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 JO Yeseul
남들 앞에 나서면 속이 불편해지는 <울렁울렁>(2021)의 김지은은 선배 고건의 학생회장 선거를 도우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 작품으로 2021년 제4회 애니메이션어워즈의 신인 감독상과 조연 캐릭터상(고건), 제17회 인디애니페스트의 관객상과 KAFA특별상을 탄 조예슬 감독도 알고 보면 못 하는 것 없는 능력자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학생 작품 <기억하려 하다>(2011)에서 감독과 스태프로 인연을 맺은 이용선 선배는 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조예슬을 찾았다. "뭐든 할 수 있고 말하기 전에 다 알아서 하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서로의 작업을 돕다가 지난달 공식적인 가족이 된 두 사람의 집을 방문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중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작 <찾아라! 데스티니>는 고백하기로 한 날 사라져 버린 선배를 찾는 로맨틱 코미디 추리물이다. 좋은 선배를 구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조예슬 감독의 성장기는 한창 진행 중이다.
<찾아라! 데스티니>는 지금 어떤 단계인가요.
썸네일 하고 있어요. 먼저 썸네일로 연출 잡고 그다음에 스토리보드 그리거든요.
시나리오는 있으니까 각 장면의 연출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잡아보고 있는 거예요?
한번 쭉 그리고 고치고 있어요. 이용선 감독님한테 피드백받아서 고치고 지금 같이 하는 감독님들께 한 번씩 보여주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같이 하는 감독님들은 주로 무얼 하시나요?
정휘빈 감독님이 배경 도와주시는데, 스토리보드도 괜찮으면 같이 하려고 테스트하고 있어요. 최지희 감독님은 동화랑 채색 같이 작업할 것 같아요. 이용선 감독의 창의인재 멘티로 알게 된 분들이에요. 나이대가 비슷했고, 계속 작품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두 분을 섭외했고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인연이 돼서 연락을 주고받던 정다히 감독님까지 함께 해서 온라인 교류를 이어나가다가 정휘빈 감독님과 최지희 감독님이 일정이나 여러모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팀원으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울렁울렁>할 때부터 같이 작업했나요?
그때는 각자 진행중이던 작업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찾아라! 데스티니>부터 시나리오 보여주고 피드백받고 했어요.
직접 만나서 아니면 비대면으로?
떨어져 사니까 한번 놀러 왔을 때 얘기하고 거의 비대면이었어요.
썸네일은 언제쯤 끝날 것 같아요.
이번 주에 일단 한 바퀴 돌리고 빨리 고쳐서 다음 주에는 스토리보드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영진위 마감이 내년 6월까지라서 빨리 하긴 해야 돼요.
<울렁울렁>은 제작하고 완성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한 1년 반 걸린 것 같아요.
<찾아라! 데스티니>는 러닝타임이 <울렁울렁>의 두 배쯤 되지 않나요?
애니메틱 잡아봐야 정확히 나오는 거지만 일단 26분 예상하고 있어요.
작업은 뭘로 하세요?
TVPaint로 하다가 나중에 편집할 때 애프터이펙트.
울렁울렁
<울렁울렁>도 TVPaint로 하셨어요?
네, TVPaint로 다 작화했어요.
여자 주인공 지은이 캐릭터의 두꺼운 선을 보고 FLASH인 줄 알았어요.
학교 졸업 작품은 FLASH로 그렸는데 장단점이 좀 있어요. 선이 굵으면 제가 빨리 그릴 수가 있어요.
남자 주인공 고건은 지은이와 그림체 차이를 두기 위해서 얇은 선으로 했나요?
똑같은 굵기로 처음에 해봤는데 개그캐 위치까지 가는데 뭔가 잘생긴 느낌이 안 살더라고요. 고건은 순정만화나 인터넷 소설 남주인공 감성이니까 아예 선 두께도 만화처럼 하고 그림도 좀 더 만화처럼 그렸던 것 같아요.
