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PARK Jeeyoun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의 조연출이지만 장형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거의 공동감독”이었던 박지연은 8년 동안, 지금이 아니면 안돼의 두 번째 장편 <마왕의 딸 이리샤>(2018)를 끝내고 단편 연출작 <피부와 마음>(2018), <유령들>(2019)을 연달아 발표했다. 두 작품 모두 한 때 사랑했던 두 사람에게 찾아온 권태를 그리고 있지만 창작 활동은 도리어 전보다 왕성했다. 여름의 초입, 비 내리는 연남동에서 박지연 감독의 비상한 제작과정과 은밀한 등단 소식을 들었다.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잘 지내셨습니까?
요즘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을 전전하고 있어요. <유령들> 끝나고 나서 애니메이션 못하겠어서 소설을 열심히 썼어요. 그런데 몸이 안 좋아지니까 소설도 못 쓰겠고 올해는 계속 쉬고 운동하다가 이제 조금 괜찮아져서 뭐라도 빨리 해야겠다 그러고 있어요.
지난 인터뷰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막바지 작업을 할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장편 할 생각이 있으셨죠.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장편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어요. 장형윤 감독님 작품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난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형윤 감독님은 대표고 제가 또 옆에서 해주잖아요. 저는 거의 혼자서 해야 되는 거예요. 예전에 <마왕의 딸 이리샤> 할 때까지만 해도 장편 생각이 있었는데, 체력 문제도 있고 장편은 정말 젊었을 때 잠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장편 과정이 에너지가 많이 들고 제작지원을 받아도 되게 적은 금액이니까 금전적인 문제도 힘든 것 같아요. <마왕의 딸 이리샤> 하고 나서 체력적으로 너무 다운이 되었고 공황장애 비슷한 것도 오고 해서 1년 정도 쉬엄쉬엄 하다가 <유령들>을 힘들게 끝냈어요.
<마왕의 딸 이리샤>와 <유령들>의 작업시기가 겹쳐 있었나요?
네, 시기가 겹쳐서 <유령들>을 하면서 <마왕의 딸 이리샤를> 끝냈습니다. 센터 제작지원이 한 1년 5개월 정도로 제작기간이 긴데 일정 다 까먹고 막판에 마감 기간이 다가와서 후다닥 작업을 끝냈죠. 다행히 통과는 됐는데, 수정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1년 놔두고 하나도 손을 못 댔어요. 진짜 선 하나 못 그었어요.
낙타들과 유령들
<유령들>은 가구만 조금 바뀌었을 뿐 <낙타들>하고 집이 똑같습니다. <낙타들>의 연장선인가요?
<낙타들 2>나 마찬가지죠. <낙타들> 만들고 나서 제가 <피부와 마음>을 만들었잖아요. 그랬더니 김혜미 감독님이 왜 <낙타들> 같은 거 안 만들고 그걸 만들었냐고 하는 거예요. <낙타들> 같은 거 하나 더 만들어 달라 그래서 <낙타들 2>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팬의 요청으로 (웃음) 원래 <피부와 마음> 전에 기획했던 거예요.
<낙타들 2>라고 하지만 캐릭터의 디자인이 상당히 달라졌어요. <낙타들>의 주인공은 비쩍 말라서 가슴도 뾰족한데 <유령들>은 실제 인간에 가까운 몸매가 되면서, 육체성이 강조됩니다.
<낙타들>이랑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도 가슴을 거의 연필 꼭지처럼 그렸었는데, '왜 이렇게 그려야 되지? 여자 가슴 클 수 있잖아. 남자들은 맨날 가슴 크게 그리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부와 마음>에서는 가슴을 크게 그렸어요. 일부러. 육체적인 부분을 어필하는 여자를 그리고 싶기도 했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 해보자는 것도 있었어요. 제 몸에 대해서도 그렇고 제가 보는 여자의 몸에 대해서도 항상 남자들하고 나하고 시각이 다르니까요. <피부와 마음>은 그렇게 그렸더니 댓글에 “아 저 여자 가슴 왜 저래” 그러는 거예요.
