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_Cookie Coffee Dosirak
쿠키 커피 도시락
인생중반을 넉넉히 넘긴 여자들에겐 쿠키와 커피와 도시락이 필요했다.
복잡한 도심 한복판 어느 공원에 네 명의 중년 여인들이 모처럼 소풍을 나왔다.
그저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그녀들에게 정답은 없다.
2020년 1월, 혼자 작업하는 데 이골 난 경력 14년 차 스톱모션 작가 강민지는 동료를 찾았다. 10년을 훌쩍 넘는 경력자들(강민지, 정주아, 이경화, 한병아)의 대화는 가정 내 여성의 역할과 본인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내친김에 함께 작업하자며 프레임바이프레임 대표 강민지가 지원사업에 응모했다.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단편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김혜미 감독이 합류했고 가족과 일, 성취와 자존에 관한 고민이 묶였다. 5월부터 12월까지 각자의 공간에서 수 차례 줌 회의를 하면서 제작했다. 작품이 완성될 때쯤엔 마스크를 쓴 캐릭터가 옛일처럼 보일 줄 알았다. 2022년 여름부터 영화제 순회를 하는 동안에도 코로나19 시국은 끝나지 않았다. 2023년 1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격리가 일상이던 지난 3년간 단편 애니메이션 공동 창작이라는 드문 경험을 공유한 네 사람의 수다를 정리했다.
[경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민지] 저는 <쿠키 커피 도시락> 끝난 후에 개인적으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두 개 진행했고요. 지금은 3월 말까지 마감인 외주 프로젝트를 <묘아>(2010) 스타일로 하고 있어요. 방학 동안 아이 돌보면서 작업을 짬짬이 하고 있어요. 방금 전까지는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와서 점심을 차려주고 좀 이따 또 학원에 또 데리러 가야 되는 상황이에요.
[경화] 아이가 몇 학년이죠?
[민지]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병아] 한 놈은 4학년 올라가고 한 놈은 고등학교 올라가.
[경화] 아이 돌보는 게 여전히 바쁜가요?
[병아] 부담스러워요. 손이 많이 간다기보다, 짬짬이 해줘야 될 일이 아직 둘째한테는 굉장히 많아요. 일이 집중이 안 돼서 새해 들어서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루틴을 시작했어요. 작업실이 아래니까 바로 내려와서 하루 할 일 정리하고 글을 좀 쓰고 기타를 한 2~30분이라도 치고요. 그리고 기록 좀 하면 3~4 시간이 지나가는데, 지금 방학이라서 9시쯤 올라가면 되거든요. 애들 깨우고 챙기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 약간 졸려. 한 시간 정도 자고 숙제 봐주고 점심 먹이고 그때부터 저녁 시간까지 내 본 일을 해요. 그리고 저녁을 먹이고 애가 숙제를 하거나 놀 때 조금 일을 하고 재우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혜미] 저는 잠이 많아서 아침에 9시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점심 먹이고 같이 보드 게임하고 애 학원 가면은 작업하고 또 오면 저녁 차려서 같이 먹고 작업 좀 하다가 자고, 단순합니다.
[병아] 애가 다 컸잖아. 지금 강민지 감독 애는 가장 손이 많이 갈 나이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게 불 보듯 뻔해요. 이경화 감독은 어떻게 지내세요.
[경화]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있어요.
[민지] 질투나.
[경화] 저희가 2020년 1월 30일에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 본주르에서 처음 만났더라고요
[병아] 벌써 3년 전이네.
[경화] 프레임바이프레임 연남동 스튜디오에서 2월에 영상 촬영하고 그 해 5월에 영진위 중편 제작지원은 떨어지고 2021년에 콘진 단편 제작 지원이 되면서 프레임바이프레임 성산동 스튜디오에서 <쿠키 커피 도시락>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김혜미 감독님은 2021년 5월에 합류를 하시게 되었어요. 한병아 감독님이 끌어들이셨죠.