일본 순정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보고 자랐어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1998, 원작: 츠다 마사미,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아리마 소이치로 많이 참고하고 누가 봐도 그런 역할인 캐릭터 같이 생기게 하려고 했어요.
<울렁울렁>에 경험담도 담겼다고 했어요. 본인의 출마 결과는 어땠나요?
반장 선거도 나가고 회장 선거도 나갔는데, 전부 부반장, 부회장만 해봤어요.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공약은 열심히 하겠다 정도였던 것 같고 특별한 건 없었어요. 제가 나온 학교가 3년 동안 애들이 같은 반이거든요. 저희가 예고여서 회장 선거는 장기자랑처럼 돼요. 과마다 기 세우자 하는 게 있어서 완전 개그로 준비해서 나갔었죠. 저는 만화창작과였어요.
외향적인 사람이었나요?
제가 중2병을 정말 심하게 앓았어요. 난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고 외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들이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회장 선거에 나간 거예요. 이런 자리에 나서면 그런 행동을 해야 되니까 나의 단점이 바뀌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대화를 주도하는 타입도 아니고 재밌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 만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선거 전략도 짜고 정말 이기려고 했나요.
사실 회장까지 갈 생각이 별로 없었을 것 같은데, 그냥 어쩌다가 나간 것 같아요. 과에서 한 명은 회장 선거 나가야 되는데 나갈 사람이 없고 제가 부반장 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나갔던 것 같아요. 1학년 1학기 때 부반장을 하고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이렇게 해서 총 2번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선거를 두 번 나갔어요.
축제나 전시회는 안 했나요?.
발표회가 있었어요. 만화창작과에서는 만화집을 내요. 작품 낼 사람들은 두꺼운 책 만들고 애니 하는 친구들은 만든 거 같이 틀고. <울렁울렁>에 나오는 대강당 같은 홀에 진짜 무대가 있어요. 연극이나 무용 같은 것도 하고 이것저것 다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만화 창작과에 들어가게 됐나요?
중학교 때 만화 동아리를 들어갔는데, 한 학년 위의 선배가 예고를 간다는 거예요. 항상 동경했던 언니였는데, '예고에서 만화도 할 수 있구나' 해서 엄마한테 “나 예고 갈래” 이래서 모진 입시를 하면서.
모진 입시?
대학교처럼 똑같이 입시를 해요. 지금 보면 참 돈 아까운데 (웃음) 그렇게 선배 따라 예고 갔어요.
고등학교 때 한 번 해봤기 때문에 대학교 갈 때는 좀 수월했나요?
아니요. 입시미술이 재미도 없고 경쟁이니까 힘들잖아요. 제가 막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항상 턱걸이였던 것 같아요.
만화창작과 전공 수업은 어떤 게 있나요?
1, 2학년 때는 다채롭게 배우는데, 애니는 작화도 있고 영상 촬영, 편집 이런 것도 있었고 일러스트. 재료 다양하게 써볼 수 있는 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르골
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오르골>(2009)은 수업 중에 한 거예요?
1학년 때 방과 후 프로그램이었어요. 방과 후 학교에서 애니 하고 싶은 애들은 남아서 하는 건데, 친구들은 다 하고 저만 안 했거든요. 친구들 하는 거 보면서 약간 부러워하고 있다가 친구의 팀에서 한 명이 나가서 저는 중간에 들어가서 같이 했었어요.
들어갔을 때는 어디까지 되어 있었어요?
프리는 되어 있고 메인이라서 스톱모션이니까 소품 만드는 것부터 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팅도 조금 하고. 각자 두각을 드러내는 게 다르더라고요. 촬영을 잘하고 재밌어하는 친구가 조금 더 촬영 많이 하고 저는 한 두세 컷 정도 한 것 같아요. 또 프로그램 다뤄서 합성 같은 거 했었고 그런 식으로 분담했어요.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거예요?