<유령들>은 제 몸을 많이 생각했어요. 나이 드니까 중력의 힘이 제가 버티는 힘보다 더 강해지니까 전체적으로 몸이 점점 쳐지고 울퉁불퉁해지고 얼굴도 다 쳐지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반영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중년의 몸매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옷을 다 입으면 표현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브래지어랑 팬티로 수영복처럼 입고 나오는 걸로 그런 몸들을 표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에 잠기는 방은 주인공들의 옷을 수영복처럼 표현함으로써 들어간 설정인가요?
애초에 물에 잠기는 장면을 생각을 했어요. 그 집 천장을 봤는데, 거의 구멍이 생길 듯 말 듯 부셔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기서 물이 떨어지면 바닥이 잠기겠다 생각하다가 조금씩 살을 붙이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수영을 열심히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 여기서 수영을 하면 괜찮겠다’ 해서 수영복을 입고 나오는 걸로 설정을 잡았어요. 계기는 천장 누수가 생긴 아랫집 사람들의 상황을 보고 쓴 거예요.
<낙타들>은 물이 없는 게 특징이라면 <유령들>은 물이 많은 게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네요? <유령들>에도 선인장이 나와요. 옆에서 장형윤 감독님이 <낙타들>이랑 너무 비슷하다고 선인장 빼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낙타들 2>라고 (웃음). 작가로서도 게을러지면 안 되는데, 특별히 배경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룸이라는 게 구조 자체가 비슷비슷하잖아요. 나는 이 구조가 마음에 든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낙타들 2>라는 연관성으로 인해서 배경이 비슷하게 나오게 됐죠.
원룸에서 보기 힘든 천장 팬이 나옵니다.
실링팬을 계속 쓰고 싶어서 우리 집 천장을 보면서 맨날 그 고민을 하거든요. 처음에 이사 갔을 때 달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거를 달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예요. 천장 시멘트 밑에 다시 천장이 또 하나가 있는 판을 까는 구조인데, 그걸 달면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작품에라도 넣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바람이나 더 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한 것도 있어요.
<낙타들>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표정만은 되게 초연한데, <유령들> 와서는 환멸과 분노 같은 감정이 격렬하게 얼굴에 드러납니다.
감정 상태는 <낙타들>이랑 특별히 다른 건 없고 <낙타들> 때보다는 조금 더 초연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감정들을 다 놓아버렸다는 느낌으로 작업을 한 거 같아요. <유령들>에서 계속 한숨 소리가 나오는데, 그때 <마왕의 딸 이리샤> 프로젝트 끝나고 나서 스태프 몇 명만 남아서 1년을 더 작업했어요.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작업실에서 계속 한숨을 쉬면서 작업을 했어요. 뭐 조금만 하면 하아~ 그래서 한숨 소리를 작업에 넣었어요. 그간 감정의 파편들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떻게든 들어가게 된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까 그 작업을 할 때 약간의 분노도 있었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나는 힘든 거야.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고 지치지?’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보면 집요한 전화벨 소리가 울리잖아요. 뚜뚜두뚜뚜두 하는 소리가 엄청 집요한데, 그것도 작업할 때 걸려온 독촉 전화 같은 건가요?
전화벨 소리는 아니에요. 언니네이발관 작업했던 류한길 씨의 ‘데이트리퍼’라는 음반에 있는 음악이에요. 옛날부터 그 음반을 되게 좋아했어요. 계속 듣고 있었는데, 전에는 그런 실험적인 음악을 작품에 넣을 생각을 못했어요. 이번에 하면서 가음악 식으로 깔아놓고 시작했는데, 괜찮은 거예요. 여섯 곡 정도가 조금씩 잘려서 들어가 있는 건데, 그 음악이 내가 하려는 실험적인 느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랑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독립영화계 쪽에서 몇 번 음악을 많이 만들어 주신 분 같아서 연락을 했는데, 그분이 시간이 안 된다 그래서 그 곡들을 사서 넣었어요. 앞부분은 깔아놓고 보다가 ‘아 너무 자극적인가’ 이런 생각이 좀 들긴 했어요. 그래도 그 부분은 그렇게 넣고 싶더라고요. 이상하게 시끄러운 소리. 관객들이 좀 괴롭히고 싶다는… (웃음) 약간 사이코패스 같이 생각을 하고 넣었던 것 같은데, 전화벨 소리는 아니고 그냥 신경증적인 소리인 거 같아요.
