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_Architect A
건축가 A
중편 애니메이션 <건축가 A>는 2013년 일러스트레이션과 애니메이션 창작집단으로 시작한 VCRWORKS가 10여 년 만에 선보인 오리지널 IP 파일럿이다. 광고와 뮤직비디오, 단편 작업으로 역량을 다져오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로 확장한 스튜디오의 전환점이 될 작품이다. 2022년 9월 서울인디애니페스트 개막작으로 공개된 작품은 그해 12월 애니메이션어워드에서 아트웍상을 받았다. 아이디어를 내고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이종훈 감독과 2017년 무렵 프리랜서로 VCRWORKS과 인연을 맺은 이후 한 배에 오른 이혜성 아트디렉터, 묵직한 기계의 역동적인 액션을 연출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자연을 표현하게 된 박인목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를 만났다.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종훈: <건축가 A>는 저희 스튜디오에 오리지널 IP 시리즈 애니메이션 기획을 해서 파일럿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건축가는 건축을 의뢰하러 찾아온 의뢰인의 삶의 기억 속에서 재료들을 채집하면서 그 의뢰인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의뢰인을 닮은 집을 지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위로와 성장을 하게 되는 힐링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시리즈 기획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으로서 열심히 이야기와 연출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했다는 건 각본을 쓰셨다는 말씀이시죠.
종훈: 네네, 맞습니다.
혜성: <건축가 A>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은 이혜성입니다.
아트디렉터로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혜성: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이야기의 방향성이나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레이아웃 잡아서 주시면 제가 구상을 하면서 살을 붙이고 컬러를 더 하면서 감독님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인목: 저는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역할 맡은 박인목입니다. 감독님 도와서 작업자분들 작업 관리와 피드백 드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종훈: 다들 겸손하게 말씀하셔서 제가 좀 덧붙이면 혜성 감독님은 제 머릿속에만 있는 단어의 조합인 <건축가 A>의 판타지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 주시는 역할을 해주셨고요. 박인목 감독님께서는 저희 작품의 애니메이션, 움직이는 톤 자체를 전체적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캐릭터들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셨어요. 그런 큰 역할을 하신 두 분입니다.
언제부터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셨나요?
종훈: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친구들 시트콤 얘기도 있었고 건축가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VCR에서 오리지널 IP를 만들어보고 저희 작업 세계관도 확장해보고 싶어서 팀에 제안을 했어요. 때마침 국가 지원 사업이 있었어요. 기획 회의를 하면서 "이거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중단편 지원사업에 넣어보고 싶다" "되면 이거 한번 만들고 싶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초기 기획이 2019년도 겨울에 시작됐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 자체는 언제부터 갖고 계셨던 거예요.
종훈: 제가 주위가 산만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이런 걸 자주 관찰해요. ‘저 사람들은 다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렇게 다 다른 모습, 다른 걸음걸이에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집도 그 사람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건축가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한 게 2019년도였던 것 같아요.
혜성 감독님은 언제부터 같이 하셨어요?
혜성: VCRWORKS에서 JTBC 캠페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던 쯤에 감독님이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시면서 “재밌는 거 하자” 해서 “재밌는 거 나도 할래요”해서 시작했어요. 그전부터 감독님이 어떤 거 하고 계시는지 근황을 보고는 있었는데, SNS에 <건축가 A>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와서 그거 일 거라고 짐작만 했어요. 2021년 여름 되기 직전이었어요. 더워지기 전. 맡았던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날 출근해서 <건축가 A>의 스토리 라인을 들었어요. 그때쯤 시작됐던 것 같아요.
인목 감독님께서는 언제부터 <건축가 A> 프로젝트에 합류하셨어요?
인목: 저도 거의 2년 전쯤부터 했던 것 같거든요. 한참 코로나 때문에 재택하고 있을 때 시작했어요.
<건축가 A> 하기 전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셨나요?
인목: VCRWORKS의 프로젝트 작업하고 있었어요.
합류하셨을 때에는 어떤 자료들이 있었나요.
인목: 캐릭터 시트 약간. 캐릭터 스터디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스토리보드는 다 나와 있었나요. 아니면 아트웍이랑 캐릭터 정도만 있었나요?
인목: 시놉시스랑 캐릭터 디자인 정도.
움직임의 방향성을 정해주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어떻게 연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인목: 처음부터 막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에요. 초반에 감이 안 와서 좀 힘들었어요. 작업 기간이 좀 길어지다 보니까 작업하면서 계속 바뀌었던 것 같아요.