[병아] 그때 혜미가 내 인스타에 댓글을 남겼는데, “언제 한 잔 할까?” “바로 오늘 해” 그래가지고 홍대에서 번개를 하고 술이 반 정도 취한 상태에서 “야 너 여기 합류해” “제가 합류해도 될까요” 그러면서 내가 민지한테 전화를 하고 경화도 그 자리에 불러서 얘기하고 다 좋다 해서 합류하게 됐지.
[경화] 강민지 감독님은 뭘 믿고 단박에 받아들이신 거예요?
[민지] 감을 믿고. 김혜미 감독님이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는 알고 있었고 (장)형윤이 오빠나 (박)지연 언니나 다 잘 알고 있는 감독님이고 경력 단절이 있었지만 꾸준히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저는 아무 걱정도 없었고 또 병아 언니가 얘기했으니까 그냥 “오케이, 좋아요” 그랬죠.
[경화] 김혜미 감독님은 어땠나요?
[혜미] 나이대나 뭔가 비슷해서 특별히 신경을 쓸 게 없이 그냥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경화] 시나리오 작업하던 단계였으니까 뒤늦었다고 할 것도 아니었죠.
[민지] 맞아요. 그때 우리가 지원받은 거를 다 뒤집어서 다시 기획을 했으니까 처음부터 같이 하신 거죠.
[혜미] 각자 이야기를 쓴 시놉시스를 봤는데, 어떻게 만들지 감이 안 잡혔었거든요. 막연한 느낌의 이야기들을 잘 엮어서 하나의 단편으로 만드는 것이 내 역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머지 제작 과정은 자신이 없어서 그 부분을 제일 신경 썼죠.
[경화] 기록해 놓은 걸 보니까 처음에는 타조랑 곰, 육지 거북이랑 사막 여우가 있었어요. 캥거루는 김혜미 감독님이 가져오셨나요?
[혜미] 그랬나? 제가 워킹맘 얘기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됐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병아] 그냥 표현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동물들을 무작위로 얘기를 했었고 거기서 고른 거 아니었나?
[민지] 일단 병아 언니가 동물 캐릭터로 가자고 했고 제가 워워~ 했던 사람이었어요. 혜미 언니는 워킹맘 스토리라 캥거루로 정했고 병아 언니는 이전 작품에서 토끼가 나오기 때문에 토끼로 정했고 대머리 독수리는 조류가 없으니 구색 맞춰 넣자 해서 정한 거예요.
[병아] 디자인을 했는데 사막여우가 귀엽게 나왔고 대머리 독수리는 재밌어서 됐던 것 같아요.
[민지] 그냥 조류가 없다 그래서 하필 대머리 독수리로 한 거예요.
[병아] 역시 제일 젊은 네가 클리어하게 기억하는구나.
[경화] 아트워크 작업을 할 때도 진도가 팍팍 나가지 않았었어요. 한병아 감독님은 디벨롭을 더 하려고 하고 강민지 감독님은 그만하고 싶어 해서 대립했죠.
[병아] 그때가 제일 팽팽했지.
[경화 각자 그때의 생각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병아] 그때 나는 우리가 정말 다른 스타일의 감독들이구나 알았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완성도와 밑그림이 있었어. 서사가 어느 정도는 이야기 안에 액자식 구성으로 다 있으니까 각자 개성은 그걸로 드러내면 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형식은 리얼리티가 있으면서도 디테일하고 논리가 있는 배경이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런데 민지가 내놓은 작업은 동화적이어서 내가 우려를 많이 했어. 조금 날카롭게 "그렇게 가면 안 되지 않나"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부분도 있고 그래요.