만들기는 계속 좋아했었고 심심할 때 가서 소품 만드는 거 도와주고 그랬거든요. 재밌게 잘했었어요.
스톱모션은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진짜 시설이 잘 돼 있는 학교였어요. 스톱모션을 하시던 선생님이 와서 그만큼 만들어주신 거예요. 목공실에 기자재가 많았어요. 디테일하게 만들 수 있는 전동 도구도 많았고 촬영실도 암막 커튼으로 공간 나눠주고 카메라도 다 있고. 스탠드 글라스 찍는 것도 있었으니까. 위에 카메라 달아서 유리에 칠해서 한 장씩 찍는 거 있잖아요. 다양하게 할 수 있게 구비가 잘 돼 있었어요.
스톱모션 할 때 선생님이 봐주셨나요?
네, 신현석 선생님이라고 제 기억으로는 ‘헬로 키티’, ‘깜찍이 소다’ 프로젝트 참여하셨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든 게 미쟝센 영화제 진출해서 미래상도 탔어요.
친구들 덕분에 엄청 좋은 경험 많이 했죠. CGV 용산이었던 거 같은데, 신나서 갔죠. 영화제는 보통 어른들 행사니까 고등학생이 가면 애들이 왔다고, 잘해 주는 감독님은 되게 잘해주셨어요. 김예영, 김영근 감독님이 대학생 커플이셨는데 <산책가>로 오셨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커서 다시 만나니까 너무 신기했죠.
폐막식도 참석했나요?
사진 찍는데 부끄러워서 도망가려고 했어요. 근데 스태프 분이 “같이 사진 찍어야죠” 이러고 붙잡으셔서 어디에 딱 세웠는데, 원빈 님 앞이었던 거예요. 셋이 너무 떨려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웃음) 나중에 사진 보면서 “와 원빈이랑 사진 찍혔어!” 저희가 똑바로 서도 원빈 님은 안 가려지는데, 셋 다 쭈그리고 찍어서 거리가 이만큼 벌어져 있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원빈 님을 마네킹처럼 데리고 계신 유명한 짤 있잖아요. 영화제 기자회견 포토월 사진인데, 그때 그걸 실제로 봤어요.
고등학교 만화창작과를 갔잖아요. 어쩌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거예요?
만화는 오롯이 자기가 다 해야 되는데, 저한테는 창작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애들 릴레이 만화 할 때 좀 껴서 그리고 일상툰처럼 만화 좀 끄적거리고 그림 그려야 되면 일러스트 쪽 좀 더 많이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담아 쓴 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2011년에 청강에 들어가서 교내 공고를 보고 이용선 감독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새로운 곳에 가면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게 크거든요. 막 부딪혀 보는 게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는 타입인데 (웃음) 학원에 청강 나오신 선생님이 계셔서 물어봤죠.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들어야 되냐 들으면 좋은 수업, 괜찮은 교수님 그런 거. 이용선 감독이 <기억하려 하다> 할 때였는데, 그 선생님이 헬퍼로 들어가서 뭐라도 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해서 연결을 시켜주셨어요.
선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수업에서 어떤 보상을 해줬나요?
수업의 일환은 아니었어요. 그냥 제 비는 시간 떼서.
제일 처음 들어가서 뭐 했어요?
스캔부터 했나? 잡일 하다 조금 익으면은 쉬운 것들 시켜주셨어요. 그때 로토스코프여서 모니터에 타프 붙여서 작화지에다 콘테로 그렸어요.
그 이후로 계속 같이 작업을 했잖아요. 프로덕션을 같이 하니까 사람이 잘 맞았나요. 아니면 이용선 감독이 ‘안 놓쳐야지’ 하고 할 때마다 부른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복합적이죠. 청강이 완전 위아래로 공간이 나눠져 있어요. 같이 하면 선배들 공간에 내가 계속 갈 수 있고 애니 작업하는 것도 도움이 되니까. <거대한 태양>은 2학년 때 제가 복학하고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안 하려고 그랬거든요. 도와달라 필요하다 해서 들어갔고, 저도 할 수 있으니까 했어요.