캐릭터 시트를 받았을 때부터 캐릭터는 픽스된 상태였어요?
인목: 크게는 차이가 없지만, 조금씩 바뀌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주인공 캐릭터부터 시작하셨어요?
인목: 네, 주인공 A 캐릭터부터 했습니다.
캐릭터 움직임을 잡을 때 어떤 것부터 해보시나요?
인목: 걷는 것부터 먼저 해봤어요. 스터디 같은 느낌으로.
아트 디렉팅은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혜성: 인목 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게 어떻게 나올지 아직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초반에는 스터디처럼 했어요. 감독님이 평소에 작업하시던 것들을 보면서 감독님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수집했어요. 또 저한테 맡겨주신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그리는 방식이라든가 색깔 이런 것들을 조금씩 넣어봤죠. 거기서 감독님이 너무 불필요한 선들과 장치들이 많다 이런 부분들은 조금씩 잡아주시고 이 부분은 너무 좋은데 좀 살려보자 하면서 방향을 같이 잡아나갔어요.
불필요한 선들과 장치들이 많다.
혜성: 저희끼리는 바보 선이라고 부르는데, 저희는 선을 단단하게 그리는 형식이 아니고 낙서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구성에 집중했어요. 너무 디테일해지거나 너무 형태를 갖추거나 하는 느낌이 들 때 그것들을 조금씩 빼는 과정을 감독님이랑 많이 거쳤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 식물들은 존재감이 거대하다. 동물들은 아기자기합니다.
혜성: 감독님이 식물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저희 회사에 진짜 식물이 정말 많고, 거기 물 주고 햇빛 주고 사랑 주는 분은 감독님 한 분 밖에 없거든요. 감독님이 평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보고 영향을 많이 받으세요. <건축가 A>는 감독님의 욕망을 다 담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예쁜 꽃이나 귀여운 동물, 저희가 봤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요소들을 많이, 크게 그리게 되었어요.
식물도 동물도 많고 물과 바람도 계속 등장합니다. 애니메이션 분량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인목: 식물 흔들리는 게 많긴 했어요. 거의 모든 컷에 움직이는 요소가 들어갔던 같아요. 잔잔하지만 항상 움직이고 있었어요.
종훈: 해놓고 못 쓴 것들만 해도 두 번째 편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거 생각하니까 죄송하네요.
채색까지 했는데 편집을 한 거예요. 아니면 애니메이션 단계에서 뺀 거예요?
종훈: 러프 애니가 끝났을 때. 움직임들까지 다 잡고 이야기를 바꾸면서 빠지게 되었어요. 가슴 아픈데…
다시 쓸 가망은 없는 건가요?
종훈: <건축가 A>를 보면 행복한 아이디어나 재미있는 것들이 와장창 모여 있어요. 작품 끝나고 감정이나 인물의 성장에 포인트를 맞춰서 특정 부분만 임팩트 있게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진짜 행복 전시처럼 쭉 나열을 했던 것 같아요. 이걸 완성하기 위해서 빼고 다듬다 보니까 두 분의 영혼이 담긴 작업들이 많이 빠졌죠. 반대로 많은 아이디어들을 내어놓았으니까 다른 에피소드 아이데이션을 할 때 여기서 빼다 쓰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배경이 바다 마을이잖아요. <별이 빛나는 밤에>(2017) 마을 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요. 반면에 뭉툭했던 선이 굉장히 가늘어졌어요.
종훈: 얇은 선으로 귀엽고 단순했으면 좋겠다. 멈춰 있는 모든 장면들이 일러스트 아트웍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혜성 감독님과 공유했어요. 오브젝트 형태를 단순화 한 만큼 공간의 색 조합에 신경 쓰면서 논의를 많이 했어요.
현실 세계에서 바다와 산이 늘 영감을 줘요. 강원도나 남해 이런 데 좋아해요. 한적한 마을 생각하면 그런 공간이 떠오르더라고요. 주인공이 사는 집도 호수 앞에 있고 왔다 갔다 하는 마을도 바다 인근이에요. 작품에서 크게 발달된 도시는 없지만 읍내 같은 느낌은 등장해요. 뭔가 한적한 풍경을 생각하면서 잡았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편안하게 감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나요.
종훈: 그것도 있고 주인공 할머니가 여행을 좋아하시다 보니까 자연경관 위주로 다녔다는 설정을 했어요.
앞으로는 상반되는 배경도 나올까요?