[민지] 병아 언니가 평이한 아트웍을 계속 다뤄왔으니 "이번에는 여러 감독이 모였으니까 다른 스타일로 해보고 싶다" 여러 번 얘기했어요, 저는 현실적인 거는 다뤄본 적이 없고 흥미도 없고, 근데 이게 아예 비현실로 갈 수도 없는 거니까 갈팡질팡했어요. 병아 언니가 원하는 건 뭔지 알겠는데, 계속 또 다른 스타일을 원하고 그래서 그때 언니랑 저랑 팽팽히 그랬죠.
[경화] 저는 김혜미 감독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왜 전화를 돌리셨어요.
[혜미] 단체로 작업하는 게 처음이라, 또 중간에 들어가서 약간 긴장이 되는 상태였는데, 막 싸우길래 (웃음) 서로 얘기를 하다 보면은 요지는 되게 간단한데 설명을 하다가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냥 속마음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전화해서 들어봤더니 다들 같은 마음이어서 이 팀은 크게 문제가 없겠구나. 원래 제가 전화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걱정이 돼서 한번 해봤죠. 이 프로젝트 자체가 제가 완전 처음 해보는 도전이어서.
[병아] 우리 다 그렇지 않니?
[민지] 맞아요. 저야말로 욕심을 이번에는 확 내려놨었거든요. 근데 병아 언니는 같이 작업하면서 디렉터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던 게 그리고 있는 게 확실하게 있는 거예요. 저는 다 상관이 없었거든요. 다 맞춰야 되겠다. 내 작업을 완전히 그냥 접는다는 마음으로 참여를 했었던 것 같아요.
[병아] 예산이 영진위 정도 됐으면 더 심도 깊게 얘기하고 정성을 더 기울였을 것 같아. 우리 작품들을 많이 했고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이름을 걸고 나오는 작품인데, 대충 하면은 안 되잖아. 전혀 다른 스타일의 네 사람이 모였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는 가늠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에 내가 약간 예민했던 것 같아. 항상 (어떻게 나올지) 그리면서 중간중간 작업을 하는데, 안 그려지는 거야. 우리가 초반에 재미있게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막상 제작 과정에서는 따로따로 분리되어서, 그게 어떻게 모여서 하나가 된 것도 참 다행인 것 같기는 한데.
[민지] 너무 신기해요.
[병아] 마지막에 편집할 때 되게 힘들었어. 레이어를 분리해서 공간감이나 카메라 워크를 주면 훨씬 좋은 장면인데, 그렇게 아쉬운 게 너무 많아. 편집할 때 그거 다 보이잖아. 우리가 다 개인적으로 바쁘고 시간을 더 쏟을 만큼의 예산이 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고 마감이 딱 있어서 제작 과정 상 디테일을 신경 못 쓴 부분들이 나는 좀 안타깝더라고.
[경화] 병아 감독님이 스토리보드를 가져간 건 연출자적인 욕심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스토리보드 바짝 하고 본인 작업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나요?
[병아] 둘 다예요. 스토리보드가 연출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한 것도 있고 그때 내가 다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동화를 그릴 시간은 부족했어. 또 하나는 방향이 안 잡히는 부분들을 이렇게 가면 언제 갈지 모르겠는 거야. 스토리보드에서 퍼스펙티브나 각도 제시를 해주면 아트웍 하는 사람들도 가닥을 잡기에 편할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선수를 쳤어요.
[경화] 다른 분들은 불만이나 아쉬움 같은 거 없으십니까.
[민지] 저는 이런 영화적인 시나리오가 베이스가 되고 현실적인 드라마 같은 얘기로 작업을 해본 게 처음이란 말이에요. 시간과 공간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작업만을 해왔다 보니까 이번에 대본도 되게 생소한 거예요. 그런 게 너무 재밌었어요.
며칠 전에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쿠키 커피 도시락>이 떠올랐는데, 한 번도 넷이 한 공간에서 작업을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게 새삼스레 자각이 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혼자 했었어요. 이경화 감독님이 작화를 정말 손색없이 너무너무 빨리빨리 잘 만들어 주셨고 병아 언니가 편집이랑 후반에서 애를 많이 쓰신 거는 보였어요. 완성도를 높이고 통일감을 만들어서 하나의 작업으로 엮었으니까. 그런 부분은 작업할 때도 느꼈어요.