1학년을 하고 휴학을 했어요?
1학년 때 이상한 의욕이 넘쳐서 학생회를 들어갔어요. 잡일만 하고 시간 많이 뺏긴다고 다들 말렸는데, 들어가면 친구들 빨리 사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 부회장도 해봤으니까 비슷하겠지’ 해서. 학생회도 많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재미있게 보냈어요, 근데 1년 하고 끝이 나야 되는데, 다음 해에 자동적으로 회장 후보로 올라가야 된대요. 억지로 하긴 싫어서 집에 일 있다가 둘러대고.
도망간 거예요?
네, 건이랑 반대.
학생회 하면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요?
동기가 200명인데 대부분은 얼굴과 이름 정도로 매치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됐어요. 학급 친구인데 자주 못 보는 옆반 친구 같은 느낌으로 많이 알았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하나도 남지 않고 (웃음) 가끔 연락하는 애 있고 계속 연락하는 친구 몇 명 있어요.
판타스틱 쇼크
<판타스틱 쇼크>(2014)는 수업 과제였나요?
학기 안에 애니 한 편 해보는 건데, 김윤경 교수님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복학해서 팀 짜야 되는데, 새로 사귄 친구들은 3D 쪽이 많았어요. 저는 2D 듣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복학생 오빠가 "같이 팀 하지 않겠냐" 해서 복학생 오빠 세 명이랑 같이 해서 만들었어요. 박형근 오빠가 팀 이루고 보니까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되게 잘하고 싶어 하고 열심히 해서 퀄리티가 다른 것보다 좀 잘 나왔어요. 학교에서 사운드 지원해 주시고 영화제에도 냈어요. 그 오빠 덕분에 잘한 것 같아요.
3학년 때 개인 작업 대신 <화장실 콩쿨>(2015)을 같이 했나요?
졸업 작품 해야 되는데, 기획을 못 했어요. 저는 4학년까지 보고 갔던 거라서 3학년은 팀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교수님도 같이 하자고 하셨고 형근 오빠도 같이 하자고 했고. 이제는 진짜 이용선 감독님 말고 다른 사람과 해봐야 되지 않냐 했는데, 시나리오가 재밌는 거예요! (웃음) 나도 새로운 사람을 겪어봐야 되지 않나 했는데, 시나리오가 재밌으니까 같이 했어요.
모두의 게임
3학년 졸업 후 전공 심화 과정에서 <모두의 게임>을 만들었어요.
11월, 12월 방학 때부터 이용선 감독님의 혹독한 트레이닝에 맞춰서 진짜 엄청 울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제작은 1년 걸렸죠. 팀 세팅을 하려고 PT도 했는데, 4학년에 2D 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어요. 유일하게 구한 친구가 중간에 아파서 휴학을 해서 혼자 남은 거예요. FLASH로 전체 작화를 할 수가 없어서 컷아웃 식으로 하고 에펙으로 움직임 넣는 식으로 메인은 쳤어요. 배경은 제가 콘셉트는 말했지만 그림을 잡기가 힘들어서 잘 그리는 언니한테 도와주십시오 했어요. 다행히 흔쾌히 도와주셔서 메인 배경 몇 개 그려주신 거 소스 따서 다 만들었어요. 4학년 친구들한테 이렇게 알음알음 도움 받아서 만들었어요. 휴학한 친구도 중간에 나가서 미안하다며 집에서 작업 도와주었어요.
주인공 찹쌀떡 캐릭터가 감독님이랑 닮은 것 같아요.
찹쌀떡은 누구나가 될 수 있어야 되는데, 여자애보다는 남자애 쪽이 어린아이였을 때의 느낌이 중성적이고, 항상 방황하는 것들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서 남자애로 했어요.
