 반역자 집안이어서 마을에서 벗어나서 산속에 사는데, 마을 사람들도 관아에 밀고 안 하고 심정적으로 지지를 한다는 스토리가 아닐까 추리를 했거든요.
윤지: 그런 것까지 생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저희도 얘기를 했었던 부분이기도 해요.
재범: 약간 동학농민운동 시대…
요나의 작품을 보면 악랄한 캐릭터가 안 나오잖아요. <별을 담은 소년>에서는 도련님하고 졸개들이 악당이긴 한데, 그렇게 밉지도 않고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아요. 요나의 철학인가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윤지: 완벽한 악당이라는 거는 실은 없는 것 같거든요. 다들 뭔가 이유가 있는데, 이야기 상에서 악당은 필요하잖아요. 근데 다들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사실인 것 같긴 하거든요. 그냥 진짜 완벽하게 악해서 악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호원: 그 지점 때문에 요나 작품이 어떨 때는 되게 슬프기도 해요. 비극인데 이거를 누구를 타깃으로 삼아서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지점이 없으니까
슬픔을 해소할 수 없어.
호원: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진짜 운명적인 슬픔 같은 게 있는 거잖아요. <짱둥이> 보면서도 몸이 아픈 동생도 나오고 강아지도 나오니까 분명히 슬플 거야. 조마조마하다가 여기서 울리나 하고 있었는데 보다 보면 분명히 누구 탓은 아닌 거죠.
재범: 그 지점이 맞는 것 같아요.
윤지: 그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좀 달라질지 모르겠네요.
재범: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지구특콩대> 같은 경우에는 아기가 생기니까 하게 된 거 거든요. 나중에 딸이 컸을 때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뭘까 고민했었는데, 거기에서도 여러 일들은 생기지만 하나의 빌런이 나오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짱뚱이네 똥황토 (2024) 제작 노트 편은 8월 15일 게시 예정입니다.
Google Meet 인터뷰 2024년 6월 30일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