음악들을 직접 편집해서 사용했나요?
네. 음악을 내 맘대로 잘라가지고 편집해서 음악이 들어있는 상태로 음악감독님한테 딱 보여줬어요. 음악감독들이 잘라서 쓰면 되게 싫어하잖아요. 처음에는 싫어할까 싶어서 (쭈뼛 거리며) “죄송합니다. 제가 잘라서 임의로 막 했는데…” 상관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난도질된 채로 썼던 것 같아요.
<유령들>에서 더 과감해진 게, 오프닝부터 음부에서 튀어나오잖아요. 겨드랑이랑 음부의 털도 그렇고. 이미지로도 관객을 거슬리게 만들고 싶었나요?
원래는 첫 장면의 그림 자체가 되게 리얼한 음부 모양이었어요. 작가의 게으름으로 그냥 선으로 되긴 했지만 (웃음) 콘티에서 보면 진짜 여자의 음부를 정밀하게 그린 것처럼 나오는데, 그건 넣지는 못했죠. 거기까지는 못 넣겠더라고요.
자체 검열하신 건가요.
자체 검열을… (웃음) 우리나라는 19금으로 할 건지, 15금으로 할 건지 그 고민도 해야 되잖아요.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도 15세였고 19금으로 되면 상영할 때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원래 생각을 했던 거니까 일단 넣고 보자 해서 넣긴 넣었는데, ‘이건 너무 센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때 다른 해외 작품을 비메오에서 보는데, 성기가 되게 리얼하게 나오는 게 있더라고요. 내가 고민하고 있었더니 주변에서 “이거 센 거 아니에요" 그러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그냥 넣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하더라고요.
제 몸을 여자 주인공에 투영해서 만든 거기도 해서 그런 부분들을 넣고 싶었어요. 제가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부터 성인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금기를 깨지만 야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성인이 본다는 것이 성적인 표현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맞아요.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거를 좋아하지도 않고 애니메이션이니까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의 군무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수영복 입은 남자들이 물고기 떼처럼 떠서 가는 이미지를 생각한 거예요. 물이 있으니까 물에 관련된 걸 생각했어요. 물고기로 할까 하다가 그냥 남자들이 떠서 가는 게 좋겠다 하다 보니까 갑자기 이걸 정자로 느끼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군무라기보다는 물에 뛰어들기 전에 준비 운동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동영상 사이트에서 코믹 댄스를 찾았고 연찬흠 3D 감독님한테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보여줬더니 잘 만들어 주셨어요. 거기는 완전 다 3D 거든요.
주제가 권태잖아요. 남녀관계만이 아니라 작업 상태나 모든 상황의 영향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모든 게 권태로웠던 것 같아요. 권태라고 하면 혹시 지금 결혼 생활이 권태롭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 안의 문제, 상대가 나에게 주는 권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게 권태롭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보면 넙치가 나오는데,, 물이 있는 설정이어서 나온 건가요?
맞아요. 최종본에는 삭제가 되었지만 주인공들이 시장에서 물고기를 하나 사 와서 식탁 한가운데 놓고 살을 하나씩 발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해서 같이 살게 되고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우리의 사랑은 어느 지점에 와 있나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넙치가 살점이 다 발리고 뼈만 남은 상황이 되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빠졌습니다. 길고 이야기가 관념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대사들도 너무 많아지고 그 장면을 통째로 빼고 넙치가 갑자기 도마 위에 있는 걸로 했어요.