그때 제가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2010) 제일 좋아했거든요. 졸업생들은 항상 큰 꿈을 갖고 만들잖아요. ‘한국판 어드벤처 타임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그러다가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뭘 하지 뭘 하지 하다가 그맘때쯤에 연락하던 친구랑 얘기하다가 약간 놀랐던 부분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였는데,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대단하다는 거예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잘하지도 않고 그런 환경이 돼서 하고 있는 건데, 그 친구는 자기는 목적 없이 인문계 나와서 지금 뭐 할지 모르고 항상 방황하니까 대단하다는 거예요. 거기서 착안을 해서 서로 놓인 환경이 다르고 선택하는 게 달라서 각자 삶이 생기는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어드벤처 타임>의 블랙코미디적 소재가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랑 잘 붙었던 것 같아요.
찹쌀떡 부모 캐릭터가 처음 등장할 때 연출이 <화장실 콩쿨>과 비슷했어요.
이용선 감독님이 편집을 도와주셔서 그런 게 있었을 거예요. 게임 <심즈>가 모델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인간형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화면 위에 상태 표시창 있잖아요. W자로 된 거랑 M자로. 부모 재산과 자기 재산인가요.
M이 찹쌀떡의 게임 머니였던 것 같아요. 게임이긴 하지만 우리가 실제 돈 쓰는 거 같이 했어요.
빚폭탄을 건네는 봄버맨 캐릭터 음악이 익숙합니다.
맞아요. 산와머니예요.
대부 업체들이 발랄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활용했죠.
밈이었죠. 들으면 누구나 거의 아는 거.
빌런으로 다람쥐 소녀와 찹쌀떡이 동경하는 뮤지션은 둘이 합쳐서 <울렁울렁>의 고건 같은 느낌 들더라고요. 이 다람쥐 소녀는 인생의 시련인가요?
찹쌀떡은 환상만 보고 왔잖아요.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름답게 왔는데, 대학 가서 현실에 부딪히는 시작하는 거죠. 세상에 배신도 있어 인마. (웃음) 이렇게 사랑의 배신도 당하고 돈에 허덕이고. 대학교 가면 느끼기 시작하잖아요. 학자금 대출도 받아보고 고등학교 때 연애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학 가서는 진짜 별의 별 일 다 했잖아' 그런 시점으로..
찹쌀떡은 친구 때문에 음악에 빠지는데요.
호루라기부터.
감독님도 친구에게 그런 영향을 받았나요?
선배 따라서 예고 가고 그랬으니까.
뮤지션이 그런 선배 같은 느낌인가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나왔는데, 어쨌든 제가 담긴 거죠.
혹시 다람쥐가 선배는 아니었나요? ‘선배만 아니었어도!’
아니에요. (웃음) 선배는 좋은 사람이었어.
찾아라! 데스티니
<모두의 게임>으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합니다.
돈도 벌어 봤으면 좋겠고 회사 다니는 건 어떤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엄청나게 '내가 작품을 하고 싶다' 이런 포부가 있지 않았어요. 회사 갔다 오면 나중에 뭐 할 때도 도움 될 수도 있으니까 마음먹고 준비를 했죠.
첫 회사에서는 에펙으로 영상 만드는 일 했어요. 파사드 미디어 아트라고 건물에 쏘는 영상 만드는 데였거든요. 안 해본 거 해보니까 신기하고 힘들긴 하지만 재밌고 회사 선배 분들도 잘해주셨는데, 월급이 안 나오는 거예요. 6개월인가 8개월인가 다니고 그만뒀어요. 뒤늦게 돈은 다 받았어요. 첫 직장 생활이 짧기도 했고 어정쩡해서 바로 작업할 생각은 안 들었고 다시 한번 취업을 했죠. 광고 영상이나 웹툰 기획해서 만드는 데를 2년 조금 넘게 다녔어요.