[혜미] 각자 다르게 신경 쓴 부분이 결과적으로 잘 조합이 잘 된 것 같았어요. 병아 언니가 합성이라든지 편집이라든지 성우 부분, 음악을 신경 썼던 게 좋았고, 경화 감독님이 작화를 속도감 있게 잘해줘서 되게 안심이 됐고 민지 감독님도 아트웍이나 채색을 딱 잡아서 뿌려주니까 그것도 되게 편했어요. 그래서 한 거에 비해서 조금씩 더 플러스 돼서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았나.
영화제 가 보면 실사 단편은 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주로 현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부분을 영화로 만드는데, 애니메이션은 반대인 것 같아요. 자기 내적인 이야기이거나 현실감이 있다기보다는 자기화해서 만드는 내용이 많아요. <쿠키 커피 도시락>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건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영화 쪽에서는 우리 같은 시도가 좀 새롭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자기 나이대 이야기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우리 나이대에 이런 단편 작업을 계속하는 감독들도 드물고요.
[병아] 경화 감독님은 어땠어요. 사실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하신 거예요.
[민지] 깜짝 놀랐어요. 너무 애니메이팅 매력적으로 잘 잡으셔서. 채색을 제가 받아서 하는데, 선이 러프하지도 않아요.
[경화] 병아 감독님이 레이어 설계에 대해서 미리 얘기했으면 하셨는데, 프로그램 호환 문제도 뒤늦게 알았죠. 각자 가지고 있던 장비와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는데, 최종 편집할 때 버전 안 맞아서 타이밍 어긋나는 에러가 있었어요. 결국 다 잡지 못했는데, 각자의 내공과 역량으로 잘 얼버무렸다 생각했어요.
[혜미] 잘 나온 것 같아요. 만들 때 좀 이게 어떻게 완성이 될까 했는데 더 잘 재미있게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민지] 저는 그냥 작업하면서 그냥 잘 나오겠지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혜미] 막연하게 잘 나올 거라는 그거 있었어요. 안심은 좀 있었어.
[병아] 나는 내내 불안했는데, 그건 내 성격인가 봐.
[민지] 저는 막연하지도 않았고 잘 나오겠지. 왜 걱정을 할까?
[병아] 진짜 내가 슈퍼 E에다가 사람이 얼핏 보면 되게 밝아 보이잖아. 걱정이 너무 많아.
[경화] 대담해서 남들한테 “걱정하지 마” 이럴 것 같은데, 의외네요.
[병아] 난 항상 문제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내내 걱정했거든.
[민지] 요즘에 깨달은 게 제가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는 사람이더라고요.
[경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만나면 스트레스받는다고 하소연하시던 분이.
[민지]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죠.
[경화] 본인은 말로 풀어서?
[민지] 말로 푸는 거는 두 번째고 그냥 다 잘 되겠지 뭐 알아서 하겠지 걱정은 나의 몫이 아니고.
[병아] 나는 이 조합이 너무너무 감사했던 게 얄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어. 각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려고 하고 뭐라도 찾아서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였어. 다들 성실하고 신실한 사람들이어서 각자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 혼자 걱정을 훨씬 더 많이 했던 것 같기는 하네. 나머지들은 뚜벅뚜벅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경화는 제일 중요한 동화 파트 너무 열심히 해줬고.
[경화] 회의할 때 말고는 모여서 작업한 일이 없지만 녹음할 때는 다 같이 모여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운드와 음악에 대해서는 한병아 감독님과 김혜미 감독님이 더 열의를 가지셨던 것 같아요. 주연 목소리 연기도 하시고.
[혜미] 인건비라도 좀 아껴야죠. 제가 그런 거라도 해야.