넙치가 집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 남자 몸속까지 들어가고 남자 머리 위에 난 구멍으로 몸을 부수면서 빠져나와요. 남자 몸이 팍 터지는 걸로 해야 되는데, ‘하아~ 너무 힘든데, 대충 나오자’ (웃음) 이 작품은 작가의 힘듦과 게으름이 같이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에 여자가 팔의 빨감 점을 뜯잖아요. <유령들>은 거의 흑백 같은 인상인데, 눈에 띄는 빨간 점은 왜 찍은 거죠?
별 거 아니에요. 여드름 같은 게 나서 긁는데, 살갗이 벗겨지면서 그 속에 있던 시커먼 속내가 드러난 거죠. (웃음) 까맣게 하면 그냥 점인 것 같고 뾰루지처럼 하고 싶어서 빨갛게 했습니다.
<유령들>이 안시 본선에 올랐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셨죠. 예전에도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일이 겹쳐서 못 가서 안타까워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습니다. 안시에서 이번에 못 오는 사람 내년에 초청할게 그러더니 올해 아무 말도 없더라고요. (웃음)
피부와 마음
2019년에 <유령들>이 나오고 그 전 해에 <피부와 마음>을 했어요. 그 전에는 단편이 3년에 한 편 정도씩 나왔었는데, <피부와 마음>과 <유령들>은 연이어서 작업을 한 거잖아요. <마왕의 딸 이리샤>도 있었는데, <피부와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공황장애가 온 거예요. 단편도 하고 <마왕의 딸 이리샤>까지 해서. <마왕의 딸 이리샤>가 바로 제작지원 받아서 들어갈 줄 몰랐어요.
<피부와 마음>은 되게 힘들었어요. 작화도 되게 많이 들어가고 캐릭터가 정형화되어 있잖아요. 그런 그림은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가죠. <낙타들>이랑 <유령들> 같은 경우는 사실 캐릭터가 깨져도 의식의 흐름대로 하면 되거든요. <마왕의 딸 이리샤> 초반과 일정이 겹쳐서 얼른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진행했죠.
<유령들>이 제작지원 떨어지고 <유령들>이 왜 안 됐을까 고민을 했어요. 너무 실험적이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해를 못하니까 안 되는 거다 이번에는 초등학생도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 생각했습니다. <피부와 마음> 같은 경우는 저희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거예요. 아빠가 옛날에는 주폭 비슷한 거 있었는데, 나이 드니까 착한 사람처럼 하시는 거예요. 작품의 근사한 뿔을 가진 사슴처럼... 밖에서 보기에는 “저런 남편이 어딨어. 되게 좋은 남편이랑 산다” 그러는데, 가족 내부에서 볼 때는 안 그런 아빠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표현하려고 했고 어쨌든 부부관계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빠질 수가 없잖아요. 사랑이 식고 나서 동물로 변한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부모님 이야기, 그다음에 우리 이야기를 가지고 한 건데, 정작 하려고 했던 아빠 이야기는 축소되고 젊은 부부 이야기가 강하게 들어갔죠.
<유령들>은 포기하고 있던 작품이었고 하려고 생각도 안 했던 작품인데, 이상하게 연달아서... 제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것 같아요. 장편을 하면서 단편 작품을 연달아서 발표하고. <피부와 마음> 하고 나서 좀 쉬고 싶었는데, <유령들>도 너무 늦게 발표하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벌써 1년이나 놓쳤으니까 빨리 배급해야겠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피부와 마음>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만들려는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연상호 감독님이 그걸 재밌게 봤나 봐요. 넷플릭스에 <보잭 홀스맨>이라고 있잖아요. 그것처럼 해보자 그런 얘기를 좀 하면서 몇 번 만나다가 흐지부지됐어요. 내 몸을 던져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요. 나중에라도 이야기들을 개발하면 될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될까? 이런 고민들은 하고 있어요.
장편은 절레절레하던 거와 달리 시리즈 개발을 해볼 가능성은 버리지 않았네요.
지금은 버렸어요. (웃음)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웹툰이라든지 시나리오를 쓴다면 어떤가요?