회사보다는 작업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던 와중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 섹션으로 <모두의 게임>을 틀어주셨어요. GV 하고 관객 반응 보니까 또 새록새록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 작품 하면 이런 느낌이 있지' '틀면 또 이런 게 있지' '작품 하는 게 좋겠다'. 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쭉 놀다가 제작지원 준비를 했어요. <울렁울렁> 기획하고 콘텐츠진흥원부터 냈는데 떨어졌죠. 영진위도 중편에다 냈는데 떨어졌어요. 계속 보강해서 SBA에 낸 서류가 붙었어요. 그런데 제가 면접 심사를 너무 못 본 거예요. 나오면서 진짜 허탈해서 '아니 이렇게 못 볼 수가 있나' '망했다' 이러고 있었는데, 붙어서 다행히 만들었어요.
퇴직금 까먹으면서 마음껏 놀고 난 다음 시나리오는 얼마나 걸렸어요?
제작지원 준비하면서 콘진까지는 2개월, 3개월 정도 한 것 같아요. 처음엔 다른 거였어요. 놀면서 조금씩 썼던 게 있었는데, 이용선 감독님하고 자꾸 얘기를 하고 같이 쓰다 보니까 이용선 감독님 스타일이 나오고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서 버렸어요. 그럼 뭐 하지 고민하다가 "제일 재밌었던 게 뭐가 있냐" 해서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 얘기가 나온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랑도 맞는 부분이 있으니까 시나리오를 썼어요. 제가 끙끙거리고 너무 오래 걸려서, 얘기할 건 같이 얘기하고 시나리오는 이용선 감독님이 쓰기로 해서 빨리 끝났어요.
<울렁울렁> 타이틀 디자인이 웹툰, 웹소설 같아요.
둘이 같이 했어요. 제가 “이런 거 어때?”하니까 “오~ 좋은데” 해서 웹소설 타이틀 만드는 법 검색해서 제가 일러스트 하고 이용선 감독님이 “여기다 이거 조금” 하면서 다듬었어요.
주인공 지은이의 능력 중에 엄청난 제빵 실력이 있잖습니까?
제가 빵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걸로 하자 했어요. 지은이가 도움을 주는 애고 저도 선물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직접 굽기도 하나요.
가끔 하는데 잘하진 못해요. 제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뜨개질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한 번씩은 해보는 것 같아요.
엄청 달 것 같은 화려하게 장식된 빵들이 나오는데 취향인가요 아니면 시각적인 효과를 위한 건가요?
시각적인 게 큰 것 같아요.
겁쟁이 유단자 고건은 어떻게 나왔나요.
남주인공이 보통 그런 스포츠를 하나씩 잘하잖아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의 아리마는 검도하고. 한참 그때 [야와라](1986-1993, 우라사와 나오키) 같은 얘기가 나랑 결이 맞는다 하면서 얘기를 했는데, [야와라]가 유도를 한단 말이죠. 그럼 유도를 해야겠다. 안타고니스트니까 성격이 반대 되는데, 비밀을 가진 찌질이. 그런 식으로 더하고 더해서 만들었어요.
타이틀에는 하트를 그렇게 그려놓고 로맨스가 아니었어.
그러게요. 그 생각을 못했네.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하트는 이런 폰트에 잘 어울려서 넣었던 것 같아요. (웃음)
<찾아라! 데스티니>는 로맨스죠.
<울렁울렁> 완성 심사 때 모은영 선생님이 마지막 코멘트로 제게 로맨스 없는 로맨스 코미디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완벽한 로맨스라기보다는 로맨스는 실패하고 약간의 성장을 이루는 내용이에요.
다음 단계는 어떤 걸 생각하세요.
일단은 작품 하지 않을까. 저는 미리 갖고 있는 건 없고 그냥 해야 될 때 그때 끄집어내는 편이에요. 장편까지 가는 게 지금 목표예요.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장편을 가는 거고 아니면 단편 하나 하면서 환기하고 장편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2022년 4월 2일 @인천 계양구 귤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