[병아] 혜미 진짜 연기 되게 잘하더라. 성우라기보다는 그냥 극영화 배우 같은 느낌.
[혜미] 장편 한 번 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성우분들한테 연기 디렉션을 주잖아요. 특히 성우들은 자꾸 목소리 연기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힘이 들면 진짜 배가 이렇게 숨이 차게 하고 멀리 있으면 진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까 목소리로만 연기를 하지 말라고 했던 영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병아] 역시 장편 감독은 달라. 정말 장편을 해본 것과 안 해본 건 큰 차이인 것 같아.
[경화] 한병아 감독님도 연기 디렉팅은 분명하게 주셨잖아요.
[병아] 나 사실 연기 하는 게 되게 재밌거든요. 이번에는 못 외웠는데, 나는 대본을 거의 외우는 편이었어요. 첫 작품 할 때부터 그랬어. <이상한 나라>가 졸업작품이니까 학교에서 제작 발표회 하는데, 비디오보드라고 애니마틱스를 틀어요. 그때가 2001년이었어. 마지막에 사운드를 어떻게 입혀야 될지 몰라서 사람들이 앞에서 보고 있는데 내가 변사처럼 마이크를 들고 영상을 보면서 동시 더빙을 했어. 그건 다 외워야 할 수 있는 거였거든. 그게 되게 재미있고 즐거운 공정이라는 걸 알아서 모든 대본에 배우의 연기를 다 그려놓고 있는 편인 것 같아요.
[혜미] 성우분들이 많이 살려준 것 같아요. 언니가 성우분들을 섭외하고 공들인 시간이 확실히 영상이 들어가니까는 굉장히 효과가 좋은 것 같더라고요
[병아] 이게 참 노하우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 당연한 거거든. 내러티브가 있는 영화에서는 연기와 음악은 절대적이야. 나는 항상 내 작품의 절반 이상은 연기와 음악에 기대어 있다고 얘기를 해. 완성도가 약간 떨어지더라도 편집과 연기와 음악, 그다음에 사운드 믹싱이 극을 5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랬을 때 목소리 연기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서 캐스팅에 공을 들였는데, 토끼(현정) 역할했던 분 목소리가 너무 탁성이라 마지막에 불안했지. 근데 다행히 붙더라고요.
[민지] 녹음 디렉팅 할 때 언니 되게 멋있었거든요. 배우들을 사육장에 놓고 조련하듯이. 계속 빨간 버튼 누르고 “다시. 다시요. 여기 다시” 이러는데 처음에는 저렇게 몰아붙여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랬는데 하면 할수록 연기들이 좋아지는 거예요.
[병아] 그게 전문 성우가 아니라 배우들이잖아. 그리고 그 배우들은 활동하던 배우들이란 말이야. 애니메이션 무시할 수 있어. 그래서 목소리 힘주고 먼저 기선 제압하고 딱 잡게 만들어야 돼. 그러면은 되게 열심히 하셔. 그리고 다들 하고 나면 재미있어하죠.
[경화] 엔딩 송은 한병아 감독님이 원래 갖고 계시던 곡이었어요.
[민지] 저는 너무 설정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고 두 번째는 제가 노래를 부르는 걸 너무 쑥스러워하니까 걱정이 됐었어요. 저는 아직도 엔딩 송에서 제 목소리 나올 때 (눈 감고 귀 막으며) 아아아 이래요.
[병아] 아 진짜? 다 다른 목소리라고 느껴져? 나는 합창할 때 빼고는 한 사람이 부른 것 같더라고.
[혜미] 다 들리던데, 따로따로.
[병아] 우리라서 들릴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들어도 네 명이 한 소절씩 불렀구나 이렇게 들릴까.
[혜미] 알 것 같은데요.
[병아] 그럼 다행이고
[경화] 감독님 이거 녹음할 때 울컥하셨잖아요.