의뢰인들은 크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고 잡아놨어요. 관계나 시스템 안에서 마음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는 자기를 발견하는 분들이 찾아와서 집 의뢰하는 거죠. 의뢰인들의 전사를 써 내려가는데, 어떤 편은 도시 생활에 되게 지쳐 있는 분이 나오기도 하고요. 일단 글로는 썼는데 어떻게 그릴지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혜성 감독님은 키 배경 이미지를 잡을 때 어떻게 접근하나요?
혜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명확하게 형태가 드러나지 않게 그리는 거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중편이라 아트 팀이 충원되는 상황에 팀원들한테 어떻게 그려야 될지 설명해야 됐거든요. 그때 제가 “찰흙을 한번 움켜쥐었다가 편 형태로 그려주세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다들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그리고 되게 잘 그리세요. 그림에 그 사랑에 담기는데, 저희는 그 사랑을 살짝 죽여달라고 했죠. 완벽하지 않은 형태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무작위적인 이미지가 훨씬 어려운 주문인 것 같은데 반응은 어땠나요?
혜성: "너무 잘 그렸다" "다시 하자" 반복하는 거죠. 힘을 좀 더 빼고 아니면 왼손으로 그려볼까 아니면 발로 그려볼까. 그렇게 농담 식으로 계속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는 그렇게까지 랜덤 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인목: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게 캐릭터 형태가 계속 달라지는 거였어요. 그 형태에 맞추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작업자분들도 많고 작업자분들마다 캐릭터 그리는 것도 조금씩 다르고 러닝 타임도 길어지다 보니까 저조차도 예전에 그리던 캐릭터 하고 지금 그리는 캐릭터가 달라져서 힘들더라고요.
러닝 타임이 점점 늘어났나요?
종훈: 과정 중에 애니메틱스가 50분짜리도 있었어요.
50분? 그럼 버렸다는 러프 애니메이션이 20분이 넘겠네요.
종훈: 그게 참. 초기에는 25분 하자 하다가 욕심 과다가 돼서 50분까지 살을 찌웠다가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동료들과 협의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5분이 되었어요. 인목 님이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작품 보시면 모든 컷의 건축가 모양이 다르거든요. 아까 혜성 감독님이 손으로 쥐었다가 펼친 것처럼 그린다 말씀하셨듯이 이 작품은 다 캐릭터가 똑같이 생기지 않아도 이런 형태와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 이 사람이야 하는 게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원래 귀염뽀짝 하고 살짝 일그러져 있으니까 약간 바보 같은 그림이니까 이런 거를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실 제작에 들어갈 때는 남은 시간이 많이 없어서 모두가 편하게 그릴 수 있게끔 해야지 이런 생각도 있었고요.
캐릭터 시트는 참고만 할 뿐 느낌으로 간다 였나요.
혜성: 저희 팀 중에서 저랑 감독님은 <건축가 A> 캐릭터들을 못 그리고요 가장 잘 그리는 게 인목 님이었어요. 그래서 인목 님이 그려주시면 저는 배경을 채우는 식으로.
종훈: 인목 님이 나중에는 작업자들끼리의 형태를 맞추는 게 어렵다 보니까 진짜 모난 것들만 조정을 하셨어요. 기본적인 애니메이션을 잡는 기조는 캐릭터의 감정 연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어차피 형태는 다 못 맞추니까 연기를 신경 쓰면서 감정을 전달하는 쪽으로. 감정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니까. 초반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후반 갈수록 저는 되게 잘 진행됐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디자인과 보조 캐릭터 디자인 크레디트가 따로 있는데, 종훈 감독님 혜성 감독님은 어떤 캐릭터를 디자인하셨어요?
종훈: 건축가랑 아내, 야호 제가 초기에 해놓았어요. 할머니 캐릭터도 혜정 감독님이랑 디벨롭을 한다든가 다른 엑스트라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바보 같은 친구들, 집을 지어줄 때 동료들, 그런 친구들도 같이 디벨롭 했어요. 얼마나 더 귀엽고 바보 같게 해야 될지 회의 같지 않은 회의 하면서 (웃음)
캐릭터들이 정말 많아요. 몇 가지나 되는지
혜성: 안 세어 봤어요.
종훈: 캐릭터 시트는 할머니까지만 만들었어요.
많은 캐릭터들이 그냥 섬네일에만 있기도 할 것 같아요.
종훈: 맞아요.