웹툰이나 이런 쪽으로는 생각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너무 많이 필요해요. 배경 할 사람부터 시작해서 작화할 사람들까지 다 하려면 사무실을 꾸려야 되는 상황인 거죠. 제가 그런 인간관계를 쉽게 하는 편이 아니어서 <마왕의 딸 이리샤> 하면서도 스태프들과 같이 일을 하는데, 힘들더라고요. 사람 관리가 너무 힘들어서 대규모로 작업실 꾸리는 거는 안 되겠다. 그런데 웹툰은 제가 그림 그리고 채색 같은 거 뿌리고 소규모로 하면 되니까 웹툰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밀의 웹소설
체력이 떨어져도 창작 의지는 줄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문제인 거예요. 그냥 어디 취직해서 남의 작품 하면 되는데, 그게 또 그렇게 당기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머릿속에서 뭔가 계속 떠오르고 내 안에 뭔가 있는 것 같고 그걸 끄집어 내야 될 것 같고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다른 식으로 풀어야겠다 해서 소설을 쓰는 거예요.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손 대고 있어요. 언젠가 멈추겠지 그러면서.
어떤 소설을 쓰나요?
예전에 웹툰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20화짜리 로코물이었는데, 사람들이 “언니는 로코물 하지 마" 이러는 거예요. 등장인물들이 사랑하는 감정이 하나도 안 느껴지고 계속 코믹만 (그린다고) 그래서 로맨스는 아닌 것 같다.
문피아라고 현대 판타지나 남성향 소설 플랫폼이 있어요. 거기 가면 듣도 보도 못한 장르가 많아요. 회귀물, 빙의물, 소설 빙의물, 그런 장르 몇 개를 읽어 보고 현대 판타지 회귀물이 제일 맞겠다 해서 열심히 써서 유료 연재까지 했어요. 웹소설 작가들은 자기가 웹소설 쓰는 걸 숨겨요. 가족한테도 말 안 해주고 거의 다 숨기거든요 (웃음)
내가 봐도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소설들이 거기는 완전 대중적인, 그거를 돈 내고 읽는 사람이 되게 많은 거예요. 저도 제 거를 처음에 쓸 때 이걸 누가 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진짜 사람들이 많이 보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몇 화 분량이었나요?
150화. 원래 200화까지 써야 되는데, 매일매일 연재를 해야 돼요. 처음 시작한 데다가 매일 5,500자씩 써서 연재를 한다고 생각해봐요. 안 되겠다. 일단 150화까지만 했어요. 2020년 2월부터 시작해서 7월에 끝났나? 끝내고 ‘이거는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말자’ 그랬는데, 누군가 소문을 피웠어. (웃음) 요즘에는 단편 소설도 쓰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말고 창작 쪽으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하면서 저한테 맞는 거를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애니메이션은 두 작품을 연달아 발표했으니 이제 좀 쉬려고요.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을 완전히 손 놓겠다’는 아니고 나중에 체력이 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음 작품을 시작한 상태인가요? 아니면 구상 단계인가요?
원래 올 초에 들어갔어야 되는데, 몸이 계속 안 좋아서 못하고 어떤 작품 해야 되겠다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장형윤 감독님 작품에 콘티 작업을 좀 해야 될 것 같아서 지금은 잠시 그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연재 들어가면 다른 걸 하기 힘들잖아요.
그거는 나약한 생각이더라고요. 웹소설은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하고 밤에 그걸 쓰는 거예요. 진짜 열심히 살아.
단편 작품은 본인의 상태와 생각을 담았다면 웹소설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잖아요. 왔다 갔다 하면 기분 전환도 될 것 같아요.
제 근처에서 맴도는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좀 지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관객들이 이거 니 이야기니? 하면서 질문하는 것도 많고 거기에 대한 해명 비슷한 걸 해야 할 때도 그렇고. 웹소설은 완전히 나를 떠난 이야기잖아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웹소설은 또 한계가 없잖아요. 아무 이야기나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굉장히 좋았고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메리트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체력만 키우면 되겠네요.
아침에는 요가하고 헬스랑 수영도 하고 있어요. 거의 하루 종일 운동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할 시간이 없어. (웃음)
인터뷰 2021년 6월 3일 @연남동