[병아] 어머 나한테 그런 면이 있었어? (웃음) 나 기억 안 나. 그랬구나 왜 울컥했지, 어떤 기분이었을까? 연주는 황현성 씨가 다 해줬는데, 내가 만든 멜로디를 누군가랑 같이 부르는 게 묘한 기분이더라 되게 행복하고 좋더라고.
[경화] 애니메이션 끝난 것보다 완성된 노래를 듣는 게 더 좋았나요?
[병아] 그냥 함께 부르는 게 좋았어. 황현성 작곡가가 색깔을 잘 살려준 거야. 도입부에 약간 레트로 하면서 전자 음악 느낌 나는 게 도심의 그것과 네 여자가 모인 나른한 분위기랑 너무 잘 맞는 거야. 엔딩 송 중심으로 얘기를 하는데, 나는 전체적인 음악의 퍼포먼스에 매우 만족했어. 나 음악에 되게 까다롭잖아. 황현성 작곡가한테 인사할 기회가 없었는데, 너무 좋았어.
[민지] 음악은 언니랑 황현성 감독 둘이 조율했잖아요.
[병아] 거의 다 알아서 잘 맞춰주신 것 같고 사운드 때문에 그랬지. 사운드는 지금도 조금 아쉽긴 한데, 음악으로 많이 커버가 됐으니까.
[민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누구랑 하든 사운드는 항상 아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건들>(2020) 할 때 제가 4일 동안 폴리 작업했잖아요. 그 정도 돼야지 사운드가 흡족하고 어떤 엔지니어를 만나든 사운드는 항상 아쉽더라고요.
[병아] 민지 사운드는 현실의 사운드라기보다는 디렉터만 알고 디렉터가 상상하는 영역의 사운드인 것 같아. 오브제의 연기는 감독만 아는 게 있을 거거든. 근데 극영화스러운 내러티브 사운드는 리얼리티를 적절하게 살리면서도 조절돼야 되는 것들이 있거든. 나 지금 같이 하는 프로페셔널 엔지니어가 있는데, 그분 진짜 잘하셔. 가끔 내가 예상하는 걸 넘어서는 사운드를 넣으면 그 장면이 살아. 그런 사운드 디자인은 음악하고 따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혜미] 저도 소개 좀 해주세요.
[민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상 작업하는 분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면 항상 힘든 점이 우리나라에 사운드 엔지니어는 많은데, 사운드 디자이너는 없는 거예요. 폴리시스트도 조금밖에 없지만 너무 비싸고. 사운드 디자인이 선행이 돼야 되는데, 그냥 작곡하고 사운드 입혀서 합친다. 이 개념밖에 없으니까 그게 항상 아쉬워요.
[경화] 2022년 2월에 배급사에 넘기고 한참 기다리다가 부천국제판타스틱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영화제들마다 다니면서 놀자고 그랬었는데, 상영하는 날 정도만 겨우 만났던 것 같아요.
[민지] 저희 제작할 때도 상영하는 2022년에도 넷 다 너무 바빴어요. 그래서 영화제 된 건 너무 즐거웠지만 GV 때 가는 것도 스케줄 여러 개를 조정해야 되는 상황들이 많이 있었죠.
[혜미] 바빠도 다 왔었잖아요.
[경화] 음식영화제에서는 수상의 영광까지 안고.
[병아] 그러니까 상까지 받을지 누가 알았어.
[경화] 영화제는 2022년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클레르몽페랑 단편 영화 마켓 됐다고 하고.
[혜미] 구색을 다 갖추면서 마무리를 화려하게.
[병아] 우리 진짜 생각보다 대성공한 거야.
[민지] 저는 두 가지인 것 같은데 하나는 일단 감독들이 모여서 같이 작업을 하는 경우가 없잖아요. 그게 너무 의미가 좋고 두 번째는 김혜미 감독님이 아까 했던 얘기랑 비슷해요. 정동진 가서 다른 영화들 보면서 느꼈고 대구단편영화제 심사하면서 느낀 게 대부분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이 작품을 만드는데, 우리의 지난 젊은 세대나 우리 아랫 세대나 아니면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 이런 죽음을 바라보는 세대를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거는 중년의 사람들이 중년 얘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좋았거든요.