전통적인 프로덕션에서는 캐릭터 애니메이팅 작업 전에 레이아웃이 넘어오잖아요. 인목 님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작업을 나누셨나요?
인목: 기본적인 섬네일 레이아웃이 나오면 그 상태로 작업을 드릴 때도 많고요. 제가 애니매틱스처럼 살짝 형태만 잡아서 원화만 잡아서 드릴 때도 많았어요.
원화는 TV페인트 프레임으로 넘겨주는 건가요.
인목: 네
특별히 어떤 캐릭터나 동물을 잘하는 애니메이터가 있었나요?
인목: 동물 움직임을 진짜 귀엽게 잘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할머니 감정 신을 되게 잘하시는 분도 계세요. 잘하시는 분한테 드렸던 것 같아요. 동물 잘하시는 분은 그것만 드리고.
종훈: 되게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캐릭터 만들어놨는데, 옆모습 뒷모습 이런 거는 안 만들어놓은 거죠. 그러니까 엑스트라도 거의.. 진짜 그때 그냥 벽 부수면서 나아갔어요. 과정이 매끄러운 순간이 많이 없었는데, 전체 제작 기간에서 기획하는 시간을 제가 너무 많이 써버려서 실제로 이거를 만들어낸 시간이 마지막 5개월 남짓에 모여 있었어요. 저도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방식대로 해보고 싶었죠. 썸네일 다 나열하고 비디오 보딩 해가지고 신마다 인목 님이랑 혜성 님 모셔놓고 연출 회의하고 싶었는데 진짜 어려웠죠.
실제로 어떻게 하셨어요.
종훈: 초반에 기획하면서는 슬쩍슬쩍 하다가 최종 연출 픽스 나고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못 쓴 것들도 많았죠.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런 과정에서 저희 애니메이팅의 방향성이 정해졌거든요. 이 느낌이 좋았으니까 이대로 총 17개 신 연출에 빠르게 들어갔어요. 애니메이션 디렉팅을 디테일하게 드리지는 못하고 감정 위주로 말씀드리면 인목님이 감정에 맞춰서 애니메이션 디렉팅을 거의 해 주셨어요.
혜성 님이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너무 많은 공간이 등장하는 거였어요. 예쁜 장면도 많이 넣었고 할머니가 여행가니까 계속 새로운 세계가 나오는데, 그거를 디테일하게 잡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하늘 섬은 어떻게' 이런 게 아니라 그냥 하늘섬, 바다, 숲, 큰 식물 농원, 그래서 질문도 많이 하시고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나요.
마무리를 2022년 5월쯤에 하셨나요.
종훈: 5월 말에 영진위 마감을 하고 작품의 디벨롭 최종 마감은 2022년 연말에 했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작품의 세계관을 정립하고 캐릭터와 애니메이팅 스타일을 정하니까 좌충우돌이 많았을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2~3년을 보낸 다음 프로덕션이 매끄럽게 굴러가고 있습니까?
종훈: 한 시즌 9편의 에피소드 트리트먼트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메인 아트웍 기획을 하고 있어요. 기획서를 만들고 투자유치라든가 실제 제작할 수 있는 페이퍼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예요. 이야기는 PD 님들이나 더 많은 분들과 논의하면서 전보다는 체계적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어요. 아트웍은 혜성 님 의견을 들어보면 좋겠네요.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훨씬 수월한가요?
혜성: 아까 신은 17개로 구성돼 있다고 했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캐릭터나 배경이나 분위기나 비도 오고 눈도 오고 가을이고 여름이고 너무 다양했어서 이걸 하는데 제가 힘을 다 쓴 느낌이었어요. 파일럿 영상을 통해서 제가 레벨업을 했다기보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 하는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야 또 즐겁게 새로운 걸 서로 찾아가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월하다기보다는 다시 해볼까 이런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혜성: 기획 단계에서 제일 팀에서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 스토리텔링인 것 같아요. 파일럿에서는 예쁘거나 힐링이 되거나 행복한 장면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회의를 할 때마다 의뢰인의 감정에 맞는 연출 이런 얘기가 많이 나와요. 저도 아트 디렉터로서의 역할이 단순히 감독님이 원하는 레이아웃대로 그린다기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더 신경 쓰는 단계인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을 신경을 쓴다는 건 이전과 다르게 접근한다는 뜻인가요?
종훈: 작품의 콘셉트는 힐링과 의뢰인들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 발전에 초점을 맞춰서 디벨롭될 것 같습니다. 파일럿에서는 뷔페처럼 음식을 많이 제공했다면 지금은 코스식으로 정해서 가려고 해요. 종합적으로 보면 힐링, 위로가 되는 애니메이션이 될 거예요.
애니메이션은 어떻습니까.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느낌 잡았고 옆모습 뒷모습도 만들었는데, 그것들은 활용할 수 있나요?
종훈: 저희가 아직 실 제작이 아니라 프리를 하고 있어서 메인에 들어가면 인목 님이 좋은 기틀을 마련해 주시고 디벨롭해주시지 않을까요.
애니메이션도 더 개발할 것이라는 뜻인가요?
종훈: 이게 시리즈로 간다면 더 많은 인원들이 매끄럽게 작업을 해야 하겠죠. 파일럿 프로젝트 하면서 스무 분 내외의 작업자분들이 함께해 주셨는데, 겪었던 고충들이 있잖아요. 인목 님이 말씀해 주셨던 형태에 대한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보완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 작업 과정에서 필요한 발전 정도.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팅의 방향성은 이대로 유지하고 싶고요.
행복의 요소 중에 하나라고 보이는데, 혼술하고 차 마시고 밥 먹고 파티하고 음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종훈: 초기 설정에는 할머니께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여행에서 요리도 많이 배웠는데, 할머니의 전사를 만들다 보니까 잃어버린 어머니가 해줬던 요리를 할머니가 자신의 가게 메인 요리로 내세우기도 하죠. 요리하시는 분이라는 콘셉트로 잡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많이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인간 삶에서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가 맛있는 것들을 다 같이 나눠서 먹을 때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있는 풍경이 행복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넣었어요. 그렇게 넣어놓으면 두 분이 되게 힘들죠.
여기 계신 두 분이요.
종훈: 네네. 저는 캐릭터 많이 나와서 왁자지껄 신나고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데, 혜성 감독님은 여기 얘네들 다 그려야되는데 색 어떻게 배치하지? 인목 감독님 얘네 다 움직여야 되는데 어떡하지? (웃음)
그렇습니다. 떼 신의 경우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에게 그 많은 캐릭터들을 움직이게 합니까?
인목: 보통 한 컷은 거의 한 분이 맡아서 하십니다.
집 다 짓고 모여서 파티하는 즐거운 신은 어떤 분이 작업을 하셨나요?
인목: 단체 샷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계셔요.
단체 샷 전문이 있군요.
종훈: 지금 여기에는 모시지 못했는데, 제가 인목 님한테 밀어버린 짐을 좀 덜어주시는 든든한 분이 계셔요. 그분이 아기자기한 것들을 되게 잘하세요. 저희는 잘한다고 믿고 있어서 많이 맡겼고 심지어 감정 연기를 되게 잘하세요, 곽인혜 님이 엄청난 역할을 해주셨죠.
하나하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아요. 공사 크루들 있잖아요. 지렁이 반장님도 계시고 두더지 삼총사도 있고.
혜성: 저 이거 있어요.
두더지인가요?
(이)지윤 PD 님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물어보신 다음에 만들어주셨어요.
자재 납품하는 구름사람도 있고 돌인간도 있고 눈사람도 있죠. 식물과 동물뿐만 아니라 무기물도 캐릭터로서 한몫하는데, 앞으로도 등장하나요?
종훈: 작품 끝날 때 회사원 복장한 파 청년이 나와요. 인간 종족 외에 자연물을 베이스로 하는 종족들을 많이 구성하고 있어요. 돌멩이라든지 구름이라든지 야채 마을의 파 청년이라든지. 자유롭게 열어놓고 생각하려고 해요. 동물은 의인화하지 않고 동물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공존하는.
야채 마을 파 청년은 파일럿 에피소드 끝 부분에 의뢰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다음은 파청년의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 했어요.
종훈: 실제로 그렇게 테스트 진행하면서 집의 형태를 고민하다가 9개 에피소드 중 8번째로 들어갔어요. 살짝 스포 하자면 파 청년은 특별한 집을 원하자면 사실 가장 특별한 건 청년 그들의 삶이라는 메시지인데, 앞선 에피소드에서는 의뢰인의 인생을 닮아야 하니까 일반적인 집의 형태가 아니라 독특해야 될 것 같고 뭔가 장치들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강박도 있었어요. 파 청년의 집은 오히려 전형적인 집의 형태를 담아보자는 아이데이션들이 나왔어요. 작품의 메시지나 무게감을 생각했을 때 시즌 후반부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죠.