[혜미] 우리 나이대가 별로 없지 않아요?
[민지] 작업을 하는 사람은 많을 텐데, 주인공으로 중년이 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경화] 중년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층이 없는데,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만든 거니까.
[경화] <쿠키 커피 도시락> 이후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김혜미 감독님 <나무의 집> 언제 끝나요?
[병아]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혜미] 아들이 맨날 몇 퍼센트 했냐고 물어보거든요. 일을 왜 그렇게 안 하냐고 애가 맨날 저한테 와서 한 거 좀 보자고 그래요. 근데 모르겠어요.
올해는 이제 다른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쿠키 커피 도시락> 하면서 동료 감독들이 생긴 것 같아서 참 즐겁고 고마웠거든요. 저번에 저희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제 좀 편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민지 감독이나 경화 감독님이나 병아 언니도 진짜 동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뭐 하거나 하면 상의도 하고 싶고 꼭 같이 안 하더라도 서로 아이디어나 기획 얘기도 하면서 발전시킬 수도 있고 하니까 그런 것도 편하게 나눴으면 좋겠어요.
[경화] 그래서 <나무의 집>은 언제 나오냐고요.
[혜미] 올해 안에는 나오겠죠.
[병아] 그거 언제 시작한 거지 혜미야?
[혜미] 횟수로 이제 3년이 돼가죠.
[병아] 대작이 나오겠구먼 궁금해 죽겠다.
[경화] 한병아 감독님은 <쿠키 커피 도시락> 할 때 <나쁜 친구>(2021)가 끝난 상태였죠.
[병아] <나쁜 친구>도 은근히 여기저기 많이 틀어졌는데 내가 별로 티를 안 냈네. 그거 다시 봤는데 은근히 재미있더라. 나 그거 만들 때 '너무 아쉬워' '너무 대충 만들었어' 그랬는데. 내가 그걸 왜 다시 봤냐면은 최근에 지금 작품 두 개를 동시에 하고 있잖아. 정말 갈수록 내 작품이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을까 다른 길을 모색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민지] 이번에는 캐릭터가 인간인 거예요?
[병아] 나 이제부터 동물만 해야겠어. 동물은 좀 못 그려도 넘어가거든. 사람은 아니야. 오랜만에 사람 가지고 하려니까 진짜 못 해 먹겠더구먼.
[경화] 조만간 공개가 되는 거는 어떤 프로젝트예요?
[병아] <청춘멸망>이 먼저 될 것 같긴 한데, 당분간 못 볼 거야. 혜미처럼 조금씩 야금야금 할 것 같아요.
[민지] 저는 2006년부터 완전 실험 추상 애니메이션도 해보고 나름 내러티브가 있는 작업도 꾸역꾸역 해보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작년에서야 나한테는 다른 게 더 재미있고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싶은 거, 이상한 거, 더 해야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애니메이션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했는데 둘 다 잘 됐어요.
[경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민지] <피치 블로섬 시티>는 부천 아트센터 외벽 미디어 파사드에서 1월부터 틀고 있고 <모뉴먼트 오케스트라>는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3월쯤부터 나올 거예요. 스톱모션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작업이에요.
[병아] 이경화 감독은
[경화] 서울엔애니메이터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감독님들하고 작품 얘기를 해보려고요. 설 지나면 1월 가고 또 한 해가 금방 가겠죠.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혜미 감독님은 4월 전에 끝내서 저희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다 같이 프리미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병아] 그래서 <나무의 집>은 몇 프로 된 거야. 제작은 끝났어?
[혜미] 아니요. 작화하고 있어요.
[병아] 몇 프로 됐냐고.
[혜미] 아직 비밀이에요.
Zoom 인터뷰 2023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