<건축가 A>가 이제까지 했던 작업들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혜성: 좋았던 점은 감독님 성격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신 편이라서 마감에 대한 공포를 마비시킨다고 해야 되나요. 저희 회사에서는 맨날 이런 얘기를 해요. 감독님은 진짜 <원피스> 루피처럼 동료들을 모아서 모두가 다 같이 해내자라는 분위기를 잘 만드세요. 저희가 작업을 할 때 생일자 있으면 갑자기 혼자 케이크 사 오셔서 챙겨주시고 누가 아프다 그러면 챙겨주시고. 감독님이 저희한테 신경 써주시는 게 느껴져서 저희도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도 같이 생겨버리는 거죠. 작업을 하는 동료로서도 감독님을 믿고 갈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려웠던 점은 키 배경을 만드는 의미가 지 크게 있지 않았던 거.
모든 게 키다.
혜성: 저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많이 넣다 보니까 어느 순간 키 배경이라는 의미가 없어졌죠.
매 컷이 바뀌기 때문에. 매일매일 바뀌는 장면들이 나오고 전체 컷이 많은데 컬러나 느낌이 중복되는 걸 제가 또 피하고 싶다 보니까 계속 새로운 걸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어요.
인목 감독님은 어때요.
인목: 감독님이 워낙에 편하게 너무 잘해주셔서 저도 딱히 힘들었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거든요. 정말.
25분이 날아가더라도?
인목: 전 괜찮습니다. (웃음) 행복하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 액팅이 지금 보면 아쉬운 게 많더라고요. 지금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피소드 9편을 기획을 하고 계시니까 얼마든지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훈: “이거 끝나고 시리즈로 다음에 또 만들까요” 했을 때 반응이 기억나는데.
어떤 반응이었어요?
종훈: "이걸 또요?’"이런… 저희가 프로젝트 다 끝내는 걸 기적처럼 생각했어요. 다 같이 한 방향만 보고 쭉 달려서 작품이 잘 마무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건축가 A> 팀원 분들, 같이 작업했던 동료 분들끼리도 많이 친해졌어요. 개인적으로도 많은 프로젝트들을 해왔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 내내 같이 고민하면서 즐거웠고 끝나고서 아쉬운 부분도 많겠지만 좋았던 부분들이 많았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된 것 같아요.
혜성 님은 다음에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혜성: 저는 사람보다는 동물들한테 위로를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평소에 내셔널지오그래픽 틀어놓고요. 파충류도 좋아하고 동물을 많이 좋아해서 그 삶에서 제가 연결됐다고 느끼는 류의 작업들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주토피아> 같은?
혜성: 귀여운 부분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런 것보다 조금 더 날 것?
의인화되지 않는 진짜 동물들의 이야기
혜성: 근데 의인화되지 않으면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저한테 숙제예요.
인목: 저는 원래 실사체나 기계적인 거를 좋아했던 편이고 많이 그려봐서 <건축가 A> 같은 그림체가 별로 익숙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하면서 동물이랑 식물도 많이 그려보고 공부도 많이 됐거든요. 사실 <건축가 A>도 진짜 재밌게 해서 동물이나 식물, 자연적인 것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혜성: 우리 같이 그리면 되겠다.
마무리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혜성: <건축가 A> 아트 팀은 VCR의 정신적 지주인 (이)지혜 아트 디렉터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요. 김봄 님도 너무너무 잘 그리는 분이고요. (정)원희 님도 완전 탱커로 저 멘붕 할 때 옆에서 엄청 많이 해 주셨고 (이)상화 님도 갑자기 들어와서 엄청 행복하게 해 주셨고요. (전)은진 님도 진짜 최고로 마지막 장면 다 해주셨고요. (정)지민 님은 프랑스에서도 도와주셨어요. 전소은 님도 빠질 수 없고요. 저희 아트 팀 정말 최고의 팀이었습니다.
애니 어워즈 때 수상 소감 못 하신 거를 지금 하시는 거죠.
맞아요. 그때 제가 질질 끌려나가서 그때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인목 님도 특별히 감사한 멤버가 있습니까?
인목: 러프 팀이 워낙에 많아가지고… 예전부터 오래 한 두 분 계시는데 정민규 님이랑 곽인혜 님.
더 얘기하고 싶으신 건 없으신가요?
혜성: 건축가 팀 사랑해요.
종훈: 사랑합니다.
인목: …
Zoom 인터뷰 2023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